“니들은 모른다. 쌀 한 톨이 중한 줄 알아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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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은 모른다. 쌀 한 톨이 중한 줄 알아야 하는데…”
  • 이인창 기자
  • 승인 2021.02.03 17: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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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33주년 특집
■ 신춘소설 // 박경희 작가의 ‘쌀 나방’

새벽 미명의 마로니에 공원은 난장판이다. 지난밤 젊은이들이 먹고 마시다 버린 욕망의 찌꺼기가 널브러져 있다. 백 노인은 오늘도 어김없이 공원으로 들어선다. 노인은 비장한 얼굴로 폐휴지를 줍는다. 낡은 손수레에 허름한 옷차림만 보면 영락없는 노숙자다. 노인이 폐지를 줍기 시작한 것은 백수건달이나 다름없는 아들 때문이다. 늙은 에미가 새벽마다 폐휴지를 줍는 걸 보면, 양심에 찔려 삶의 태도가 바뀔 줄 알았다. 헛일이었다. 아들놈은 되레 자식 얼굴에 똥바가지를 끼얹는다고 난리다. 

 공원은 청소기를 돌린 것처럼 금세 말끔해진다. 노인은 그제야 허리를 펴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손수레에 빈 병이며 상자가 차자, 백 노인의 발길이 빨라진다. 해 뜨기 전, 들릴 곳이 있기 때문이다. 노인이 달리다시피 급히 간 곳은 동사무소 쌀 항아리 앞이다. 노인은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전봇대 위에 앉은 비둘기들도 잠이 들었는지 박제된 새처럼 꼼짝하지 않고 있다. 노인이 준비해 온 쌀 포대에 항아리의 쌀을 퍼 담는다. 쌀 항아리에는 ‘쌀이 없는 주민은 언제든 퍼 가도 좋습니다. 또한 집에 쌀이 남는 주민은 이 항아리에 쌀을 기부해 주십시오’라는 문구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있는 사람이 더 무섭다니까. 가난한 사람 자존심 살려 주느라 무료 쌀 항아리 만들어 놓았더니. 돈 많은 할머니만 쌀을 퍼 가네.“

며칠 전, 동네 아줌마들이 수군거리던 말이 떠올랐다. 그날은 새벽에 깜빡해서 점심 먹고 갔다가 딱 걸린 것이다. 노인은 누가 볼 새라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도로로 나온다. 
백 노인은 쌀 포대를 소중히 품고 집을 향해 걷는다. 낙산 밑 오래된 성처럼 웅장한 건물이 백 노인의 집이다. 5층에서 아들 내외와 함께 산다. 일 층부터 4층까지는 세를 놓았다. 물론 월세는 백 노인의 통장으로 들어온다. 아들은 그것도 못 마땅해 하지만, 어림 반품 없다. 그동안 분명히 아들에게 기회를 주었다. 성실히 잘 살면, 집이며 땅 모두 명의 이전 해 주겠다고. 약속을 번번이 어긴 건, 아들이다. 백 노인은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오른다. 잠들어 있을 아들 내외 생각에 절로 부아가 치민다. 노인은 씩씩거리며 문을 연다. 집안에 정적이 흐른다. 

“해가 중천인데 잠이 오냐? 이 버러지 같은 인간들아!” 

백 노인이 대통 삶아 먹은 듯 큰소리를 지른다. 며느리가 앞치마를 두르고 나오자, 노인이 죄인 취급하듯 다그친다.

“그렇게 게을러터져서 어느 짝에 쓴다냐? 그 모양이니 허구한 날 시어미 등쳐먹고 살지.” 

며느리는 들은 척도 않고 아침 준비를 한다. 노인은 며느리가 대꾸하지 않자, 옥탑방으로 퉁퉁거리며 올라간다.

노인이 지나간 자리에서는 언제나 큼큼하면서도 야릇한 냄새가 난다. 날씨가 풀리면서 더욱 심하다. 옥탑방은 노인의 비밀 아지트다. 노인이 외출했을 때, 며느리는 가끔 노인의 비밀창고를 방문하기도 한다. 금방이라도 귀신이 튀어나올 듯 어수선하다. 손재봉틀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시어머니 재산의 씨드머니가 된 물건이다. 그 밖에 얼룩덜룩한 헝겊 쪼가리, 오래된 나무 궤짝 위에 놓인 불을 넣어 쓰던 다리미, 나란히 벽에 걸린 인두, 하얀 백자, 놋그릇, 심지어는 볏짚까지 쌓여 있다. 거의 박물관 수준이다.

