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 - 역사를 외면한 기장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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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현장 - 역사를 외면한 기장총회
  • 승인 2004.06.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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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허가가 이미 나있는 건물을 문화재로 지정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내일이라도 포크레인을 가져다가 헐어야 마땅합니다.”

지난 10일 한신교회에서 열린 기장 임시실행위원회는 서대문 총회교육원 건물의 서울시 문화재 지정여부를 놓고 뜨겁게 달아올랐다. “문화재 지정의 이유가 고작 건축양식 때문이랍니다. 건축양식이 보존가치가 있다고 우리 재산을 빼앗길 수 있습니까.” “우리 기장이라는 교단자체가 문화재 아닙니까. 굳이 건물을 문화재로 지정할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총회회관이야말로 잘 지어서 후손에게 물려줄 유산이 아니냔 말이에요.”

실행위원들의 성토는 끊이질 않았다. 서대문 교육원의 원형보존을 주장하는 대책위원회의 항변도 있었지만 소수의 의견은 철저히 묵살됐다. 이에 반발한 일부 실행위원은 “기장이 유신정권이냐”고 소리쳤다. 그동안 소수의 힘이지만 바른 소신과 원칙으로 한국교회를 리드해온 소위 ‘기장성’은 총회회관이라는 수백 억 가치의 재산 앞에서 무참히 허물어져 갔다. 그들에게 문화유산은 중요하지 않았다. 눈앞의 이익이 뻔히 보이는데 이를 서울시에 빼앗겨 버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모양이었다.

문화유산을 어찌 물질적 가치로 판단할 수 있을까. 서울시 문화재 전문위원들은 총회교육원의 건축양식으로 지정여부를 판단하지만 그 안에는 기장이 걸어온 한 세기 가까운 역사가 숨쉬고 있다. 지금 당장이야 활용가치가 없을지 몰라도 문화재의 가치는 세월이 지날수록 빛을 발한다. 도시전체가 문화재나 다름없는 프랑스 파리는 지금도 건물 개보수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들은 역사적 자부심과 전통을 소중히 생각하며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역사와 전통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정신적인 유산만 남겨 놓으면 그뿐이라는 편협한 생각이다. 우리나라가 고구려를 우리 역사로 지킬 수 있는 힘은 정신적 유산이 아니라 문화유적과 자료에 근거한다. 건물은 언제든지 다시 지을 수 있지만 한번 잃어버린 문화유산은 되찾기 어렵다는 사실을 망각한 듯하다.

교단 희년 사업으로 중국 용정지역을 찾아 문익환목사의 생가를 복원하고 민족종교의 뿌리를 찾아 나선 기장총회. 용정의 유적을 복원하는 것과 총회교육원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같다. 그러나 원칙 없는 교단의 정책은 소수의 의견을 묵살한 채 ‘맘몬’을 향해 달려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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