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얼어붙은 나눔의 손길…“그래도 식탁은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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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얼어붙은 나눔의 손길…“그래도 식탁은 돈다”
  • 한현구 기자
  • 승인 2020.02.21 17: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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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게 줄어든 봉사자, 서울역 노숙인 급식 봉사 현장을 가다
봉사자가 눈에 띄게 줄어 들면서 떡이나 라면으로 식사를 대체하고 있는 단체들도 많다. 한 끼 한 끼가 소중한 노숙인들에게 밥과 반찬, 장국으로 구성된 나누미의 도시락은 큰 힘이 된다.
봉사자가 눈에 띄게 줄어 들면서 떡이나 라면으로 식사를 대체하고 있는 단체들도 많다. 한 끼 한 끼가 소중한 노숙인들에게 밥과 반찬, 장국으로 구성된 나누미의 도시락은 큰 힘이 된다.

거리가 쥐 죽은 듯 한산하다. 연일 확진자를 늘리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시민 모두를 집돌이·집순이로 만들어버린 탓이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첫 출근을 하던 날, 지방에선 축제쯤 돼야 볼법한 인파가 지하철역에 가득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던 기자에게는 새삼 낯선 풍경이다.

안타깝게도 코로나19는 나눔과 봉사마저 주춤하게 만들었다. 노숙인들에게 무료로 식사를 나누던 복지단체들 역시 코로나 사태 이후 곤혹을 치르고 있다. 배식을 맡을 봉사자들이 감염에 대한 우려로 발길을 뚝 끊어버렸기 때문. 배를 곯게 될 노숙인들을 생각하면 급식 사역을 중단할 수도 없는 노릇인 단체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20, 서울역에서 사랑의 식사를 전하고 있는 사단법인 나누미(이사장:박성암)를 찾아 현장 상황을 직접 들여다봤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동인구가 많은 곳 중 하나인 서울역조차 인적이 뜸한 모습이었다. 오후 4시 저녁식사 시간에 맞춰 따스한 채움터에 도착하자 직원들이 입구를 막고 손소독제를 내민다. 구석구석 손을 씻은 후 신발의 먼지를 털고 마스크 검사까지 3중 관문을 통과하자 비로소 문이 열렸다.

썰렁했던 거리의 풍경과는 달리 따스한 채움터 내부는 빈자리 하나 없이 꽉꽉 들어차있었다. 알고 보니 서울역 주변의 급식 봉사 단체들이 코로나 사태로 사역을 중단하면서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따스한 채움터로 몰린 것. 나누미 이사장으로 21년째 서울역 노숙인을 섬기고 있는 박종환 목사는 2003년 사스, 2015년 메르스 때와 비교해도 지금이 가장 힘든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평소엔 350명 정도의 노숙인들이 이곳에서 식사를 하시는데 요즘은 평소보다 100여 명이 더 늘었어요. 봉사자들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바람에 일손은 부족한데 먹여야 할 이들은 더 늘어 난 상황이죠.”

 

도시락을 나누기 전, 노숙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나누미 박종환 목사.
도시락을 나누기 전, 노숙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나누미 박종환 목사.

채움터에서 식사를 만들어 수백 명의 사람들에게 먹이려면 최소 30~40명의 봉사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날뛰는 요즘은 그 절반인 15명의 봉사자조차 모이기 힘든 실정이다. 하루는 40명이 봉사하기로 했던 단체에서 단 2명밖에 참석하지 않아 진땀을 뺀 적도 있었다.

이날은 감사하게도 11명의 봉사자들이 참석해 나누미 박종환 목사, 김혜연 사모와 함께 자리를 지켰다. 코로나19의 공포를 뚫고 온 봉사자들의 모습은 박 목사 부부에게 천금의 후원보다 더 큰 힘이 된다. 원래 서울외국인학교에서 30여 명의 학생들이 봉사에 참여하기로 돼있었지만 코로나 사태로 학생들의 단체 이동에 제한이 생기자 학부모 6명이 대신 팔을 걷어 붙였다.

나머지 5명은 부부와 세 딸이 모두 출동해 서울역에 온 가족봉사자다. 원래 박종환 목사와 개인적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봉사자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곤 한걸음에 달려왔다. 아버지 김도영 집사(여의도순복음성북교회)는 평소에도 용돈을 모아 기부를 하곤 하던 세 딸들이 봉사에도 기쁜 마음으로 함께 해 자랑스럽다며 미소 지었다.

기독교 방송에서 서울역 봉사 모습을 보고 가족들과 함께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코로나19 이슈가 아예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누군가는 참여해야 노숙인들도 따뜻한 밥 한 끼를 할 수 있잖아요. 생명을 살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일에 우리 가족이 조금이나마 힘을 보탰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천하보다 귀한 11명의 봉사자들이 왔다지만 식사를 만들어 제공하기는 여전히 턱없이 부족한 인력. 이날은 불고기와 메추리알 장조림, 야채와 김치가 정성스레 포장된 도시락이 장국과 함께 제공됐다. 든든한 한 끼 식사지만 단체 입장에선 재정 부담이 만만찮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끝까지 제대로 된 밥 한 끼를 나누고 싶다는 것이 박종환 목사와 김혜연 사모의 마음이다.

우리의 사역이 생필품이나 다른 물건을 나누는 사역이었다면 중단할 수도 있었겠지만 밥을 먹이는 일이잖아요. 일반인들이야 집에 밥이 없어도 먹을 곳이 많지만 이들은 우리가 사역을 멈추면 대책 없이 굶을 수밖에 없어요. 가난한 자들과 어려운 이들을 돌보셨던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이들에게 봉사의 손길과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날 급식 봉사에는 서울외국인학교 학부모 6명과 일가족 5명이 함께 해 힘을 보탰다.
이날 급식 봉사에는 서울외국인학교 학부모 6명과 일가족 5명이 함께 해 힘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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