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본질에 집중한 농촌목회 35년 “이곳이 작은 천국이죠”

■ 국내외 20여 곳 선교하는 작지만 강한 ‘음성 흰돌교회’ 이현주 기자l승인2019.06.21 14:42:08l수정2019.06.21 14:45l14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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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충북 음성에 교회 개척 … 올해로 35주년
인간적 욕심 내려놓고 낮은 자세로 성도들 섬겨와
매월 첫 주 선교헌신예배, 올해 남수단 교회 건립

▲ 흰돌교회는 농촌교회지만 엄청 역동적이다. 교회 스스로 문화를 나누고 다이나믹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젊고 강한 교회의 모습이다.

초록이 우거진 시골길에 삼삼오오 농가들이 모여 있다.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한참 달려 도착한 곳은 충청북도 음성군에 위치한 흰돌교회. 교회 입구에는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마을 한 가운데 우뚝 서있는 십자가 탑은 교회의 위치를 알리고 있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찾아오기 쉽지 않은 시골 농촌교회의 모습 그대로였다. 

1984년 5월 19일 개척한 흰돌교회는 올해로 설립 35주년을 맞았다. 이수일 담임목사 역시 음성에서 35년을 보냈다. 서울토박이인 그는 이제 ‘충청도 사람’이 다 됐다. 낯선 시골마을에 정착해서 교단은 물론이고 지역사회의 중심이 되기까지 땀 흘려 일군 그의 목양지를 찾아가 보았다. 
 

첫 성도, 목회의 관점을 바꾸다

“교회 주변은 논밭이거나 과수원이죠.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에요. 교회도 없었지만 크리스천이라고는 단 한 명도 없었죠. 마을사람들은 교회가 낯설었고, 모내기 한 번 해본적 없는 저는 농촌이 낯설었죠.”

1984년, 중부고속도로도 없던 시절이었다. 신학교를 마치고 부교역자로 사역하던 중에 흰돌선교회에서 음성에서 목회할 사역자를 찾았다. 흰돌선교회는 여신도들이 주축이 되어 시골에 교회를 개척하는 곳이었다. 음성에 두 번째 교회를 개척하기로 했고, 이수일 목사가 사역자로 연결됐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 밖을 나서 본적이 없는 그였다. 처음 음성에 내려오자 마을사람들은 그를 “이 씨”라고 불렀다. ‘이 씨’는 집집마다 다니며 전도와 교제를 했다. 마을사람들은 그저 젊은 일손이 늘었다고 좋아할 뿐이었다. 

“첫 성도요? 한 달 반만에 1명이 교회를 찾아왔어요. 진짜 싫었습니다. 왜 첫 성도가 저런 사람일까… 너무 실망했어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흰돌교회 성도 1호는 고 이상희 권사다. 말은 거칠고 술과 담배를 즐기며, 마을에서 까탈스럽기로 소문난 할머니였다. ‘반갑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한’ 내면의 갈등이 일어났다. ‘마을 이장이나, 부녀회장이 먼저 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인간적인 고민과 갈등 속에서 이수일 목사의 목회관은 완전히 새롭게 바뀌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 55:8~9)

이사야 말씀을 통하여 사람의 눈에 좋아 보이는 성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시는 한 사람의 영혼을 소중히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진리를 깨닫게 된 것이다. 사람의 눈으로 양질의 교인을 판단하는 자신이 얼마나 교만했는지, 완전히 내려놓는 시간이 되었다. 그는 이 경험을 목회의 중대한 전환점으로 꼽았다. 

“오래 걸렸어요. 하지만 3년 정도 후에 권사님이 술과 담배 다 끊으시고, 찬송을 부르면서 한글까지 깨우치시니까 사람들이 보는 눈이 달라진 거죠. 완전히 새사람이 되셨으니까요.” 

