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상처, 아직 아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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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상처, 아직 아물지 않았다”
  • 승인 2001.06.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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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의 뜻을 기리는 호국보훈의 달이다. 각계각층은 해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들의 뜻을 기리며 애도의 뜻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남북한의 화해분위기에 편승한 탓인지 아니면 전쟁을 경험한 세대가 점차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진 탓인지 보훈과 반공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이 소극적이 되어가고 있다.

만감이 교차되는 가운데 제46회 현충일을 앞두고 동작동 국립묘지와 서울보훈병원을 찾았다.
‘동작동 국립묘지’.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흰 대리석의 묘비만 즐비했다. 조문객들과 견학을 온 듯한 초등학생들도 시야에 들어왔지만 오와 열을 맞춰 늘어서 있는 묘비에서 눈을 뗄수 없었다. 한결같은 모습의 묘였지만 분위기는 너무도 달랐다. 자주 가족들이 찾는 묘소인지 묘 주변이 깨끗하고 색색의 꽃들이 장식돼 있는 반면, 노란 국화가 하얗게 탈색 돼 널부러져 있는 초라한 묘들도 허다했다.

‘고 박이식이병 1951년 낙동강 전투에서 전사’

계급은 다르고 전사지도 천차만별이지만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젊음을 바친 일념은 모두 같았으리라. 우리의 젊은이들은 곳곳에서 쓰러져갔다. 그리고 그 대가로 한 평도 안 되는 공간을 얻을 수 있었다. 그들은 명예도 부도 원치 않았다.

나라사랑의 애틋한 마음만을 전한 채 전장의 차가운 이슬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제 그 선열들의 고귀한 죽음은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조금씩 밀려나고 있었다. 국립묘지 한 관계자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찾아오는 조문객의 수가 해를 거듭할수록 부쩍 줄어들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현충일 앞두고 조문을 온 전사자 가족들을 포함해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등 단체 참배객은 꾸준히 있지만 그 수는 많치 않다는 설명이다.

이는 학교나 사회단체, 교회 등이 조금은 딱딱한 국립묘지 견학보다는 자연체험학습, 스포츠캠프 등 재미있는 현장학습을 선호하고 있는 최근의 추세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유품·사진전시관, 현충관(영화관),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 등 선열들의 국난극복 활약상과 나라사랑의 정신을 기리며 호국정신을 배우는 현장학습의 장으로 학생들이 애용했던 국립묘지가 점차 그 의미를 퇘색해 가고 있다.

강동구 둔촌동 소재의 국립보훈병원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6·25를 비롯해 월남전 등 크고 작은 전쟁에 참전해 부상을 당한 8백 여명의 상이군경이 계속적인 치료를 받고 있는 보훈병원에도 사람들의 온정은 많이 퇴색돼 있었다. 단적으로 지난 66년 창립된 한국보훈교회를 보면 알 수 있다.

이곳에서 30년 목회를 해온 한국보훈교회 황도일목사는 상이군경이 벌써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지 오래라고 설명하고 있다. 6월은 말할 것도 없고 매월 자원봉사를 요청하는 교회, 물질 후원교회로 활기찼던 교회 선교활동이 지금은 십여 교회만이 후원을 하고 자원봉사도 많이 위축되어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기자 역시 현충일을 고엽제와 1급장애로 고통을 당하는 상이군경 환자들을 위문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잔잔한 이야기거리를 기대했었지만 기대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렇다고 봉사활동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호스피스병동의 대부분의 봉사자가 기독교인가하면 환자들이 사용하는 거즈를 만드는 일 에는 불교나 카톨릭에 비해 기독교가 단연 우위를 차지한다. 그러나 예전처럼 교회나 성도들의 든든한 후원을 등에 업고 다혈질인 환자들을 선도하거나 위문행사를 개최 해 선물을 증정하는 등 독립적인 사역이 불가능해 졌다. 사회에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던 교회가 이 정도이니 일반인들의 후원 감소는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나라를 위해 일사각오로 전장에 섰던 이들을 누가 돌아봐야 할 것인가. 점차 사람들의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는 이들을 위해 이제 교회가 팔을 걷자. 거창한 행사와 물질후원보다 그들의 따뜻한 이웃이 돼는 작은 노력부터 시작해보자. 그들의 쓰린 상처가 아물 수 있도록. 국립묘지 입구에 현충일을 기리며 내걸린 프랜카드 하나가 각인되며 호국보훈에 대해 많은 생각들을 하게끔 한다.

“명예를 존중하지 않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바칠 국민이 어디 있겠는가.”

김광오기자(kimko@uc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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