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교회가 건강하게 세워지면 코로나도 문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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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교회가 건강하게 세워지면 코로나도 문제 없습니다”
  • 한현구 기자
  • 승인 2021.01.06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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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태국교회 일군 강대흥 선교사

코로나 시대의 선교 방향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바이러스에 떨며 문을 잠가 버린 나라들을 바라보며, 어떻게 높은 국경의 벽을 넘어 복음을 전할 수 있을지 고민이 깊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전 세계적으로 확대된 지 거의 1년의 시간이 지나도록 귀국하는 선교사들의 숫자만 늘어날 뿐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 실정이다.

사실 머릿속에서는 어느 정도 답을 알고 있다. 현지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고 영향력 있는 리더들을 길러내는 일이다. 그러면 팬데믹 사태와 같은 위기가 벌어져 선교사들이 철수해도 선교지 내에서 제자화가 일어날 수 있다. 현지 이양은 모든 선교사가 결국 궁극적으로 추구해야할 방향이기도 하다.

만약 현지 교회를 세우는 사역이 막연하게 느껴진다면 태국의 사례로 눈길을 돌려보자. GMS(예장 합동 총회세계선교회) 사무총장을 역임한 강대흥 선교사는 태국에서 30년 넘게 사역하면서도 그 흔한 교회 건물이나 선교센터를 세운 적이 없다. 다만 현지 목회자들을 훈련시키고 현지 교회를 선교적 교회로 일으키는데 힘을 쏟았다. 그래서 강 선교사는 코로나 시대의 선교는 건물이 아닌 사람을 세우는 사역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선교사를 만든 서원기도

아내의 서원기도가 아니었더라면 그는 서울에서 평범한 목회자로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80년대 초 전농동에서 교회를 개척해 5년 정도 목회를 이어가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86년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전국에 소방도로를 넓히면서 강대흥 선교사가 목회하던 교회 건물도 헐릴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마땅한 대안이 보이질 않았다.

장로와 권사, 모든 성도들은 30대 초반의 젊은 목사만을 바라봤다.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밖에 없었다. 100일을 작정하고 성도들과 함께 기도의 무릎을 꿇었다. 100일 기도를 마치고 나니 지하 1, 지상 2층의 건물이 저렴한 가격에 나왔다. 분명한 기도의 응답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에 찾아왔다.

아내가 저에게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어요. 100일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이 예배당을 주시면 선교사로 나가겠다고 서원기도를 했답니다. 처음에 저는 못 간다고 했죠. 대형교회는 아니었지만 100~200명의 성도가 안정적으로 출석하고 있었고 예배당도 구한 상황이었으니까요. 80년대 기준으론 선교사로 나가기에 적지 않은 나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하나님과의 약속을 나 몰라라 할 순 없었다. 여기저기 선교사로의 길에 대해 문의하는데 태국 방콕한인연합교회에 목회자가 필요하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 길로 태국에 가서 40명이던 성도들을 1년 만에 80명으로 부흥시켰다. 하지만 타문화권 선교에 대한 마음의 짐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1년의 한인목회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선교사로 훈련을 받았다. 그렇게 선교사로 다시 파송 받아 태국땅을 밟은 것이 1990. 30년 선교 사역의 시작이었다.

 

태국 목회자들을 세우다

선교사 훈련을 받으며 태국어를 열심히 익혔지만 아무래도 서툴렀다. 하지만 서툰 언어의 불안감보다는 젊은 선교사의 패기가 더 컸다. 강대흥 선교사는 태국에 다시 도착한 뒤 가장 먼저 현지 목회자들을 훈련시키는 사역에 뛰어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현지 목회자 훈련은 10년 경력의 선교사에게도 쉽지 않은 사역입니다. 그런데 그때는 그것도 잘 모르고 자신감과 사명감하나로 시작했죠. 그때 태국 목회자들은 언어가 서툰 저에게 알아듣는 것은 우리가 할 테니 당신은 할 말만 하면 된다고 말해줬어요. 믿고 따라와 준 태국 목회자들에게 참 고마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게 한 기수 당 매달 한 주간씩 2년을 가르쳤다. 한 기수에 참여한 목회자들이 대략 20, 11년 동안 사역을 이어가며 10회기를 졸업시켰으니 강대흥 선교사의 태국 제자들만 200여 명에 이른다. 강 선교사는 목회자들을 훈련시키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태국 전역을 돌며 부흥회를 인도하며 현지 교회의 영성을 깨웠다. 목회자들뿐 아니라 사모들에게도 성경필사를 권하며 신앙이 성장하도록 도왔다.

