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안락사와는 달라…대리판단 생명권 침해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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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안락사와는 달라…대리판단 생명권 침해 우려”
  • 정하라 기자
  • 승인 2019.08.09 11: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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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의료결정법’ 시행 1년 반…그 이후

“환자의 고통을 해결할 방법이 죽음밖에 없다면 환자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질문이 틀렸어.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죽인 게 아니야. 고통을 피하기 위해 죽인 게 아니야. …고통을 해결한다. 그러다 죽는다 할지라도... 그게 전부야.”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SBS 드라마 <의사요한>에서 여주인공의 질문에 답하는 의사 요한역을 맡은 지성의 극중 대사다. 극중 지성은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로 말기 항문암 환자인 윤성규를 안락사 시킨 혐의로 3년형을 언도받고 감옥에 갇히게 된다. 출소 후 대학병원에서 의사로 다시 일하면서도 그는 ‘삶과 죽음’의 기로에 있는 환자를 돌보며, 끊임없이 고민한다. 드라마 전반은 다소 민감한 주제인 ‘안락사’를 화두로 다루면서 팽팽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특히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지 1년 반이 지난 시점에서 현 제도가 어떻게 자리 잡아가고 있는지 진단해볼 시사점을 제공한다.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이 지난해 2월 시행된 뒤로 1년 반이 지났다. 일명 ‘존엄사법’ 시행 이후 법은 어떻게 시행되고 있으며 기독교윤리 시각에서 이를 어떻게 바라봐야할까.

▲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이 지난해 2월 시행된 뒤로 1년 반이 지났다. 일명 ‘존엄사법’ 시행 이후 법은 어떻게 시행되고 있으며 기독교윤리 시각에서 이를 어떻게 바라봐야할까.

현재까지 5만 4천여명, 연명의료 'NO’

현재 국내에서는 2016년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됐으며, 작년(2018년) 2월부터 법이 시행됐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법 시행 이후 6월 말까지 5만 3900명의 환자가 연명의료의 유보나 중단을 결정하고 연명의료 중단을 택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사람도 약 25만 명에 이른다.

‘연명의료’는 치료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임종 과정만 연장하는 의학적 시술로 유보는 처음부터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는 것이며, 중단은 시행하던 연명의료를 그만두는 것을 의미한다. 법 시행을 통해 임종 과정에 있는 말기 환자의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항암제투여 등 4가지 의료행위와 함께 체외생명유지술(ECLS. 심장이나 폐순환 장치), 수혈, 혈압약 투여 등의 의학적 시술도 중단하거나 유보할 수 있게 됐다.

현재 회생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가 연명의료를 중단 및 유보하는 데는 4가지 방식이 있다. 환자가 건강할 때 미리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직접 작성하거나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직접 ‘연명의료계획서’를 쓸 경우 가능하다. 가족의 대리판단을 통해 가족 전원이 합의하거나 “환자가 평소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았다”는 2명 이상의 일관된 진술이 있을 경우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

현행법에 비추어본다면, 드라마 <의사요한>에서 지성은 ‘연명의료 중단’이 아니라 명백히 위법한 의료행위를 한 것이 맞다. 단순히 말기 환자의 인공호흡기를 떼는 수준의 연명의료 중단이 아니라 자신의 고통을 멈춰달라는 환자의 요구에 따라 그에게 치사량의 진통제를 투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예는 ‘연명의료’에 대한 많은 논쟁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현행 법안이 확대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그렇다면 극심한 고통이 있는 환자의 요청으로 의료진이 환자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중단시키는 안락사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것은 무엇이 다를까. 이상원 교수(총신대신대원 기독교윤리학·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상임대표)는 어떤 치료를 해도 효과가 없는 경우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한 환자의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은 ‘안락사’와는 다르다”는 입장을 개진했다.

그러나 그는 환자 자의적으로 죽음을 택하는 안락사에 대해서는 “‘정당한 이유 없이 인간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중단시키는 안락사는 인간의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적 소유권의 침해하는 일”이라며 “절대 허용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현행법이 말하는 ‘무의미한 연명의료’ 중단은 기독교윤리 관점에 비추어 볼 때 정당하다는 입장이다. 임종과정에 있는 말기 중증환자의 경우 하나님이 주신 자연적인 생명을 무리하게 인위적으로 연장하기 보다는 환자의 요구에 따라 치료를 중단할 수도 있다는 것.

