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됐냐?’ ‘이제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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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됐냐?’ ‘이제 됐지?’
  • 노경실 작가
  • 승인 2020.06.23 0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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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실 작가의 영성 노트 “하나님, 오늘은 이겼습니다!” -103

고린도후서 5: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비기독교인에게는 절대 알리고 싶지 않은 유머? 아니 쓰라린 이야기 하나가 있다.

세상에서 부부로 살다가 이혼한 남녀가 우여곡절 끝에 천국에 가게 되었다. 그런데 천국에서 만나고보니 다시 부부가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찾아갔다. “하나님, 우리가 세상에서 이혼했으니 그것을 무효로 하고 다시 결혼할 수 있도록 변호사를 소개시켜주십시오.” 그러자 하나님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좋은 의견이지만 요즘 변호사들이 천국에 잘 오지 못해서... 좀 기다려 보거라.” 그래서 두 사람은 날마다 천국 문만 바라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한 변호사가 천국에 입성했고, 두 남녀는 원하던대로 그 변호사를 통해 이혼무효 절차를 끝냈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을 찾아왔다.

“하나님, 이제 서류 정리를 마쳤으니 다시 결혼할 수 있게 주례를 서 줄 목사님을 소개해주십시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하나님이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목사가 천국에 온 지 너무나 오래 전이고, 앞으로도 올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구나.”

그래서 두 남녀는 아직 결혼식을 못 올렸다는, 정말 남들이 들을까봐 부끄러운 유머가 있다. 내가 이런 치욕스런 이야기를 들은 것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크리스천을 위한 텔레비전 방송에서다. 그것도 성경 관련 프로그램에서! 나는 이때 방송을 보다가 화를 냈다. ‘물론 이 정도로 교회 리더들에 대한 불신이 커서이겠지만, 스스로 얼굴에 먹칠을 하는 말들을 방송에서 우스개 소리로 하다니! 그래도 우리에게 목회자들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데!’

그런데... 내가 바로 그 먹칠의 주인공이 되는 날이 바로 그 주에 일어나고 말았다. 교회에 몇 분의 부목사가 있는데, 언제부터인가 A목사를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바이러스 사태가 있기 전부터 그랬다. 주일 아침 교회 로비에서 만나면 인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내가 잘못 생각한 거겠지, 하고 참고 넘겼다가 현장 예배가 시작되는 첫 주였다. 나는 ‘기뻐 뛰며 찬송하는’ 심정으로 교회 로비에 들어섰다. 이런! 성도들이 서로 인사를 하고 기쁨을 나누는데 이번에도 A목사는 사람을 골라서 인사하듯 했다. (나보다 먼저 교회에 등록한 셀 식구에게 물어보니, ‘나도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사람들 말로는 자기가 맡은 교구 사람들을 챙기느라 그런 것 같다고 하더라구요’라고 대답해주었다.)

나는 나름대로 정의의 분노를 하기 시작했다. ‘다음 주에도 사람을 골라가며 인사하면 직접 말하리라!’ 그러면서도 마음 한 편으로는 한국교회 신자들 특유의 ‘두려움’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목회자들에게 바른말(?)을 해도 되나? 심지어는 루터까지 소환했다. ‘그러고 보면 가톨릭 집단에 온몸으로 맞선 루터는 우리랑은 비교도 할 수 없는 존재구나. 나는 고작 이런 일로 벌벌 떠는데...’

그런데 사건은 바로 그 다음날, 즉 월요일 오후 2시 쯤에 벌어졌다. 출판사와의 미팅으로 집 앞에 있는 교보문고 안에 있는 커피점에 들어섰을 때였다. 누군가 큰소리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를 불렀다. “성도님, 안녕하세요?”

아...  A 부목사였다. 그는 사모와 어린 딸과 함께 서점에 왔다가 찻집에 들렸다고 하며, 온 가족이 나에게 인사를 했다. 놀랍게도 그는 내 이름과 직업까지 훤히 알고 있어서 사모에게 내 소개를 길게 해주었다. 나는 얼굴이 뜨거울 정도로 시뻘개졌다. 땀까지 났다. 마스크가 아니었다면 부목사가 놀랐을 정도로. 그때, 묵직한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이제 됐냐? A 목사뿐 아니라 온 가족이 네게 인사했으니 이제 만족하냐?’ 그리고 또 들렸다. 
‘이제 됐지? 비밀 하나 가르쳐줄까? 모두 너보다 나아. 그러니 나만 바라봐. 네가 A목사 쳐다보고 판단할 때, 너는 나를 안 봤지? 난 그때도 너만 봤거든.’ 

미팅을 마치고 집으로 걸어가는 뜨거운 여름 햇살 속에서 주님의 목소리가 서늘한 바람처럼 내 마음을 휘감았다. 

“오늘부터 A목사를 위한 기도를 시작해라. 네가 늘 기도하던 식으로 ‘우리 교회 목회자분들 어쩌구저쩌구...’ 라고 하나로 몰아서 기도하지 말고 A목사 이름을 부르며 제대로 기도해라. 그리고 저 예쁜 초등학생 딸이랑 집에 있는 더 어린 딸에게 예쁜 선물을 해라.”

나를 기쁘게 하고, 내 마음을 만족케 하려고 했던 나의 전혀 의롭지 않은 생각은 이렇게 처참하게 막을 내렸다. 주님을 기쁘게 하려는 마음은 완전히 잊은 채 ‘의로움’을 가장하고, 마음대로 상대를 헤아린 나의 극렬하기 짝이 없는 졸렬함과 찬란하다 못해 가짜 금가루가 떨어지는 듯한 유치함. 그래서 ‘이제 됐냐?’와 ‘이제 됐지?’ 이 두 소리는 채찍과 격려라는 두 가지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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