태국교회를 세우는 태국교회

현지 목회자들을 훈련시키고 길러냈지만 그래도 태국에는 교회가 한참 부족했다. 22천개에 육박하는 마을 중 교회가 있는 마을은 4%밖에 되지 않았다. 77개의 도 중에서 교회가 하나도 없는 곳도 있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필리핀의 교회 개척 운동이었어요. 필리핀은 폭발적인 교회 개척 운동으로 10년 만에 6만개 교회를 개척하고 선교사도 600명 이상을 보냈습니다. 필리핀의 모델을 태국에서도 시도해보자고 결심했죠. 천주교 문화권인 필리핀과는 달리 태국은 불교 문화권인 터라 준비만도 2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오랜 준비와 기도의 시간을 거쳐 20172월부터 본격적인 사역이 시작됐다. 지금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사역이 잠시 중단됐지만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많은 교회, 그 중에서도 특히 가정교회가 상당수 세워졌다. 놀라운 점은 전국적 규모의 교회 개척 운동을 이어가는데 필요한 재정을 태국 현지교회가 오롯이 부담했다는 점이다.

태국 복음화는 태국교회가 맡는다는 열정과 책임감 역시 강대흥 선교사의 사역의 열매 중 하나다. 강 선교사는 태국교회도 선교하는 교회가 될 수 있고 돼야한다는 믿음으로 2013년부터 선교학교를 열었다. 방콕에 있는 교회가 연합해 한 번에 40명씩 10회에 걸쳐 성도들을 훈련시켰다.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하는 일은 전면에 나서고 주도하는 일이 아닙니다. 건물을 세우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실적을 남기는 일은 더더욱 아니죠. 진짜 해야 할 일은 현지 교회에 비전을 던지는 것입니다. 그들이 비전을 품고 제자가 되면 자국을 변화시키기 위해 그들이 움직이고 주도적으로 일합니다. 그런 선교지는 코로나 사태로 선교사가 철수해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코로나 시대는 국내 이주민 선교

태국에 일생의 절반을 바친 강대흥 선교사는 지난해 3월부터 국내에 머무르고 있다. 코디네이터로 섬기고 있는 방콕포럼의 일정이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계속 연기된 탓이다. 그는 우연찮은 계기로 국내에 머무르며 새로운 비전을 품었다. 현장 선교사들을 돕는 일과 선교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에 헌신하는 것이다.

현장 선교사들을 도와야 합니다. 어떤 모양으로든지 그들을 돕고 지원해야 해요. 복음을 전하기 위해 머나먼 타국에서 일생을 바친 그들을 한국교회가 잊어서는 안 됩니다. 80년대 한국교회의 폭발적인 성장기에 선교사로 헌신했던 이들이 이제 은퇴를 앞두고 있어요. 그들이 한국에 돌아왔을 때 어떻게 돌보고 섬겨야 할지 한국교회가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으로 외국에 나가는 일이 힘들어지면서 국내에 있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사역이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아직 국내 외국인 사역자에 대한 처우와 인식은 열악한 실정이다. 외국에 있는 선교사들에 비해 주목받지 못하고 선교사라는 이름으로 지원받거나 대우받지도 못하고 있다.

코로나 시대에는 이주민, 다문화, 탈북자, 난민 국내 무슬림 사역이 가장 중요한 사역이 되리라 봅니다. 이젠 국내에 있는 타문화 사역자들의 명칭을 언어권 선교사로 불러야 해요. 그러면 지역교회에서도 그들을 선교사로 파송하고 후원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질 겁니다. 그들도 더 자부심을 느끼고 안정적으로 사역에 임할 수 있겠죠.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선교사와 한국교회가 위축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활로를 찾고 격려 받을 수 있도록 헌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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