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동역자들
상태바
예수님과 동역자들
  • 이인창 기자
  • 승인 2020.02.26 11: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김진홍 목사의 목회와 설교 | 3대지 예문설교(상)

금천설교아카데미 김진홍 목사의 ‘목회와 설교’를 연재하면서 설교 준비 노하우와 다양한 설교 유형을 소개했다. 이번 주부터는 설교 유형에 따른 ‘예문 설교’를 연재함으로 설교 준비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 첫 회는 ‘3대지 예문설교’로 상-하로 나누어 연재한다. <편집자 주>

본문 : 눅 8:1~3
주제 : 열심을 품고 복음을 위해 
        힘쓰게 한다. 
목적 : 열심을 회복하여 전도 하게 한다. 
구성 : 2 대지

1. 들어가는 말입니다.  
세상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때문에 발전되어 갑니다. 우리가 누리는 편리한 발명품들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노력한 사람들의 결과들입니다. 

발명왕 에디슨이 오래 가는 전구를 개발하기까지 1,000여 번의 실패가 있었습니다. 당시에 이미 전구는 개발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구의 수명이 너무 짧아서 사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에디슨은 전구의 필라멘트를 개발하기 위해 머리카락, 옷핀을 이용하여 실험을 했습니다. 심지어 휴지를 이용해서 실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부챗살을 이용하여 필라멘트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1,500시간 이상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전등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편리하게 사용하는 자동차나 컴퓨터, 비행기 등은 수천수만 번의 시행착오와 실패를 거듭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지게 된 결과입니다.  

미국인 작가인 오리슨 스웨트 마든은 이런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현재 있는 곳이 아니라, 가고자 하는 곳에 초점을 맞춰라.” 그렇습니다. 희망과 꿈의 사람은 오늘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더 나은 내일을 향하여 달려가는 것입니다.  

미국의 34대 대통령 투르먼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고통에 대한 보상은 경험이다(The reward of suffering is experience).” 인간은 살면서 수많은 고통을 경험합니다. 그 고통 속에서 내가 배워야 할 뼈저린 경험을 해야만 미래의 사람이 된다는 말입니다. 경험을 느끼지 않는 고통은 그저 고통일 뿐입니다. 

우리는 위대한 사람들의 전기를 읽습니다. 그 전기에서 공통적인 것들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위대하게 승리한 사람들은 모두 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사람들입니다. 자기의 어려운 환경을 이긴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충성스러운 사람들로 세워졌습니다. 충성스러운 사람들이 없다면 오늘의 교회는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충성스러운 장로님들과 말없이 섬기시는 여러분들 때문에 세워진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항상 자신이 충실한 하나님의 종이 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면서 세상에 충실한 자가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며 기도했습니다. 시편 12편 1절에 이렇게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들이 인생 중에 없어지나이다.” 충성스런 종들 때문에 교회는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2. 본문 설명입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여기저기 다니면서 전도하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정말 부지런하신 예수님을 보여줍니다. 열정적인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헌신적인 예수님의 동역자들의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의 열정과, 주님을 섬기는 사람들의 헌신을 배우려 합니다. 

1) ‌예수님은 열정적인 복음 전도자였습니다.
① 문제 제기 
열정은 기적을 만듭니다. 열정적인 사람에게 안 되는 일은 없습니다. 열정은 어떤 일에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저는 부목사님들에게 항상 부탁하는 말이 있습니다. “제발 애상을 가지고 주님의 일을 하라”고 말합니다. ‘애상’이라는 말은 ‘아파하는 주인의 마음입니다’. 주님이라면 이런 때에 어떻게 할까를 항상 생각하면서 목회를 하라고 합니다. ‘내가 담임목사라면 어떻게 할까’를 항상 생각하면서 주님의 일을 하라고 말합니다.  

② 본문 설명 
본문 1절 말씀입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 새”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위해서 지치지 않는 열정을 가지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전도를 위해서 어느 한 장소에만 머물러 계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셨습니다. 성은 도시를 말합니다. 마을은 작은 동네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각 도시들과 작은 마을들을 다니시면서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③ 적용 
예수님께서 성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전도하신 것처럼 우리도 전도의 지경을 넓혀가야 합니다. 이제 좀 더 신앙의 지경을 넓혀서 나 혼자의 신앙만이 아니라 이웃의 영혼까지 바라보아야 합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지옥으로 달려가는 영혼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웃의 구원을 생각해야 합니다. 영혼을 위해서 내가 감당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몸으로 전도하지 않았다면 몸으로 전도하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입술로 주님의 복음을 전하지 못했다면 입술로 복음을 전할 수 있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전도 대상자를 정하지 않았다면 전도 대상자를 정해야 합니다. 전도를 위해 기도하지 못했다면 지금부터 복음이 땅 끝까지 전해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특히 한 영혼을 건지기 위해서 전도할 영혼을 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영혼과 좋은 관계로 만나야 합니다. 자주 접촉 하면서 기도할 때에 마음이 움직여지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 주님처럼 한 영혼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에서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주님이 복음을 전하실 때 많은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기득권 세력들의 경계와 배척으로 회당에서 자유롭게 말씀을 전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막힌 문제를 뚫고 전도하셨습니다. 

주님은 회당만을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도시와 농촌을 두루 다니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산과 바다, 들판을 가리지 않고 복음 전도의 현장을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어떤 걸림돌도 걸림돌이 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들판으로 나가셨을 때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은혜로운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제자들을 제자 삼은 것도 강가에서 말씀을 전하실 때였습니다.  

④ 긍정 예화 
성경에 보면 바울의 전도에도 길이 막힐 때가 있었습니다. 아시아에 전도를 하려고 했는데 성령께서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행16:6~7)

그래도 전도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길을 찾는 중에 밤에 환상을 보게 됩니다. 유럽의 첫 번째 성인 마게도냐 사람이 환상 중에 서서 바울을 오라고 손짓을 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갈 곳이 이곳이구나 생각하고 유럽으로 발길을 돌려 복음을 전하러 갔습니다. 이를 통해서 유럽의 복음화가 힘 있게 열리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전도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장애물이 있어도 또 다른 길이 열려 있습니다. 사막의 음침한 골짜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골짜기 건너편에 푸른 초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⑤ 하나님 주어 및 권면 
주님은 전도의 열심을 가지고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을 모델로 삼아 전도의 지경을 넓혀 가시기 바랍니다. 장애물을 두려워하지 말고 헤쳐 나가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한 쪽 문이 닫히면 다른 더 넓은 문을 연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열심을 사모하시고, 주님을 닮아 전도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음 호에 이어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