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이 제일 무서운 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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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이 제일 무서운 법이지”
  • 차성진 목사
  • 승인 2019.10.22 0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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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진 목사의 SNS 세대와 소통하는 글쓰기 ⑫

레크리에이션 때 제가 종종 사용하는 긴장감 가득한 게임이 있습니다. 한 친구를 앞으로 불러내고선 상자 속의 물건을 손등으로 문질러 맞추게 하는 겁니다. 그 친구를 제외한 모든 관중은 상자 속의 물건을 볼 수 있는 상태에서요. 그 상자 속에 넣어두는 물건은 보통 별 게 아닙니다. 물컹한 느낌을 내는 장난감 공이나, 바람을 채운 고무장갑 정도이지요. 그런데, 게임을 하는 친구는 그 물건이 무엇인지 모르니 긴장감에 얼굴이 일그러집니다. 거기에 사회자와 관중들이 저거 안 물어요?!’ ‘어떡해!!’ 하는 바람까지 넣으면, 짜릿한 두려움에 몸서리 치는 친구의 표정이 아주 볼만하지요.

고작 장난감 공을 가지고 이만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는 게 참 웃기지요? 이것이 가능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수용자의 상상이 활용되었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의 실체를 제시하지 않고, 두려울 수 있는 상황만 제시된 상황에서 정작 중요한 내용은 수용자의 주관적인 상상에 맡기는 거지요. ’사람들이 왜 소리를 지르지? 진짜 위험한 건가? 아니 설마 레크리에이션에서 위험한 걸 가져 왔겠어? ? 물컹해! 뭐지? 낙지 이런 건가? 아니면 뱀?’ 이렇게 수용자가 능동적으로 떠올린 감정들은 엄청난 크기로 다가갑니다.

글쓰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글을 통해 웃음, 슬픔, 분노와 같은 특정한 감정을 전달하고자 할 때, 때론 그 감정에 대해서 침묵하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그 감정을 떠올릴 만한 상황은 명확하게 전달하되, 결정적인 감정의 부분은 수용자의 상상에 맡기는 것이지요. ‘웃음을 한 번 예로 들어볼까요? 실제 라디오 사연을 각색해 보았습니다.

[시골에 사시는 어느 할아버지가 거위 한 마리를 애지중지 키우셨습니다. ‘거시기라는 이름까지 붙이면서요. 그러던 어느 날 키우던 거위가 아픈지 축 늘어졌습니다. 할아버지는 다급히 할머니에게 동물 병원에 전화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여보세요라고 전화를 받는 간호사에게 할머니는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영감 거시기가 아프대유!”]

, 여기서 글을 끝내면 수용자는 여러 가지 상상을 하게 됩니다. 저 표현을 들었을 간호사의 황당함. ‘거시기라는 단어가 갖는 이중적 뜻. 글에서 이런 중요한 부분을 생략했기에 오히려 여러 가지 상상을 하면서 능동적 웃음을 만들게 됩니다. 하지만, 만약 이 글 뒤에 이런 사족이 붙는다고 생각해 봅시다.

[간호사가 이 말을 듣고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아니 갑자기 대뜸 영감님의 거시기가 아프다니요. 거시기라는 말 뜻이 사람마다 다르게 쓰인다지만, 보통 떠오르는 뜻이 있잖습니까? 이 얼마나 웃긴 상황인지요.]

갑자기, 공익 광고를 보는 것처럼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지요? 감정을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는 좋았으나, 오히려 지나친 언급이 수용자의 능동적인 상상을 가로막아 재미가 밋밋해져 버렸습니다. 감정 자체보다는 몰입할 수 있는 상황을 명확히 설명하는 데 더 힘을 싣고, 주된 감정에 대한 묘사는 과감하게 생략하는 용기가 때론 필요합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글은 좀 더 간략해지게 되고, 그렇게 짧아진 분량 자체가 또 접근성을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이 생략 기법을 써서 감동을 전달한 헤밍웨이의 유명한 일화가 있지요. 여섯 단어를 써서 사람들을 울려보라는 제안에 헤밍웨이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한 번도 쓰지 않은 아기 신발 팝니다.”

차성진 목사 / 임마누엘덕정교회, 글쓰기 강사
차성진 목사 / 임마누엘덕정교회, 글쓰기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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