아지트에서 눈에 가장 띄는 것은 나무 궤짝과 쌀독이다. 오동나무로 된 궤짝은 지금은 고가구점에서나 볼 수 있는 귀중품이다. 쌀독 또한 범상치 않다. 요즘 흔히 보는 반질반질한 항아리가 아니라 두꺼비처럼 외면이 우둘투둘하며 두께가 꽤 되는 독이다. 장작 가마에 구운 옹기 항아리라 투박하지만 제법 고풍스럽다. 비슷한 모양의 쌀독이 열 개는 된다. 빈 독이 없을 정도로 쌀이 넘쳐난다. 노인은 쌀이 떨어질 즈음이면 옥탑에서 손수 쌀을 퍼다 주었다. 결코 며느리에게 그 일을 맡기지 않았다. 며느리는 노인이 살림을 자신에게 넘기고 싶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상관없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재산 목록이 넘어 올 날만 기다릴 뿐이다. 

백 노인은 신의 손을 갖고 있다. 재개발 붐이 일기 전부터 강남에 사 놓은 땅마다 뻥튀기가 되었다. 땅값이 오르기 전에 사 놓은 용인 논에서는 매년 쌀이 올라온다. 그럼에도 동사무소 쌀 항아리에서 묵은 쌀을 퍼 오는 시어머니. 덕분에 늘 묵은 쌀을 먹어야만 했다. 며느리는 쌀독의 가득한 쌀만 보아도 진저리가 쳐졌다.

“어차피 묵은쌀 될 텐데 햅쌀부터 먹으면 안 될까요. 어머니.”

언젠가 용인에서 햅쌀이 올라오던 날 제의를 한 적이 있다. 노인은 며느리를 외계인 보듯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급소를 찔렀다. 

“쥐뿔도 없이 고아로 자란 네가 쌀 쟁여 놓고 사는 게 뭔지나 알겠냐! 쩝.”

며느리는 지금도 시어머니의 말이 생각나면 온몸이 떨린다. 하지만 시어머니의 비위를 거슬러서는 안 된다는 것쯤 잘 안다. 오히려 극진히 더 잘 모시는 것만이 목적 달성의 지름길이다. 

“엄마. 이 시간까지 또 쓰레기 주우러 다니다 왔수. 이제 제발 아들 체면 좀 살려 주시지요. 근데 손에 든 건 또 뭐요.”

부스스한 얼굴로 나온 남편이 큰소리치는 바람에 며느리는 옛 생각에서 벗어났다. 남편이 포악한 얼굴로 소리를 지르며, 시어머니의 손에 있는 쌀 포대를 잡아챘다. 노인이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다 쌀부대 끈이 풀어졌다. 포대 안의 쌀들이 조팝나무 꽃잎처럼 여기저기 흩어졌다. 

“아—피같은 내 쌀… 어서 주워! 쌀 한 톨이라도 버리면 벌 받는다.”

노인은 흩어진 쌀을 보고 멍하니 서 있는 아들 내외를 노려보며 고함을 질렀다. 그 어느 때보다 아들과 며느리가 소 귀 밑의 등에처럼 느껴졌다. 더욱 한심한 건 며느리다. 다른 여자들은 남편이 백수처럼 건들거리고 다니면 바가지를 긁어서라도 정신 차리길 바라는데, 며느리는 아니다. 노인은 아들의 행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돈을 줄 때가 많다. 그렇게 갈취한 돈으로 사는 며느리는 미안한 내색도 없다. 도저히 며느리의 속을 알 수 없다. 며느리가 천애 고아라고는 하지만, 이혼을 낡은 속옷 버리는 것보다 더 쉽게 하는 세상 아닌가. 그런데 며느리의 입에서는 단 한 번도 이혼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걸 보면, 왠지 수상쩍다. 남모를 꿍꿍이가 있는 걸까. 

‘저것이 내 재산을 노리고 있는 건가.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수작이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네년 밥그릇에 쌀 한 톨도 남겨주지 않을 것이다. 무슨 일이든 오지게 못하는 아들 녀석이나… 속을 알 수 없는 며느리나… 징글징글하다.’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노인의 손을 잡으며 아들이 절절하게 말한다.

