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찐빵’과 함께 한 20여 년… “하나님껜 영광, 이웃에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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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찐빵’과 함께 한 20여 년… “하나님껜 영광, 이웃에겐 감사”
  • 이현주 기자
  • 승인 2019.12.26 10: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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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은퇴한 ‘닮복지재단’ 이사장 곽광희 목사

찐빵으로 시작된 복지사역, 노숙인부터 장애인까지 확장
사재 털어 세운 복지재단 떠나지만 새벽 자원봉사는 계속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예수님 닮아가는 세상’ 되길

사랑의 찐빵으로 시작해 사회복지법인 ‘닮’을 세운 <br>곽광희 목사가 지난 13일 공식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사랑의 찐빵으로 시작해 사회복지법인 ‘닮’을 세운
곽광희 목사가 지난 13일 공식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떻게 그만 둬요. 힘 닿는 데까지 해야지.”

1998년부터 ‘사랑의 찐빵’을 나누기 시작한 닮복지재단 이사장 곽광희 목사(효촌교회). 그가 모든 공직을 내려놓고 자연인으로 돌아갔다. 사실 직함만 내려놓았을 뿐 일은 그대로다. “힘든 일 좀 그만하시라”며 말리는 자녀들이 있지만, 곽 목사는 새벽 2시에 다시 찐빵을 찌러 나왔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복지재단 이사장에서 이제는 그냥 봉사자라는 것, 그것뿐이다. 

1996년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목사가 된 후 25년 가까이 한결같은 길을 걸어왔다. 그녀의 넘치는 사랑은 마치 찐빵의 수증기처럼 이웃들에게 스며들었다. ‘사랑의 찐빵’으로 시작된 나눔과 섬김은 노숙인, 장애인, 지역아동, 노인 등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으로 확장됐다. 포슬포슬 부풀어 오른 각종 사역은 지난 2010년 ‘닮복지재단’으로 통합됐다. 사재 25억원을 기부하면서 시작한 복지재단이었다. 하지만 곽광희 목사는 더 잘할 수 있는 후임자를 찾아 자리를 넘겼다. “몸이 그만하라고 한다”면서 재단을 떠났다. 지난 13일 열린 이사회가 그녀의 마지막 출근길이었다. 

찐빵으로 시작된 나눔 부풀고 부풀어
“작은 빵 하나가 이렇게 많은 일로 이어질 줄 누가 알았겠어요? 찐빵은 숫자를 넘어 저에게 큰 축복이었습니다.”

지난 13일 마지막 이사회에서 퇴임 인사를 전한 곽광희 목사는 “수많은 비전을 꿈꿀 수 있었고, 이유 모를 행복이 넘쳤다”며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고백했다. 사업 실패 후 실신했던 그녀를 기도로 살려낸 언니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라”고 했다. 한번 매달려보자면서 시작한 기도는 ‘지켜야 될 약속’인지도 모른 채 숱한 고백을 쏟아냈다. 신학을 공부했고, 교도소 재소자들을 찾아갔다. 사업이 다시 일어났지만 이번에는 건강이 상했다. ‘제 나이 50에는 하나님의 사명자로 살겠다’고 서원했던 기도를 새까맣게 잊고 있던 탓이었다. 

“금식기도 중에 하나님을 다시 만났어요. 꽃이 만발한 강대상에 저를 데려가시더니 까만 판에 금도장으로 ‘곽광희’라고 찍어주셨죠. ‘그런데 왜 까만 판일까’ 궁금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네가 닦아서 금판으로 만들라’고 말씀하셨죠.”

까만 판을 닦아 반짝이게 하는 일이 어찌 쉬울까. 곽광희 목사는 건강을 회복한 후 하나님께 약속한 것을 하나씩 실천하며 살았다. 96년에 목사안수를 받고 97년에 효촌교회를 개척했다. 자신이 운영하던 창동 봉제공장에 신학교를 세웠다. 신학생 중에 찐빵 기술자가 있었다. 그의 도움을 받아 1998년 ‘사랑의 찐빵 나누기’ 사역을 시작했다. 2000년부터는 동대문 인근의 노숙인과 탑골공원 노인들을 대상으로 찐빵을 나눴다. 노인들을 위한 잔치도 베풀었다.

사랑의 찐빵은 새해부터 25개 구청을 통해 500가정에 배달된다.
사랑의 찐빵은 새해부터 25개 구청을 통해 500가정에 배달된다.

사랑의 허기를 채워준 찐빵
거리의 노숙인과 옛 추억이 그리운 노인들에게 찐빵은 인기 만점이다. 하얗고 따끈한 빵에 달달한 단팥앙금이 가득하다. ‘나를 위해 만든 특별한 음식’이라는 따뜻함을 준다. 그래서 찐빵을 기다리는 줄은 늘 길고 길었다. 

“힘들어도 그만 둘 수 없었어요. 찐빵을 드시고 남은 빵을 싸가서 우유 한 컵 붓고 죽처럼 끓여 드시는 할머니가 계셨죠. 그 빵 하나로 하루 허기를 채운다는데 어떻게 중단할 수가 있겠습니까.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계속해야 했습니다.”

