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일어나라, 우리 함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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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단상]일어나라, 우리 함께 가자
  • 이승수 목사
  • 승인 2020.05.26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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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수 목사 / 양문교회 담임

2020년 우리가 사는 세상은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지구촌이 온통 고통과 좌절 가운데 있다. 세계 도처에서 죽음의 슬픈 소식과 절망의 비탄한 절규가 터져 나오고 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고, 죽음의 두려움과 암울한 현실에 빠진 이웃들에게 국가와 사회는 구호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

이러한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보다 앞장서서 고통받는 이웃의 눈물을 닦아 주고자 구제와 사랑을 베풀고 있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다. 기독교 정신 중 가장 위대한 가치라고 하는 ‘이웃사랑’인 것이다(마 22:39~40).

예수님도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종교, 지역, 계층, 이념을 뛰어넘어 사랑을 실천하라고 하셨다. 자비를 베푼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너도 가서 이와같이 하라”고 하셨다(눅 10:37).

그리스도인의 삶은 선을 행하는 삶이다. 요1 3:7에는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고 했다.

천국은 애통하며 곡하며 살아온 인생들의 눈의 눈물을 닦아 주는 곳이라고 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요한계시록 21:4)

우리도 예수님처럼 아파하는 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며 슬픔에 빠진 이웃들의 가슴을 안아주는 위로자가 되어야 한다.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주는 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가 사는 세상은 희망이 있고, 미래가 보이는 것이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에서(마 6:9~13) 우리는 복음의 정신을 알 수 있다.

‘우리’라는 단어다. 나의 아버지가 아니고 우리 아버지요, 나의 양식이 아니고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옵고, 나의 죄를 사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한다. 내가 시험에 들게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해 달라고 한다.

세상은 나 하나로 인해서 복되게 사는 곳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같이 바르고 복되게 살아야 천국이 된다는 것이다. 고통 하는 이웃이 있는 한 우리 사회는 불안하고, 위험한 것이다.

아프리카 격언에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함께 이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 가야 한다. 특별히 우리 사회의 많은 어려운 이웃과 고통 하는 미자립교회를 우리는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의 신음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며 위로와 용기를 주어야 한다.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교회를 누군가 ‘미자립 교회’라 부르지 말고 ‘미래 교회’라고 칭하자 했다. 우리가 미자립교회에 손을 내밀어 주면 그 미자립교회가 미래에는 자립되어 누군가를 돕는 미래와 희망을 만드는 ‘미래희망 제작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사회적 약자와 연약한 이웃, 지극히 작은 자들에게(마 25:40) 불투명한 미래로 인해 떨고 있는, 신음하는 작은 교회를 위해 도움과 위로의 손길을 내밀자. 하나님 나라는 같이 가는 곳이다. 몇몇 큰 교회만 성장하고 잘된다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큰 교회와 작은 교회가 연합해서 같이 갈 때 복음은 지역 지역에서 생명력 있게 전파되는 것이다. 우리의 고통 하는 이웃과 신음하는 ‘미래 교회’의 손을 맞잡고 우리 일어나 함께 가자. 이것이 복음이고, 이것이 복음의 가치 실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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