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성 장애 청년, 교수로 세상 앞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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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성 장애 청년, 교수로 세상 앞에 서다
  • 공종은 기자
  • 승인 2020.07.27 2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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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대 인터랙티브콘텐츠학과 윤은호 박사의 신앙

친구들과 똑같이 일반 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
신앙과 기도의 힘으로 지금까지 성장…하나님께 감사


지독한 왕따를 경험했고, 그림자처럼 찐득하고 어둡게 따라다니던 학교 폭력의 난폭함도 겪어 냈다. 하지만 사람들과 어울리기는 쉽지 않았다. 아니, 어려웠고 피하고 싶었다. 자폐성 장애가 그랬다. 누구도 쉽게 곁을 내주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 걸음 한 걸음 잘 걸어왔고, 어렵게 소통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학교 강단에 섰고, ‘자폐성 장애인 최초’라는 수식어가 그를 설명했다. 인천 부평에서 만난 윤은호 교수(35세. 인하대학교 인터랙티브콘텐츠학과)는 이런 과정을 겪어온 밝고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 두 살 때 자폐 진단

윤 교수가 두 살 때 아버지와 어머니는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첫 아이를 치료하기 위해 병원마다 돌아다녔지만 해결책은 없었다.
 
“제가 두 살 때 자폐 진단을 받았어요. 그래도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 많은 병원을 돌아다녔지만 소용없었죠. 그때 의사 선생님이 부모님에게 ‘신앙을 갖고 있다면 교회에 가서 펑펑 운 다음 이 아이에 대한 모든 소망을 지워버리라’고 이야기했어요.”

마음이,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였다. 그러나 윤 교수의 부모는 어린 아들을 위해서도 더 강해져야 했다. 인지치료를 비롯한 재활치료는 받게 했지만 장애인 교육시설과 학교에서 공부하게 하지는 않았다. ‘자폐를 안고 있지만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고 공부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에는 인천의 한 교회가 운영하는 선교원에 보냈고, 유치원과 초등학교, 중학교와 고등학교 모두 인천의 일반 학교를 다니면서 혼자 서서 친구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게 했다.
 
학교생활과 사회 적응 훈련이 쉽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윤 박사의 유년은 여느 자폐성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어울리려는 친구가 없었고 따돌리고 괴롭히고 수시로 주먹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부모의 의지는 확고했다.

“일반 학교에서 공부하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이런저런 괴롭힘도 많아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었어요. 견디다 못해 다른 학교로 전학을 해야 했는데, 집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걸리는 곳이었어요. 거기를 매일 아버지가 직접 데려다주셨어요.”
 
이런 윤 박사에게도 고등학교 3학년은 닥쳤다. 학교에서 밤 10시까지 자율학습을 하면서 공부했고, 주저앉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다른 친구들과 똑같이 학원도 다녔다.
 
“생각보다 좋은 성적이 나왔어요. 그래서 서울대학교를 가고 싶었고, 어머니가 기도를 많이 하셨죠. 준비를 잘해서 원서를 썼는데, 당시 서울대에는 자폐성 장애 학생을 합격시킨 경우가 한 번도 없다고 해서 그 뜻을 이루지는 못했어요.”

경희대학교와 중앙대학교에도 지원했지만, 자폐성 장애를 앓고 있는 학생에게는 벽이 높았다. 원하는 대학에 가지는 못했지만, 인하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에 지원해서 합격했다.

윤은호 교수는 자폐성 장애를 딛고 교수가 된 최초의 인물이다.
윤은호 교수는 자폐성 장애를 딛고 교수가 된 최초의 인물이다.

# 가능성이 없어 보이던 길이 열리다

게임과 영화, 방송과 문학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들이 생산되면서 환영받는 분야이지만, 당시에는 생소했던 문화콘텐츠학을 공부하기는 쉽지 않았다. 어느 것보다 빠르게 변하고 소비자와 사회의 요구를 읽고 이끌어가야 하는 콘텐츠 산업은 자폐성 장애인 윤 교수를 혹독하게 몰아쳤고, 대학 2학년 때 만난 스승 백승국 교수는 많은 힘이 됐다.

“백 교수님이 많이 격려해주시고 힘이 돼주셨어요. 대학원도 문화콘텐츠 전공을 했는데, 문화경영학을 전공하면서 2016년에 ‘스마트 e 콘텐츠 제작 방법’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었어요.”