신내림을 받은 무당이 교회에 나오기도 했다. 가족을 구원시켜달라던 무당 성도는 위암 말기로 짧은 생을 살다 떠났다. 하지만 가족 전체가 구원에 이르는 믿음의 역사가 일어났다. 육의 눈으로 바라볼 땐 분명 이상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교회였다. 하지만 그들의 삶에 이상한 기적이 일어났다. 마을에서도 내놓았던 사람들이 건강하게 변화가 됐다. 그러자 교회에 대한 시선이 달라졌다. 어린이들도 모여들었다. 그렇게 흰돌교회는 마을사람들의 신뢰와 함께 서서히 부흥해나갔다. 

▲ 지난해 열린 여름성경학교 모습. 어린이들에게 교회는 배움의 장이요, 놀이공간이다.

IMF, 부도를 함께 이겨낸 공동체

어린이가 없는 농촌마을인데도 흰돌교회 주일학교는 30명이 넘는다. 주일예배를 드릴 때면 150석이 넘는 예배당이 꽉 차고 넘친다. 분명 농촌 인구는 줄어드는데 흰돌교회 성도들은 계속 늘어났다. 음성에서는 물론이고 멀리 금왕에서도 성도들이 찾아온다. 대체 농촌마을 깊숙이 자리한 작은 교회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궁금했다. 

“20년 째 매일 새벽마다 잠언을 설교하고 있어요.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라는 가르침을 실천하면서 선교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농촌교회지만, 우리보다 힘겨운 농촌교회와 해외교회 등 총 20여 곳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50만원에서 적게는 10만원까지 매달 헌금을 나누고 있죠. 헌금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으로 흘려보내야 한다는 것이 우리 흰돌교회 재정운영의 원칙입니다.”

선교와 구제, 이 두 가지는 이수일 목사가 흰돌교회를 개척하면서부터 붙들어온 중요한 목회 가치다. 또한 문화생활에 낙후된 농촌 어린이들을 위해 워십과 뮤지컬을 가르치고, 성도들이 직접 오케스트라로 예배를 섬기도록 이끌었다. 교회 구성원 모두가 즐겁게 사역하는 문화공동체가 된 것이다. 

이러한 결실을 맺기까지 고마운 이가 있다. 바로 이수일 목사의 큰딸이다. 개척 당시 10개월이던 어린 딸이 피아노를 전공해 지금은 교회의 중요한 기둥역할을 해주고 있어 여간 고마운 것이 아니다. 

초창기에는 경로잔치를 열어서 어르신들을 섬겼다. 이동이 불편한 마을 아이들을 위해서 아침마다 승합차로 학생들 통학을 맡았다. 그렇게 10년이 지나니까 처음 교회가 작아져 새로 건축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성도들은 마음을 다해 교회를 건축했다. 그런데 마침 교회를 건축한 때, IMF사태가 터졌다. 

“건축업자들은 부도가 났고 이자는 22%까지 올라갔어요. 건축자재 비용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았구요. 전 성격이 소심해서 성도들에게 이렇다 말도 못하는데, 우리 성도 한 분이 목사님을 위해서 금식하겠다고 용기를 주셨습니다.”

남에게 맡기지 않고 일주일간 새벽집회를 인도했다. 정말 목숨을 걸고 기도했다. 당시 성도수는 약 50명 정도였다. 큰 빚을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 흰돌교회 1호 성도인 이상희 권사가 땅문서를 들고 나왔다. 감동을 받은 성도들이 하나씩 가진 것을 내어놓았다. 1억5천만 원 부채로 부도 직전까지 간 교회가 일주일 새벽집회 후에 1억2천만 원을 갚을 수 있게 됐다. 성도들은 지금도 당시를 회상하면서 ‘기적’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위기를 겪으면서 성도들은 더욱 견고하게 단합됐고, 빠르게 성숙해갔다. 

