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선언(11) (153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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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선언(11) (1531년)
  • 주도홍 교수
  • 승인 2020.05.12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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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도홍 교수의 츠빙글리 팩트 종교개혁사-90

영생을 누리는 영혼
츠빙글리에게 이 땅의 삶은 하나의 포로 생활과 죽음으로 이루어진다. 이 삶이 끝나면 두 종류의 영생이 있다. 경건한 성도들과 믿는 자들을 위해서는 행복하고 기쁜 삶이, 하나님이 없는 무신론자나 불신자들에게는 비참하고 슬픈 삶이 기다린다. 츠빙글리는 재세례파의 견해를 이성에 반하는 오류로 정죄하는데, 죽은 자들의 영혼과 육체가 최후 심판까지 무덤에서 잠자고 있다는 그들의 주장이다. 그렇지만 인간과 천사의 영혼은 살아있는 실체로서 결코 잠들 수 없으며, 비활동 상태일 수 없다. 츠빙글리는 재세례파의 영혼관을 ‘어리석고 의미 없는 거짓말’로 정죄하며, 철학적으로, 성경적으로 반박한다. 재세례파는 아직 사람들을 미혹할만한 설득력이 없는 수준 미달로 혹평한다. 츠빙글리는 먼저 철학적으로 반박한다. 철학자들은 중단없는 활동성과 그 능력을 발휘하여 끊임없는 생명력과 깨어있음을 제시하는 영혼을 하나의 행위와 활동으로 부르는데, 깊은 뜻을 가진 헬라어 엔텔레키가 바로 이것을 말한다. 영혼이 바로 인간의 모든 몸 안에 있는데, 꿈은 바로 이것을 보여준다. 인간의 잠은 육체의 잠이지, 영혼은 잠들지 않기에, 꿈은 잠들지 않은 영혼의 활약이라는 말이다. 영혼은 몸 안에 있는 동안 한 번도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영혼은 언제나 살아 깨어있고, 그 능력을 발휘한다. 

츠빙글리는 ‘천국 삶의 맛보기와 시작을 아는 주님의 참으로 달콤한’ 말씀(요 5:24)을 가져와 잠들지 않는 영원한 생명을 강조한다. 믿는 자가 죽는 순간 몸은 잠들되, 영혼은 그 즉시 몸을 빠져나와 이 세상 삶보다 나은 삶, 곧 늘 깨어 감각적으로 하나님을 기뻐한다. 츠빙글리는 요 3:36; 17:24; 17:3; 14:3을 가져와 영생이 영혼의 잠으로 중단된다면, 그런 삶은 영생일 수 없는 것이다. 다르게는 신성은 잠들지 않는 것처럼 영혼은 잠들지 않는다. 영혼이 무덤에 갇힌 몸과 함께 잠드는 것이 아니라, 영혼은 몸에서 나와 천국으로 날아오르며, 거기서 하나님과 교제 가운데 영원히 즐거워한다. 

영생은 오직 믿음으로
이 대목에서 츠빙글리는 프랑수아 1세에게 권면한다. 곧 다윗, 히스기야, 요시아 같은 믿음의 선조처럼 프랑수아 1세도 하나님이 부여하신 왕권을 제대로 사용하여 미래에 전개될 고갈되지 않고 무한한 영적 축복을 사모하고, 하나님과 함께 그 영생의 축복을 넘치도록 누리기를 축복한다. 츠빙글리는 아름다운 믿음으로 경건하게 세상을 살다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는 신앙의 용사들인 수많은 믿음의 선조를 아담에서부터 프랑수아 1세의 전임자 루드비히 왕도 예로 들며 일일이 일컫는다.

특이한 점은 신구약 인물들 뿐 아니라, ‘믿음 안에서 세상을 떠나간’ 사람들 안에 소크라테스 등을 일컫고 있는데, 다행스럽게 ‘믿음 안에서 세상을 떠나간’이라는 전제를 달아놓는 점이다. 츠빙글리는 영생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긍휼에 의해서만 가능함을 일깨운다. 하나님과 천국의 영생을 마땅히 누릴 그 어떤 선한 사람도, 거룩한 영혼도, 신실한 영혼도 창조 이래 종말까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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