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으로 향한 이정표대로의 삶의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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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으로 향한 이정표대로의 삶의 실천
  • 이석훈
  • 승인 2021.01.22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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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알렉산더의 ‘나는 천국을 보았다’를 읽고

백석대 어문학부 김양희 교수 “진정한 ‘사랑’의 의미와 중요성을 일깨워 줌”

김양희 교수
김양희 교수

이브 알렉산더의 ‘나는 천국을 보았다’는 나의 신앙관, 아니 더 나아가 나의 인생관에 변화를 가져다 준 책으로서, 내게 값지고 귀한 축복의 선물 중 하나로 손꼽힌다. 죽음에 대한 의미를 새롭게 인식시켜주었을 뿐 아니라, 사후의 세계, 즉 천국의 실재성에 대한 믿음과 함께 ‘하나님의 존재 여부’에 대한 확신을 주었고, 진정한 ‘사랑’의 의미와 중요성을 일깨워 줌으로써, 사랑의 실천을 위해 삶의 이정표를 전환해준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후의 세계가 있는가?’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모든 시대,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 온 인류의 가장 큰 관심사이며 질문이다. 육체와 뇌의 죽음이 의식의 종말이 아니라는 이브 알렉산더의 임사체험은, 과학과 영성이 공존한다는 증명을 통해 사후의 세계와 신의 존재 여부에 대한 결정적 증거로서의 명쾌한 대답을 제공하였다. 육체와 뇌의 죽음이 의식의 종말이 아니고, 인간의 의식이 신의 응시 하에 계속 존재한다는 그의 증거들은, 인간의 막연한 이성적 추론에 불과했던 존재론적, 우주론적, 목적론적, 도덕론적 논증 같은 철학적 논증의 한계점을 뛰어 넘어, 과학적 탐구와 추리를 배경으로 한 신의 존재에 대해 확실성을 보여주었다.

내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강한 의구심이 싹트기 시작한 시발점은, 비바람 부는 한겨울, 새벽 예배를 다녀오시다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던 그 사고로 부터 비롯된다. 임종 당시 “주여, 주여, 주여!”라는 몇 마디 반복되는 외침만을 남겨 놓은 채 이 세상을 떠나셨다. 아직도 내 귀에 생생하게 들리는 듯한 그 애절한 목소리.....난 할머니의 그 외침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표출이라고만 해석하였다. 그러나 알렉산더의 임사체험은 그 외침이 죽음을 피하고자한 발버둥이 아닌, 하늘나라를 향한 기쁨의 환호성이었음을 재조명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죽음’이란 마지막이 아니고, 천국에서 새로 태어나는 ‘생일날‘이라는 의식의 전환을 갖게 한 것이다.

죽음과 천국에 대한 확고한 신앙적 가치를 정립시켜 준 알렉산더의 체험은, 내 어머니와의 사별 앞에서 또한 내게 커다란 정신적 위안을 주었다. 어머니 육신의 부재에 두려워하며 혼수상태조차 연명해야 한다는 나만의 고집을 내려놓고, 하늘나라로의 환송식에 기쁨으로 참여 할 수 있도록 하였던 것이다.

사후에 천국이 있다는 논리에는 ‘하나님이 실재 한다’는 전제가 포함된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원인이 있다는 인과율(causality)의 법칙에 따라, 최초의 원인이 되는 하나님이 분명히 살아 역사하시기에 사후의 천국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결론이 된다.

알렉산더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의 존재를 자궁 속의 ‘태아’로 보고, 어머니의 존재를 ‘하나님’에 비유한다. 태반을 통해 영양을 공급해주는 어머니가 있어 자궁 내에서의 태아의 생존이 가능함에도, 태아가 어머니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 또한 세상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우주 만물의 근원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영원 자존자(eternal self-existence One)이신 하나님을 눈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 우리는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오인하는 것이다. 요컨대, 태아의 생명이 어머니로부터 비롯되었듯이, 사람의 생명 또한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하나님으로부터 난 것이니,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의심의 여지가 없어야만 한다는 의미가 부각된 표현으로 볼 수 있겠다.

알렉산더가 임사체험을 통해 천사로부터 받은 메시지는 ‘사랑’이었다. 누구나 창조주의 관심과 보살핌 속에서 조건 없이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은 큰 뜻을 함의하고 있다. 사랑의 실천이 자유의 의지에 따른 ‘선택’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진 지상명령과 같은 의무로서, 서로간의 사랑을 실천해야만 하는 것이 ‘필수’라는 뜻이 포함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하여 하나님께로부터 귀하게 여김을 받는 각각의 사람을 감히 인간의 잣대로 평가하고 미워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사랑이 인간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알렉산더가 친부모를 만나기전, 사랑받지 못하고 ‘버림받았다’는 오해에서도 볼 수 있다. 그는 깊은 마음의 상처로 인해 심한 좌절감을 갖는 위기가 있었다. ‘사랑’이 존재 자체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행복과 불행에 대한 감정의 기복을 좌지우지할 만큼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듯 알렉산더가 겪은 심적 고통의 묘사는, 자녀와 끊임없는 심리적 갈등을 겪고 있는 내게 진정한 깨달음을 제공하였다. 심지어는 ‘나의 아이가 만약 그림이라면, 다 깨끗하게 지워버리고, 그냥 새로 그리고 싶다, 물건이라면 그냥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다버리고 싶다, 벌레라면 밟아서 그냥 죽여 없애버리고 싶다’는 감히 이런 생각까지도 했었던 못난 부모였음을 회개했다.

알렉산더가 겪었던 ‘버려짐’의 아픔보다, 오히려 우리 아이가 못난 부모로부터 받아왔을 ‘소외감’의 고통이 더 컸으리라. 나는 용서를 구하고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이 알렉산더에게 보여 준 무조건적인 사랑에는 누구나 어떤 이유와 조건 없이 사랑받고 소중히 여김을 받는 존재인데... 자녀 또한 한사람의 인격체로서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감히 인간적인 생각으로만 교육하려고 했던 나의 양육방식이 얼마나 큰 죄였던가?

조건 없이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을 닮고자 함이란, 내 안에 자리하고 있는 나의 이기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을 조금씩 지워가는 것이기에, 천국으로 향한 이정표로부터 빗나간 나의 모습을 하나씩 하나씩 지워본다.

 

내 마음에 미움이 존재함이란

내 가슴에 예수님의 사랑이 없고

시기와 질투를 지우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내 마음에 서운함이 가득함이란

내 중심에 예수님의 청심(淸心)이 없고,

과욕과 충족을 지우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내 마음에 분노가 표출됨이란

내 얼굴에 예수님의 용서가 없고

혈기와 고집을 지우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내 마음에 내 목소리가 우렁참이란

내 머리에 예수님의 겸손은 없고,

자만과 교만을 지우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천국으로 향한 이정표대로, 나의 인간적인 모습들을 지워가며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무한한 사랑을 베푸신 주님을 닮아 가는 길임을 알게 해주신 하나님, 그리고 이븐 알렉산더 박사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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