▲ 이수일 목사

오직 ‘복음’에만 본질 둔 강소교회

이수일 목사 목회사역의 본질은 바로 ‘복음’이다. 홍수가 난 곳에 오히려 식수가 필요하듯이, 교회는 홍수처럼 넘치지만 성도들은 복음에 굶주려 있다. 이수일 목사는 기복적인 설교를 내려놓고 복음에 대한 본질에만 천착했다. 성도들을 대할 때도 나그네와 고아 같이 작은 사람을 VIP로 대접한다. 성도들을 위해 죽을 수 있는 목자가 되기 위해 먼저 희생한다. 그래서 주일에도 성도들이 먼저 식사하고 난 후에 장로와 목사가 수저를 든다. 오랜 시간 이와 같은 훈련을 받은 성도들은 교회를 작은 천국으로 섬기며 살아가고, 훗날 하나님께서 따스하게 안아주실 천국의 삶을 소망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섬김은 총회 농어촌선교회 사역으로도 이어졌다. 성도들과 함께 24년째 더 어렵고 힘든 교회를 섬기는 농촌선교 사역을 진행하고 있다. 처음에는 농촌교회 목사들의 의식개혁을 목표로 했고, 목회자의 질을 높이는 교육을 감당했다. 이후 사역은 점점 확장되어서 농어촌교회 건축과 농어촌목회자 부부수련회로 섬기고 있다. 이 목사는 농촌교회가 의존하는 마음을 버리고 스스로 자립하길 바란다. 그래서 농촌교회 긴급지원과 함께 스스로 일어설 터전을 세우는 일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작년까지 총 6개 교회를 건축했어요. 농선회 회원들 모두 빠듯한 살림인데 헌금을 보내오고 직접 건축에 참여하며 도와주고 있습니다. 해마다 여름철엔 강원도를 비롯한 지방 곳곳을 돌면서 위기에 처한 교회는 없는지 돌보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이수일 목사에게 있어 농촌교회는 도움이 필요한 곳이 아니다. 작은 교회도 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흰돌교회가 바로 그 모델이기 때문이다. 한국교회 85%가 100명 미만의 작은 교회인 상황에서 모두 대형교회를 바라볼 수만은 없다. 작지만 강한 ‘강소교회’로 농촌교회들을 세워나가는 것이 그의 소망이다. 

“예배하는 삶에 목회인생을 걸었으면 좋겠어요. 우리 교회 성도들은 대예배와 오후예배 구분없이 모두 예배에 집중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설교로 농촌목회 승부를 걸고요, 그리고 굶더라도 선교는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교회는 매달 첫 주일 선교헌신예배를 드리는데 여기서 나온 헌금은 전액 선교비로 지출됩니다.”

올해는 교회설립 35주년을 맞이하여 아프리카 남수단에 교회를 건립하기로 했다. 개척 후 지금까지 손 벌린 적 없고 오히려 작은 헌금에서도 나누고 섬기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었다. 복음도 헌금도 한 곳에 머물면 안 된다는 이수일 목사와 흰돌교회 성도들의 신앙은 ‘민들레 홀씨’처럼 세상 곳곳으로 복음을 들고 날아간다. 작은 흙만 있다면 기어이 생명의 꽃을 피우는 ‘복음의 생명력’을 믿기 때문이다. 

“은퇴하기 전에 50교회 정도 섬기고 싶은데… 아름다운 마무리, 조용한 은퇴까지 잘 해낸다면 성공한 목회라고 할 수 있겠죠? 저는 장례식만큼 우리가 기다리는 해피엔딩이 없다고 생각해요. 이런 설교를 실제로 합니다. 천국을 소망하는 믿음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우리 모두 천국을 소망하는 복음의 삶을 살아간다면 좋겠어요.” 

천국을 소망하는 삶은 멀리 있지 않다. 그가 35년 땀 흘려 일군 목회 현장에는 늘 복음이 있었고, 흰돌교회는 삶이 팍팍한 이웃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었다. 이미 흰돌교회는 이 땅의 ‘작은 천국’으로 많은 이들에게 소망을 주고 있었다. 

이현주 기자  hjlee@igood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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