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교회에 남긴 가장 큰 흔적은 ‘분열’

■8·15 맞아 교회 속 일제의 잔재를 지우자 손동준 정하라 기자l승인2019.08.06 15:34:47l수정2019.08.07 08:51l14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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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사이 뿌리 내린 잔재들…‘아는 것이 시작’
용어 사용부터 교단 분열까지…재고 계기 삼아야

▲ 올해 74주년을 맞은 8.15는 한일관계가 매우 험악한 속에서 맞이하게 되어 어느 때보다 특별하다. 전문가들은 이 시간을 교회 안에 남아 있는 일제의 잔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로 삼을 것을 제안했다.

우리나라가 8.15 광복의 민족 해방을 맞이한 지 70년이 넘었지만, 우리 문화 곳곳에는 여전히 일제의 잔재가 남아있다. 정부 차원에서도 일제 잔재를 청산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 그 수준은 미비하다는 인식이 많다. 한국갤럽이 지난 2월 1~8일 국민 1004명을 대상으로 벌인 국민인식조사에서 응답자의 80.1%가 “친일 잔재가 청산되지 않았다”, 15.5%만이 “청산됐다”고 응답했다.

특히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 언어에서도 순수한 우리말 대신 일제강점기의 잔재 용어를 섞어 쓰는 경우가 있다. 문제는 교회도 예외는 아니라는 것이다. 교회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이나 통용되는 문화가 일제 강점기에 유래된 것인지 알지도 못한 채 그대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 잡은 일제 잔재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묵도’는 ‘묵상’이나 ‘조용한 기도’로

일제 잔재 청산을 위해 우리가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노력은 일상생활 속 일본식 용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것이다. 특히 교회 안에서 자주 사용되는 용어 중에서도 일제 잔재로 남아있는 단어가 있다. 먼저는 일제시대 신사참배에서 유래한 ‘묵도’라는 용어다. 흔히 묵도를 ‘묵상기도’의 줄임말로 오해하고 있지만, 이는 일본의 신사(神社)에 먼저 참배한다는 의미를 갖는 것으로 사용하지 말아야 할 잘못된 예배 용어 중 하나이다. ‘묵도’는 ‘묵상’이나 ‘조용히 기도하심으로’라는 말 등으로 대체할 수 있다. 찬송이나 신앙고백으로 예배를 시작했던 과거 예배의 형태로 바꾸어갈 수도 있다.

또 아직까지 교회 내 자주 사용되고 있는 용어인 ‘성가대’가 있다. 거룩한 노래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는 ‘성가(聖歌)’ 역시 한국 기독교의 전통과는 거리가 멀다. 실제로 성경에는 ‘성가’라는 말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찬송’이라는 단어가 208번, ‘노래’ 176번, ‘찬양’ 83번, ‘찬미’가 13번 등장한다. 초기 한국기독교 역시 성가라는 말 대신 ‘찬양’을 사용했으며, 1913년 평양 장대현교회는 한국교회 최초로 ‘찬양대’를 조직했다. 

한국교회에 성가대가 처음 사용된 것은 1960년대 일제강점기 말 일본말로 성가대를 지칭하는 ‘세이까다이(聖歌隊)’라는 말이, 그대로 한국교회에 유입됐다는 설이 높다. 성경 속 찬양의 의미를 그대로 담아내기 위해서는 성가라는 표현보다는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과 십자가 은혜, 부활의 감격과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린다는 마음을 담은 ‘찬양대’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욱 적합하다.

흔히 프로테스탄트를 지칭하는 ‘개신교’라는 용어가 일본식 명칭이라는 주장도 있다. 일본의 식민지 정책의 일환으로 가톨릭은 ‘천주교’(구교), 프로테스탄트교는 ‘개신교’(구교)라는 이름으로 구분을 지었으며, 선교 초기에는 예수교, 기독교로 호칭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개신교라는 명칭을 원어를 살린 ‘그리스도교’로 바꾸어 사용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일제 잔재 남은 ‘장례문화’ 바꿔야

장례문화도 일제 잔재가 남아있다. 기독교인들도 이른바 ‘천국환송예배’를 드리며 차별화를 두고 있지만, 예배를 드리는 것을 제외하곤 일방 장례식과 크게 다른 점은 없다. 흔히 고인을 떠나보내는 장례식장에는 영정사진이 놓여있고 그 앞에 국화꽃을 헌화한다. 단순히 절하지 않고 분향하지 않는 것으로 기독교 장례를 드렸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를 진정한 기독교 장례예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마지막 발인을 새벽에 진행하는 것도 ‘해가 뜨면 조상신이 저승으로 떠나지 못한다’는 유·불교문화에 기인한 것이다.

고인에게 입히는 ‘삼베 수의’도 일본인들이 만든 문화다. 이는 일제강점기인 1934년 조선총독부가 자원 공출을 위해 죄수복을 상징하는 삼베로 짠 수의를 한국에 강제로 확산시킨 것이다. 이전에는 고인이 평소에 입던 옷 중 가장 좋은 옷을 입혔던 수의문화가 삼베로 대체된 것이다. 