 “엄마. 이제 고만 좀 하세요. 내 낯짝 들고 살 수가 없어요. 아무리 아들이 변변치 않기로서니 이러실 수 있는 거요. 그거 몇 푼 번다고 매일 비렁뱅이 짓을 해요.”

 “찢어진 입이라고 뱉어놓으면 단 줄 아냐. 네가 그동안 사업한답시고 내 돈 가져가서 축낸 돈... 폐휴지라도 주워서 메꾸려고 한다. 할 말 있냐? 이놈아.”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그동안 엄마가 나한테 얼마나 투자했다고 그래요. 좀 확실히 밀어줬으면 내가 이 모양 이 꼴로 살지는 않을 거 아니유. 쥐꼬리만 한 돈 주고 생색은……. 제기랄.” 

노인은 어이가 없는 듯 아들을 홉뜬 눈으로 쳐다보았다. 노인의 표정이 심상찮자, 아들은  꼬리를 내렸다. 그리곤 철없는 아이처럼 노인에게 다가가 팔짱을 끼며 애교를 부렸다. 

“에이, 내 말은 엄마가 너무 고생하니까 그런 거지. 그나저나 저 쌀은 또 뭐요. 요즘은 쌀까지 주워 오시나?” 

노인은 아들이 쌀의 출처를 묻자 뜨끔해진다. 며느리는 짐짓 관심 없는 척 주방으로 들어간다. 노인은 무심한 척하는 며느리가 더욱 밉상이다. 

“니들은 모른다. 쌀 한 톨이 중한 줄 알아야 하는데…. 전혀 귀한 줄 모르니.” 

노인은 어쩐지 서글픈 생각이 든다. 요즘 들어 부쩍 허망하다는 생각이 든다. 노인은 며느리가 쓸어 담은 쌀을 들고 다시 옥탑방으로 올라간다. 

 노인은 옥탑방 아지트에 들어와 자신의 분신들과 눈을 마주친다.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다. 궤짝을 보니 불편했던 심기가 펴지는 듯싶다. 그동안 사고판 땅문서, 집문서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누런 종이들. 노인의 역사다. 강남에 사 놓은 땅 값이 치솟지 않았다면 손재봉틀이 유일한 생존 도구였을 것이다. 노인은 질척거리던 압구정동 일대의 논을 보러 다니던 생각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노인은 궤짝 깊숙이 숨겨 놓은 파일을 꺼내어 그 안의 서류들을 들춰 본다. 

 이번에 노인은 쌀독을 어루만진다. 만감이 교차하여 지그시 눈을 감았다 뜬다. 가장 아끼는 쌀독 뚜껑을 연다. 독 안에 든 쌀을 휘젓고 상장같이 생긴 증서를 꺼낸다. 

노인이 휘, 쌀을 젓자 기다렸다는 듯 하얀 쌀 나방들이 뛰쳐나와 날기 시작한다. 노인은 쌀 나방을 두 손바닥으로 탁, 탁 잡아 죽인다. 노인은 쌀 나방을 볼 때마다, 아들 내외 얼굴이 떠오른다. 자신의 재산을 자기 것으로 생각하며 사는 아들이나 명품만 사 입는 며느리를 보는 것 같다. 진저리가 쳐진다. 쌀 속에 기생하며 진액을 빼앗아 먹는 쌀 나방과 아들 며느리가 다른 게 뭔가. 

아무리 손으로 쌀 나방을 잡아도 계속 날아다닌다. 쌀이 줄어들지 않는 것도 속이 상하다. 아들과 손자, 며느리 모두 집밥 대신 외식을 즐기니 쌀이 줄어들 리 있는가. 요즘 들어 부쩍 나방이 많이 생기는 걸 보면 묵은쌀이 아직도 꽤 많이 남은 것 같다. 순식간에 방안 가득 흰 옷을 입은 나방들이 춤을 춘다. 무대에 선 무용수 같다. 조롱하듯. 위로하듯. 나풀나풀. 쌀 나방은 하염없이 춤을 춘다.
 
***
 
백 노인은 눈 뜨자마자 공원으로 달려가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길바닥에 널브러진 폐휴지와 빈 병이 모두 돈으로 보인다. 한 시도 허리를 펴지 않고 돈을 줍는다. 

