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중에도 한국교회를 도왔던 사람들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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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중에도 한국교회를 도왔던 사람들 많아
  • 민경배 박사
  • 승인 2020.11.10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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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배 박사에게 듣는 ‘코로나와 한국교회’ ⑦ - 누가 내편인가 누가: 한국교회와 일본 사이
민경배 박사
민경배 박사


일제의 한국교회 탄압사 36년간의 일제 통치 아래 가장 통렬 한 형극의 길을 간 것이 한국교회였다. 일제는 한국통치에 가장 큰 저해요소 가 교회라 겨누고 한국교회를 고사시 킬 잔학하고 극한 압박을 가한다.

한국교회를 손잡아 주었던 <내편>이 있었던가 있었다. 105인사건 때, 그 변호인단 장을 맡았고, 2차 대전 종전 후에는 연 합국 일본전범재판소 변호인단장을 맡았던 에자와 히로아키다. 그는 105 인 사건을 맡았던 1912, 평양 장로 회 창립총회에 와서 눈물로 인사를 한 다. 전국에서 대표적 기독교인 700 명을 잡아다가 처단해서 한국교회를 말살하려던 일제경찰인데, 에지와는 105인만을 유죄판결 받게 한다. 1915년 한국 초대 총독 데라우치는 한국교회의 명맥을 끊으려고 개정 사 립학교령을 내려 기독교 교육의 숨통 을 끊으려한다. 헌데 바로 1917년에 연 희전문학교와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가

기독교연합재단으로 설 립 인가를 받는다. 이것 은 엄청난 수수깨끼다. 거기에는 총독부 내무 국 장관 우사미 가츠오 란 기독교인의 손길이 있었다. 일본의 동경도 지사로까지 영전되었던 인물인데, 교묘한 방법 으로 기독교재단 설립을 인가하게 한다. 한데 1912.6.15일자 재판 어드바타이저란 일본 안의 언론에 데라 우치를 속 좁고, 비겁, 오만, 우둔, 무학이란 글이 실린다. 당 시 이런 기사는 대담한 것으로 아무리 영문판 발행이라 할지라도 일본 안에 서의 보도란 점에서 놀라울 뿐이다.

 

3.1독립운동 때 한국 편에 선 거대 인사들 3.1독립운동이 한참일 때 3.1독립 운동을 옹호하고 일본 군경의 진압방 법을 여지없이 맹타한 거물 일본인들 이 있었다. 도쿠도미 소호란 인물인데 당시는 총독부 기관지 서울 프레스

총감독이란 명예직에 있었지만, ‘일본 국민사’ 100권을 저술하고 일왕과도 가깝고 일본군벌 수장 야마가다 아리 도모와도 절친한 국수파 황도주의자 였다. 다른 한 사람은 총독부 종교과장 학 무과장을 역임하고 후에 북해도청 장 관, 요코하마 시장을 여러 차례 역임한 일본 고등 관료 나카라이 기요시다. 그 는 3.1독립운동과 한국교회를 폄하하 고 탄압하는 일본 모노-새끼들이 있 다는 말로 총독정치를 비판 성토하고

있었다.

<성서조선> 폐간 안 된다 일본 육군 대좌 야마 다는 193912월 김교 신에게 글을 보내 성서 조선이 폐간되어서는 안 된다고 흥분한다. 무 슨 일이 있어도 계속 그 사명을 다하라고 격려 한다. 일본 육군 군벌의 거물이 한 말이다. 패전 후 동경대 총장을 맡는 야나이하라 다다오는 신사참배로 시달리는 한국교회를 위 로하려 내한하고 있었다.

나는 한국 혈통고백 200112월 당시 일왕 아키히도는 68회 생일에 깜작 놀랄만한 말을 한 다. 곧 자기는 한국인 혈통이란 것. 백 제 무령왕의 딸 다카노 니이가사의 아 들이 간무천황이기 때문이다. 저쪽에 우리와 손잡는 벗이 있다. 여 기에 바로 세계역사와 그 미래 천국의 약속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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