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덕담 사라진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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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덕담 사라진 사회
  • 김수연 기자
  • 승인 2019.11.26 14: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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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가 되면 생각나는 어렸을 적 추억이 하나 있다. 크리스마스 편지부터 시작해 ‘근하신년’(謹賀新年)이 적힌 카드를 정성스레 써서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보낸 것이다. 낯간지러운 인사들을 한 글자 한 글자 고심하며 꾹꾹 눌러쓴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그로부터 20년 가량이 훌쩍 지난 지금 다시 연말연시가 찾아왔지만 그때 그 감성과 풍경은 좀처럼 찾기 어렵다. 가장 아쉬운 점은 근본적으로 ‘덕담’ 자체를 예전만큼 잘 건네지 않는, 아니 건네지 못하는 삭막한 사회 분위기다. 

어디 연말연시 덕담뿐인가. 한때 독자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은 책의 제목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어느새 부터인가 냉소나 비판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취업 결혼 출산 등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N포세대에게 어설픈 격려는 더 이상 먹히지 않는 것이다. 도리어 죽도록 ‘노오력’ 했는데 돌아오는 건 ‘배신’이라고 느낀 청년들은 어쭙잖은 위로에 화만 적립해갈 뿐이다.

오죽하면 ‘가짜 멘토’라는 말도 생겨났을까. 성공한 교수, 스타 강사, 종교인들이 건네는 격려를 비꼬는 말이다. 안타까운 점은 이 가짜 멘토에 ‘목사님’도 종종 포함된다는 사실이다. 불의한 시대를 살면서 지칠 대로 지친 청년들은 ‘정말 하나님이 계실까?’라는 회의감에 젖어 ‘하나님의 완벽한 때를 기다리자’ ‘그리스도인이라면 손해 보기를 두려워 말자’ 같은 설교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끝내 교회를 떠나버린다.

물론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덕담은커녕 서로 눈치 보느라 ‘믿음의 격려’까지 해줄 수 없는 현실은 참 마음 아프다. 이러다 자칫 스스로에게마저 덕담을 건네지 못하게 돼버리는 건 아닐지 걱정된다. 이럴 때일수록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도 먼저 긍정적인, 믿음의 말을 선포했으면 한다. 올해가 다 가기 전에 이웃에게, 그리고 내 자신에게 단단한 신앙으로 다져진 따뜻한 덕담 한마디 건네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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