박사 요원이라고 윤 교수를 기다리는 회사는 없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어렵게 들어갔던 모 신문사는 2년 2개월 후 문을 닫았고, 지원했던 박사 후 연구원인 포닥(Post Doctor)에서도 소식은 없었다. 그러다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에서 인턴 사원으로 일하던 윤 박사에게 백 교수는 ‘강의를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조언했다. 가능성이 없어 보였던 길이 오히려 여기서 열렸다. 2019년 모교인 인하대학교에서 강의를 할 수 있었고, 문화콘텐츠학과에서 후학들을 만났다.

“첫 강의는 2019년 2학기 강의였어요. 문화콘텐츠문화경영학과 초빙교수로 ‘심리학과 웰니스콘텐츠’를 강의했는데, 3학점 강의에 50명의 학생이 수강했죠. 사람의 감성에 관심을 갖는 웰니스콘텐츠와 장애인과 사람들의 문제 해결을 돕는 스마트힐링콘텐츠 소개와 개발을 위한 강의들을 주로 했습니다.”

한 학기 강의 후 윤 교수에게 전달된 학생들의 평가는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 “변화가 빠르고 민감한 것이 콘텐츠 산업인데, 그런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고, 방향을 제대로 잡지도 못한 것이 그 이유였다”고 자신의 강의를 분석한 윤 교수는 학생들의 이런 평가도 받아들였다. 수강 학생이 8명으로 줄어들고, 올해 1학기 강의를 포함해 1년 정도 지나자 감이 잡혔다고 했다.

복병은 또 있었다. 코로나19. 윤 교수라고 비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모든 온라인 강의를 혼자 준비해야 했고, 강의를 위한 영상과 PPT 제작에 많은 시간을 들였다. 윤 교수의 한 강의는 세 시간. 한 번 강의할 때마다 60매 이상의 PPT를 만들었고, 이렇게 한 학기, 그리고 1년의 시간 동안 후학들을 만나고 세상의 변화와 함께했다.

# 다음세대-청년들 위한 콘텐츠 개발 필요

윤 교수의 지금은 신앙이었기에 가능했다. 건강보험공단에 다니다 은퇴 후 목사 안수를 받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바위 같은 신앙이 그랬고, 윤 교수 또한 어릴 때부터 가족 대대로 출석한 숭의교회(담임:이선목 목사)에서 깊이 뿌리내린 신앙 때문에 흔들리지 않았다. 

“증조할아버지가 북한 평안도 회창에서 목회를 하다가 순교를 당하셨는데, 아버지가 2018년에 목사 안수를 받으시고, 이 지역의 이름을 따 회창교회라고 이름을 짓고 교회를 개척하셨어요. 그리고 지금은 탈북자 사역과 함께 목회를 하고 계세요. 제가 지금까지 올 수 있었고, 사회의 일원으로 설 수 있는 건 신앙 때문이고, 기도의 힘이에요.”

윤 교수는 주일 오전에는 아버지가 목회하는 회창교회에서, 오후에는 숭의교회 청년부에서 신앙생활을 한다. 나이 서른다섯의 자폐성 장애인이지만 스스럼없이 친구로 함께 지내면서 하는 신앙생활은 큰 기쁨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난해부터는 ‘숭의미래목회연구소’ 모임에 다른 두 명의 박사와 함께 참여하면서 세상을 향해 열린 교회, 세상을 품은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목회를 기획하고 연구한다.

윤 교수는 교회가 온라인 사역에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대부분의 교회들이 유튜브를 시작했죠. 이제 온라인 예배, 온라인 교회에도 대응해야 합니다. 지금보다 더 적극적이어야 해요. 예배당에 나와서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교인들은 현장 예배를 드려야 하지만, 온라인으로 예배하는 교인들을 위해서도 다양한 신앙 콘텐츠를 제공해야 하죠. 이것을 통해 복음을 더 가깝게 느끼고 다가갈 수 있게 해야 하고, 사람과 공동체가 줄 수 있는 신앙의 역동성을 회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음세대, 그리고 청년들에 대한 애정도 드러냈다. “지금 유튜브는 콘텐츠 경쟁인데, 교회가 운영하는 유튜브나 온라인은 평범하기만 하고, 특히 다음세대와 청년들을 위한 콘텐츠가 없다. 이들을 위한, 젊은층이 호흡하고 공감하면서 공부할 수 있는 콘텐츠, 말씀을 기반으로 한 개인의 신앙 성장을 위한 콘텐츠 개발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가나안 성도가 더 많아지고, 안티 기독교 세력들이 점차 증가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 교회의 변화에 대한 기대와 바람을 전했다.

“저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사회에서 승리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이 필요한데, 인적 자원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고, 교회를 사람들이 오고 싶은 곳으로 만들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어요. 그리고 미래의 한국 교회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기억하고 일해야 합니다. 지금 여기서 예수를 만나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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