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이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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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이고 싶어라
  • 승인 2004.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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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철사관 / 구세군사관학교장

“아내가 너무 힘들어해요.” 사업 때문에 동분서주 바쁘게 뛰어다니는 아내의 노고를 알아주는 남편의 애정 어린 말 한마디이다. 자기의 수고를 알아주는 남편의 말에 고마워하면서 부인은 이렇게 심정을 이야기했다.

“십여 년 간 남편은 한의사로, 나는 돈을 번다고 뛰어다니느라 가정의 정을 나누지 못하고 살아왔어요. 그런데 요즘은 나이 탓인지 건강 탓인지 모르겠으나 남편과 아이들 얼굴을 마주 보면서 살고 싶어요. 젊었을 때는 열심히 벌어서 즐겁게 살았던 세월이 지금 와서는 나를 슬프게 만드는 것만 같아요. 요즘엔 정말 아내다운 아내가 되고 싶어요. 남편이 생활비를 벌어서 가져오면 남편의 수고로움도 느껴보고 싶고 비록 적은 금액이라도 그 돈으로 살림살이 계획도 세워보고 싶고 아이들 옷이나 남편 옷들을 매만지면서 사람 사는 정이 무엇인지 느껴보고 싶어요.

그동안 장사 속에 빠져들면서 가정을 가정이라고 느껴보지 못하고 지내왔어요. 아내이면서 아내가 무엇인지, 어머니이면서 어머니가 무엇인지 느끼면서 살지를 못했어요. 그저 컴컴할 때 출근해서 캄캄할 때 들어오는 반복 생활 속에서 가정은 한낱 의무감에서만 살아온 것 뿐이지 정이나 사랑, 기쁨, 즐거움 등 인정어린 생활은 한번도 살아보지 못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이토록 메마른 인생이 되버린 것은 거센 세파에 찌든 인간으로 살아왔기 때문인 것 같아요. 지금 하는 사업은 멈출 수 없고 자녀들은 커가고 사업이 늘어나다 보니 쓰임새는 더욱 커지고…. 무엇 때문에 사는 것인지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어요.

얼마 전에 친구를 만났는데 얼마나 부러웠는지 몰라요. 겉으로 보기에는 예쁘지도 않은 여고시절 친구였는데 조그마한 장사를 하면서도 온 가족이 정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부러웠어요. 아내답게, 어머니답게 남편에게 사랑받고 자녀들한테 존경받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무척 부러웠어요. 이것이 바로 아내이고 어머니라는 성스러운 직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이 교회 못지 않은 또 다른 성직의 영역이기에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기를 기도했어요. ‘하나님 나를 가정의 선교사로 사용해 주십시오’라고요.

사관님, 이대로 가다가는 내 인생은 마치 길가에 버려진 폐차 신세가 되버리고 말겠지요. 남편이 거들떠 보겠어요, 자식들이 존경을 하겠어요. 그래서 가끔이면 잠을 자다가도 놀래곤 하는데 내가 돈을 쫓아다니다가 가정을 잃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내가 다시 태어날 수만 있다면 가정을 지키는 아내로 태어나고 싶어요.” 그분 스스로는 ‘나는 돈을 벌기 위해 태어난 돈벌레’, ‘사업에 중독된 여편네’라고 격하시켜 말했지만 저 깊은 내면 속의 좌소에는 아내, 그리고 어머니라는 본연의 아름다운 여성의 성직이 자리잡고 있었다.

둘이 뛰어야 살 수 있는 사회적 상황 속에서 행복한 아내로, 현모양처의 어머니로 돌아가고 싶은 넋두리 같은 이 이야기는 바로 오늘의 아내와 어머니들에게 과제를 안겨주는 것 같이 느껴졌다. 특히 일에 시달려 지친 여성들의 경우 가정의 행복이 무엇인가를 새삼 느껴지게도 한다. 오늘의 가정이 여관 신세를 면치 못하고 사업의 중매처 또는 사업정보센터로 전락해 버린다면 그 가정은 시장과 다를 게 없을 것이다. 아내는 한국말 고어에서 ‘안해’, 곧 가정의 태양이라는 뜻이라는데 아내가 살아나야 가정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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