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트럼프의 성경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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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트럼프의 성경책
  • 한현구 기자
  • 승인 2020.06.09 15: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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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목숨을 잃은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인종차별에 분노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기독교인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퍼포먼스가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인근의 세인트 존스 교회로 들어가 성경책을 치켜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퍼포먼스 직전 기자회견에서 폭력시위 진압을 위해 군대를 동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교회로 발걸음을 돌렸다. 교회로 향하는 길, 경찰은 대통령의 앞길을 열기 위해 평화롭게 시위하고 있던 시민들에게 최루탄과 고무탄을 쏴댔다. 그러곤 대통령은 성경책을 높이 치켜들었다. 

폭력시위는 분명 어떤 의도로든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성경책을 내세웠던 그날의 하루 역시 폭력적이었다. 시위를 촉발한 뿌리 깊은 인종차별과 폭력적 진압에 대한 발언은 일체 없었고 군대 투입이라는 칼을 꺼냈다. 교회를 방문하는 과정 역시 평화 시위대에게 최루탄을 쏜 칼의 길이었다. 

그는 왜 강경한 발언을 쏟아낸 뒤 성경책을 치켜들었을까. 자신의 지지기반인 백인 기독교 우파 세력을 겨냥한 지지 호소의 의미가 담겨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예수님께선 하나님과 우리 사이 가로막힌 벽을 자신의 몸으로 허무셨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검정색 성경책은 일견 자신의 지지세력과 시위대 사이에 세워놓은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내 경선 과정에서 가장 좋아하는 성경구절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꼽았다고 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우리에게 성경은 어떤 의미인가. 내 생각을 뒷받침해줄 수단인가, 아니면 내 주장을 꺾고 따라야 할 진리의 말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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