백수건달 아들의 하루도 여전하다. 무일푼이지만 백만장자처럼 산다. 며느리만 가슴이 타들어간다. 지난 밤에도 며느리는 뒤척이느라 밤을 샜다. 그녀는 점점 초조해졌다. 그동안 남편에게 잔소리는 안 했지만, 불투명한 앞날에 대한 걱정이 왜 없겠는가. 삶의 방향 없이 개구리밥처럼 이리저리 떠다니는 남편만을 바라보고 살기에는 불안하기 그지없다. 시어머니의 재산이 어서 빨리 외아들인 남편 앞으로 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하지만 팔십 연세에도 5층 계단을 날렵하게 오르내리는 걸 보면, 요원한 일 같다. 그녀는 앞이 안 보일 때마다 쇼핑을 나간다. 남편이 건네준 카드로 그간 쌓인 스트레스만큼 사고 싶은 걸 사는 재미. 그것마저 없다면 고아로 살 때보다 더 지옥 같은 삶을 견디기 힘들다.

 ‘어머니 안 계실 때 옥탑방이나 올라가 볼까.’ 

며느리는 누군가 이끌 듯 옥탑방을 올려다보았다.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계단을 오른다. 새벽이지만 사위가 깜깜하다. 모두 잠든 시간에 깨어 있다는 건 서글픈 일이다. 한 층 높이 올라왔을 뿐인데 온 동네가 한눈에 들어온다. 며느리는 광야에 홀로 선 나그네처럼 쓸쓸하다. 쌀독에 손도 대지 말라던 시어머니의 불호령이 생각난다. 금기된 사항은 더욱 해 보고 싶은 게 인간의 욕망 아닌가! 

시어머니의 아지트 문을 열고 들어선다. 불을 켠다. 며느리는 긴장한 얼굴로 방안을 살핀다. 무당 옷 같은 헝겊들이 없어 괴괴한 느낌이 덜하다. 다행이다. 그녀는 유난히 반질반질 시어머니의 손길이 많이 간 쌀독에 눈이 간다. 그동안 만져보고 싶었던 쌀독의 두꺼운 허리를 쓰다듬는다. 거칠거칠하다. 뚜껑을 연다. 쌀 나방들이 아우성을 치며 밖으로 나와 너울거린다. 

며느리는 쌀 나방이 징그럽다거나 귀찮게 여겨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묵은 쌀 속에서 쌀 나방이 나오면 기겁을 했다. 밥알이 흰 벌레로 보여 입맛을 잃기도 했었다. 지금은 쌀벌레가 수증기에 압사당해 죽어 있는 것이 보여도 아무렇지 않다. 무서운 적응력이다. 남편의 무능력을 견디며 내성이 생긴 것 같다.

 그녀가 쌀독 뚜껑을 닫으려는데 독 안에 뭔가 들어 있는 것 같다. 착시 현상인가. 손을 넣어본다. 빳빳한 물건이 손에 잡힌다. 

 ‘흩어진 쌀을 담았던 책받침일까.’ 며느리는 궁금한 마음으로 물건을 꺼낸다. 놀랍게도 코팅된 서류였다. 다급한 마음으로 서류를 읽어 나간다. 언젠가 방송에서 본 듯한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유산 안 물려주기 운동 본부>

 그녀는 서류를 꼼꼼히 읽어본다. 외모처럼 꼿꼿한 시어머니의 필체다. 주소와 생년월일, 주민등록번호 모두 맞다. 서명란에 어설프지만, 사인도 되어 있다. 그녀의 얼굴에 하얀 쌀 나방이 극렬한 몸짓으로 들러붙는다. 쌀 나방들이 자신을 조롱하는 것 같아 기분 나쁘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쌀 나방을 쫓는다. 등줄기에 땀이 흥건하다. 머리가 하얗게 비어가는 것 같다. 아니. 벼랑 끝에 선 것처럼 절망스럽다.

 며느리는 옥탑방 밖으로 나온다. 여명이 희미하게 밝아온다. 곧 시어머니가 들어올 것이다. 손이 후들거리고 가슴이 떨린다.

 후다닥. 타닥. 

계단을 백 미터 선수처럼 달려 내려온다. 남편은 여전히 한밤중이다. 세상 걱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다는 듯 편안한 얼굴이다. 한심하다 못해 증오심마저 든다.
  
 “어서 일어나! 당신 비렁뱅이로 거리에 나앉게 생겼다고.”

1960년 경기도 양평에서 출생, 국문학 전공.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의 ‘한국방송라디오 부문 작가상’수상. 2004년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사루비아’로 등단하여 소설, 르포, 동화, 에세이 등 경계선을 넘나드는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park329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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