이 교수는 “인간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중단시킬 권리가 인간에게 없다면 일정한 조건 하에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시켜야 할 의무 역시 항상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히면서도 “단 현행법이 소극적 안락사 합법화의 발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속적인 예의주시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5만 3900명, ‘연명의료’ 유보 및 중단 결정
가족의 대리판단…윤리적 문제 화약고로 남아
‘호스피스-완화의료’ 확대·정착에 관심 필요

 

법안의 ‘지속적인 모니터링’ 필요

법의 규정이 갖는 불확실성에 대한 문제도 있다. 현재 연명의료결정법에서 ‘임종단계 직전’과 ‘회복 가능성’의 해석에 대한 오류가능성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혼수상태에 대한 환자에 대한 가족의 대리판단을 허용했다는 점 역시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해야 할 부분이다.

사전의료의향서를 등록하지 않은 말기환자를 대신해 배우자나 직계존비속 가족 2명 이상이 평소 환자의 뜻이라고 일관된 진술하는 경우 ‘연명의료 중단’가 가능해졌으며, 환자의 뜻을 모를 때는 배우자와 부모, 자녀의 동의가 모두 있어야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게 됐기 때문.

실제로 법 시행 이후 ‘연명의료’의 유보 및 중단에 대한 결정주체가 환자 본인인 것보다 가족의 합의가 더 많았다. 올해 6월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환자 가족 전원의 합의나 환자 가족 2명 이상의 일관된 진술로 연명의료를 중단한 경우가 각각 1만8천775명(34.8%), 1만7천387명(32.3%)으로 전체 연명의료 중단·유보 환자의 67.1%에 달했다. 10명 중 7명꼴이다. ‘연명의료계획서’를 직접 작성해 연명의료를 중단한 환자는 1만7천196명(31.9%)이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직접 작성했던 환자는 542명(1.0%)에 불과했다.

이밖에 병원비가 없는 저소득층이나 자녀와 재산 분쟁을 겪는 노인의 경우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연명치료를 거부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생명윤리의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연명의료계획서’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을 통해 자기결정권을 보호하고 취약계층에 대해서도 사전 충분한 정보제공을 통해 본인의 판단을 돕도록 하는 인프라 구축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김기욱 사무총장(수원 과수원교회)은 “가족도 엄밀히 환자의 죽음과 관련해 이해관계가 있을 수 있다. 모든 가족이 환자 최선의 이익을 대변할 수 없고, 정작 환자를 잘 돌보지 않던 가족들까지 나서 의사결정에 참여한다는 것도 합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환자 스스로가 본인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결정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호스피스-완화의료’ 확대돼야

장기간 고통 속에 있는 환자에 대한 지속적 돌봄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기독교계에서는 ‘호스피스-완화의료’ 제도의 확대를 오랫동안 주장해왔다. 지난 6월 보건복지부는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른 법정계획으로 ‘제1차 호스피스·연명의료 종합계획’을 통해 2023년까지 호스피스 서비스 이용률을 30%까지 높이고, 의료기관윤리위원회 설치 의료기관을 현재 193개에서 800개까지 늘리겠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거주지에서 작성할 수 있도록 등록기관을 확대하고 ‘찾아가는 상담소’도 체계적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호스피스 센터도 8개소에서 단계적으로 권역별로 확대해 지원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호스피스 대상자도 확대해 정부는 말기 암 환자뿐 아니라 에이즈,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만성간경화증으로 인한 말기환자도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이러한 병명으로 지난해 호스피스 서비스를 이용한 환자는 16명에 불과해 보완이 요청된다. 특히 호스피스 서비스를 기관뿐 아니라 가정 내에서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문 서비스를 확대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김기욱 사무총장은 “현 법률에서는 연명의료 중단 시점이 너무 늦어서, 임종에 가까운 말기환자만 서비스 이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호스피스 완화의료의 시점은 연명의료 보류, 중단 시기보다는 빨라야 한다”며 “이 부분에 대한 법의 보완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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