곽광희 목사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이 가득한 사람이다. 어려운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질 못했다. 이런 마음을 이용해 사기를 친 사람도 한둘이 아니다. 노숙자 자활을 위해 손수레를 사주고 교회에서 폐지를 모아주도록 했지만, 매번 수레를 팔아먹었다. 너댓 차례 팔아먹는 것을 보면서도 또 사주곤 했다. 교도소에서 알게 된 재소자들은 출소 후에 곽 목사를 찾았다. 재단 사무실을 숙소 삼아 며칠 데리고 있다 보면 물건을 몽땅 훔쳐 달아난다. 그리고는 몇 년 후에 또 연락이 온다. “엄마, 나 거기로 가도 되죠?” 거절하는 법이 없는 곽 목사는 “그래, 당연히 이리 와야지~”라고 또 아들을 맞이한다. 수없이 반복되는 배신에도 포기하는 법이 없다. 

“나까지 버리면 누가 책임을 지겠어요. 부모도 버리고, 자기 자신도 포기한 삶인데 나라도 돌봐야죠. 그 인생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여주면 그걸로 족한 거지…”

닮복지재단 통해 사역이 확장되다
하나님은 담을 수 있는 그릇을 사용하신다. 곽광희 목사는 하나님이 편히 쓰시는 질그릇이다. 그의 그릇에는 장애인과 노숙자, 노인과 아이들이 모두 담겨 있다. 지난 96년 목사가 된 이후 하나님은 무한한 가능성을 시험하고 또 시험하셨다. ‘사랑의 찐빵’이 부풀어 오른 그 모든 과정이 곽광희 목사의 삶이자 역사다. 

찐빵 사역 시작 후 곽 목사는 2010년에 서울시에 ‘닮복지재단’ 승인을 받았다. 복지재단 설립을 위해 도봉구에 있는 빌라 한 동과 양주시 토지 등 사재를 출연했다. 

그 사이 찐빵은 동대문을 넘어 전국으로 확대됐다. 동두천과 도봉구 장애인 가정에 배달됐고, 저소득층 초등학생 방과후 교실 간식으로 제공됐다. 의정부시와 함께 노숙인 상담센터도 개설했다. 장애인자립생활체험홈 위탁운영을 받아 1급 중증장애인을 위한 그룹홈도 운영했다. 어버이날뿐만 아니라 장애인의 날에도 찐빵을 나눴다. 강북구와 의정부시 관내 초중고생에게 장학금도 지급했다.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2014년에는 서울시로부터 노인복지사업 및 아동청소년복지사업 승인을 받았다. 복지재단 사역이 찐빵과 장애인 그룹홈에서 노인과 아동복지로 확대되는 순간이었다. 

탄력을 받아 강북구 번동에 방과후교실을 운영했고, 공립지역아동센터를 수탁했다. 2016년에는 닮데이케어센터로 노인들을 보살폈다. 노원구, 은평구, 송파구 등에 데이케어센터 위탁운영이 늘어났고, 은평구에 세워진 ‘다솜데이케어센터’는 서울형 인증기관에 선정됐다. 

물론 모든 사역이 확장된 것은 아니다. 양주에 시설을 갖춘 찐빵 공장에 문제가 생기면서 잠시 찐빵 나눔이 중단되는 아픔도 겪었다. 올해는 서울역 노숙인에게 찐빵을 나누다가 거리급식의 한계를 체감하기도 했다. 아예 내년부터는 25개 구청을 통해서 독거노인과 차상위층 가정에 매월 두 차례 찐빵을 전달하기로 했다. 500가정에 매달 1만개의 찐빵이 전해질 예정이다. 

곽광희 목사가 개척한 양주시 효촌교회 전경
곽광희 목사가 개척한 양주시 효촌교회 전경

함께 해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
20년 넘도록 달려온 사회복지의 길이 힘겹지는 않았을까? 오히려 그녀는 손사래를 쳤다. “무슨 소리, 감사한 것뿐이죠. 내가 한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하신 건데 고맙고 또 고마운 마음 뿐입니다.”

늦은 나이에 목사가 되어서 사회복지에 뛰어든 아내를 묵묵히 도와준 남편 권오춘 장로와 늘 안타까운 마음으로 엄마를 지켜본 세 자녀는 든든한 후원자다. 처음 찐빵을 같이 만들어준 효촌교회 성도들과 찐빵 기술을 전수한 한만호 목사, 신학교 시절 “돕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짠지 무를 들고라도 거리로 나가라”고 독려하던 선후배 목사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곽광희 목사와 닮복지재단도 없었을 것이다. “이제 빚 갚을 일만 남았다”는 곽 목사는 효촌교회 성도들이 고마워서 올해는 교회 김장을 본인이 직접 했다고 말했다. 요즘에는 교회 청소도 한다. 그동안 섬김을 받았으니 이제부터는 직접 성도들을 섬기기로 한 것이다. 

새벽 찐빵 작업은 아직도 곽 목사의 몫이다. 평생 해온 일이니 하나님이 부르실 때까지 빵 반죽을 놓지 않을 셈이다. 5년째 폐암으로 투병하고 있지만 그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진 적이 없다. 아무리 힘들어도 한번 맺은 인연을 먼저 놓는 법도 없다. 섬기고 나눈다고 해서 받은 사람이 크게 변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주신 이웃이기 때문이다. 

“내 생각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소리를 들었으면 좋겠어요. 내 생각은 틀릴 때가 많더라고요. 저는 떠나지만 닮복지재단이 정말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는 공동체가 되길 바랍니다. 꼭 필요한 이웃에게 멋진 나눔이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예수님을 닮고자 했던 간절한 마음은 ‘사랑의 찐빵’에 담겨 앞으로도 계속해서 퍼져나갈 것이다. 곽광희 목사의 넉넉한 웃음처럼, 사랑으로 속이 꽉 찬 따끈한 찐빵이 얼어붙은 세상을 녹이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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