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으면 부끄럽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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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으면 부끄럽습니까?”
  • 정석준 목사
  • 승인 2020.01.14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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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준의 시사영어 - 92

“인문학이란 사람이 그려내는 무늬”라고 했다.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최진석’이 한 말이다. 그러나 그의 말처럼, 유명한 어떤 철학자도 ‘인문학(humanity)’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시작과 끝이 있는 성경말씀으로 돌아와야 한다. 선악과를 따먹는 순간 아담에게 들어온 것이 “선악의 기준”이었다. 여기서 이원론이 시작됐다. 창조주는 당신이 창조해 낸 세계를 완벽하고 아름답다고 하셨다. 그러나 인간이 끼어들어 그 세계를 비난하고, 판단하기 시작하면서 인간 중심으로의 이해가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벌거벗는다’는 ‘실체가 드러나다, 가진 재물을 잃거나 버린다. 권력을 내려놓다’등을 상징할 때 쓰이기도 한다.(Nudity is culturally complex due to different meanings.) 옷을 벗은 본래의 의미보다 비유적(metaphor)으로 많이 쓰인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벗었다’라는 의미는 옷을 입은 사람에 의해 설정됐다. 문답이 한없이 되풀이 되는 대목중 하나이다. 최초의 인간은 ‘에덴’에서 벗고 살았다. 그러나 그들이 ‘선악과’을 따먹고 전 같이 보이지 않은 처음 것이 상대방의 나체였다. 그리고 바로 서로를 부끄러워했다.

인문학의 관심과 발전은 눈이 부시다. 그러나 솔직히 성경이 설명되어진 인문학적 관점이 발전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종교개혁이 일어 난지 오백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이 변화되지 못한 해석의 패러다임이 인문학 범위이다, 우리가 이해하기 쉽고, 상당히 계몽적이라는 그 속성이 그 속에 있기 때문이다. 분명히 성경은 하나님 중심의 일원론을 강조하지만 성경자체가 이원론을 바탕으로 기록된 사실도 이유가 된다.

작금의 목회 전략이 부흥과 성장 위주에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현실의 지혜다. 정말 다르나 교회 존재의 당위성은 세상과 구분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미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 뿐인 것이 인생임을 감안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된다. 이솝우화처럼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지렁이가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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