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지 못하고 드리는 예배는 혼돈(混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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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하고 드리는 예배는 혼돈(混沌)이다
  • 정장복 교수
  • 승인 2020.08.25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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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복 교수의 코로나 시대와 예배 ②

하나님이 인간을 싫어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드리는 예배를 외면하신다면 그 세계는 참담한 비극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 종국에는 교회의 존재 의미와 그 가치마저 상실되고 교회 없는 세상으로 탈바꿈을 하게 될 것이다. 거기에는 하나님과의 소통이 단절되고 오직 흑암과 혼돈을 주 무대로 하는 사탄의 기세만이 난무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그리스도교는 예배의 중요성을 어느 종교보다 우선할 뿐만 아니라, 예배를 교회가 존속하는 제2의 생명줄로 여긴다.


그런데 이제 한 세기를 넘어 성숙한 나이에 접어든 우리 한국교회가 시급하게 실천해야 할 과제가 있다. 그것은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요 4:22)라는 말씀에 대한 민감한 반응이다. 많은 교회가 이 말씀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아직도 상당수의 교회가 예배의 고유한 특성이나 기본적인 규칙을 모르고 예배라는 이름만 따르고 있는 현상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성도들은 자신이 몸담은 교회의 목사가 예배라는 이름만 붙이면 아무런 분별없이 맹종하면서 ‘아멘’을 연발한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목사의 말만 따르는 것을 최상의 예배행위로 여긴다. 심지어 목회자의 입신출세를 위하여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성도들을 이끌고 다니면서 예배라는 이름을 붙여 오도(誤導)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을 보노라면 깊은 한숨을 멈출 수가 없다. 아무데서나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고 설교만 있으면 예배가 된다고 생각하는 성직자들이나 성도들에게 묻고 싶은 말이 있다. 그것은 예배의 대상을 비롯하여 예배의 원칙과 규칙과 내용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예배는 타 종교의 예배 행위와는 전혀 개념을 달리한다. 타종교는 예배하는 목적을 예배자의 소원성취와 부귀영화와 무병장수의 복을 받는 데 있다. 대부분이 오직 거기에 초점을 두고 있는 정성을 다 기울인다. 즉, 그들의 예배는 예배자 또는 구도자의 희구(希求) 현장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예배는 응답의 현장이다. 그 예배의 자리는 무엇을 구하거나 한풀이를 하는 자리가 아니라 자신이 이미 받은 은총에 대한 응답의 현장이다. 그 은총은 개인의 육적인 조건의 충족이 아니다. 인간의 영육에 대한 생명이 직결된 은총이다. 먼저는, 조물주 하나님이 우주 만물과 그 가운데 나의 생명까지 주신 창조의 은총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은총은 죄값으로 죽은 나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을 통하여 살려주신 구원의 은총이다. 이 두 은총을 깨달은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 부른다. 이 놀라운 진리를 알고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을 얻게 된 성도는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을 향하여 “내가 어떻게 그 은혜를 보답하리까?”라는 감격의 응답을 하게 된다. 그래서 레이몬드 압바와 같은 예배신학자는 그의 ‘Principles of Christian Worship’에서 “예배는 계시와 응답이 있는 가장 실감 나는 현장이다”라고 말한바 있다. 여기에서 계시란 개인의 미래를 알려주거나 금은보화의 저장소를 알려주는 세속의 개념이 아니다. 압바가 말한 계시란 하나님이 무엇을 하셨으며,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시며, 장차 무엇을 하실 것인지를 66권의 성경을 통하여 재조명해주신다는 뜻이다. 그리고 응답이란 받은바 창조와 구원의 은총을 되새기면서 보답의 차원에서 드리는 최선의 마음과 뜻과 정성을 말한다.


이 응답은 단순한 정적이고 육감적이고 감정적인 것만으로 이룩될 수 없다. 올바른 신앙이 뿌리내린 인간 이성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예배의 참뜻과 근본과 참모습을 터득하고 참된 예배자로 살기를 원하는 의지와 실천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이러한 이성과 의지와 믿음을 소유하고 드린 성도들의 예배를 원하신다. 이럴 때 우리의 성도는 사마리아인들처럼 예배의 대상이나 실상을 바로 알지 못하고 예배한다는 주님의 지적을 피할 수 있다. 그리고 다음의 말씀 앞에 경건한 마음으로 옷깃을 여미게 된다. “참되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을 찾으신다.”(요 4:23, 현대인의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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