유족이 착용하는 ‘완장’도 마찬가지다. 이전엔 지팡이를 짚음으로 유족을 구분했다면, 일제가 각종 항일운동을 막고 독립운동가를 효율적으로 검거하기 위해 활용한 것이다. 일본 황실을 상징하는 국화를 헌화하는 것 역시 천황에게 모든 것을 돌린다는 의미가 담겼다. 그동안 ‘장례문화’ 개선을 위해 수의 대신 평상복 입기 운동을 펼쳐온 하이패밀리 공동대표 송길원 목사는 “산 사람을 치료하는 것은 병원의 몫이라고 해도, 죽음은 종교의 영역”이라며, “3.1운동 백주년을 맞는 올해 교회가 주도해 성경적인 장례문화를 교육하고 정착시켜야 한다”고 당부했다.


가장 큰 잔재는 ‘분열’

혹자는 한국교회의 역사를 ‘분열의 역사’라고 말하기도 한다. 특별히 장로교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이와 같은 견해를 반박하기 힘들다. 문제는 이 분열이 ‘신사참배 강요’로 기인한 일제의 잔재라는 것이다. 

한국장로교는 130여 년 전 선교사들이 들어와 복음을 전하면서 시작됐다. 1884년에는 미국 북장로회의 알렌이, 이듬해에는 언더우드와 헤론이 들어와 조선에 미국 북장로선교회를 설립했다. 이후 호주 장로회와 미국 남장로회, 캐나다 장로회 선교사들이 차례로 입국하면서 이들은 연합공의회를 구성했다. 연합공의회는 한국에 하나의 장로교회가 세워지기를 희망하며 국적을 초월한 화합을 도모했다. 
1905년에는 감리교 선교사들까지 합세하여 하나의 개신교회인 ‘대한예수교회’를 설립하려는 운동까지 벌였으니 초기 한국교회의 모습은 오늘날 250여개로 갈라진 장로교의 분열과는 크게 대조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는 1907년 대한예수교장로회 독노회로 출발하여 1912년 총회를 조직했다. 만주 심양에 있는 봉천신학교 교수로 활동했던 박윤선 목사가 월남하여 1946년 부산에 고려신학교를 설립하는데 이들을 중심으로 한 고신측이 신사참배를 문제로 인해 갈라지게 된 것이다. 

고신측은 일제 말엽 신사참배 강요를 반대한 교계 일부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예장 경남노회 내에서 신사참배자와 반대자들과 대립했다. 1951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제36회 총회에서 고신측이 갈라졌고 1952년 9월 이들이 별도의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를 조직함으로써 마침내 국내에 2개의 대한예수교장로회가 등장하게 된다. 이후 기장의 분립, 합동과 통합의 분열 등 계속된 나눠짐의 역사는 한국교회가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지난한 분열사…극복 가능할까

흩어진 교회를 하나로 모으기 위한 노력은 연합 기관의 출범으로 이어졌지만 이 또한 상황이 여의치 않다. 1924년 출범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총무:이홍정 목사)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연합단체이지만 현재 한국교회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초창기에는 보수와 진보를 아울러 명실 공히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기관으로 연합의 가치를 실현하기도 했지만 교파분열의 여파로 교회협을 이탈하는 교단들이 나타나면서 내부의 힘이 약화됐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대형화의 추세 가운데 교회협에 가입하지 않은 교단들의 교세가 더욱 강해졌다. 이때부터 보수와 진보로 나뉘면서 세상을 향한 교회의 목소리를 하나로 내지 못하는 처지에 직면하게 됐다. 현재 교회협에 가입된 교단은 대한예수교장로회와 기독교대한감리회, 한국기독교장로회 등 9개에 불과하다.

1989년에는 고 한경직 목사를 중심으로 보수적인 성향의 한국교회 원로들이 새로운 개신교 연합기관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전광훈 목사)가 출범한다. 한기총은 2004년 사립학교법 개정과 국가보안법 폐지 등 4대 개혁입법을 거리투쟁을 통해 좌절시키는 등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1년 금권선거와 무리한 이단 가입 등으로 인해 대규모 교단들이 연이어 탈퇴와 행정보류에 나서 현재는 그 위상이 줄어든 상태다. 사태 당시 한기총에서 분리된 한국교회연합(대표회장:권태진 목사)와 교단장들의 연합에서 출발해 2018년 별도의 사단법인으로 출범한 한국교회총연합(대표회장:이승희·박종철·김성복 목사)까지 현재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연합단체는 4개로 나뉘어진 상태다. ‘신사참배’에서부터 시작된 분열의 역사는 현재진행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민경배 백석대학교 석좌교수는 “한국교회 분열사에는 신학적인 요소보다 비신학적인 요소가 많다”며 “올해 74주년을 맞은 8.15는 한일관계가 매우 험악한 속에서 맞이하게 되어 어느 때보다 특별하다. 분열을 야기한 비신학적인 요소들에 대해 여느 해보다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손동준 정하라 기자  djson@igood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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