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노숙자 무료배식하는 ‘나눔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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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노숙자 무료배식하는 ‘나눔공동체’
  • 승인 2004.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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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들고 배고픈 사람 돕는 일이 곧 예수님 섬기는 마음이죠”

햇살이 따사롭다. 4월의 끝자락에 피어난 라일락은 짙은 향기를 뿜어낸다. 모두들 꽃향기에 취해있을 한가로운 토요일 오전. 서울역 맞은 편 길가에 위치한 허름한 2층 건물로 들어서자 케케한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방금 맡은 꽃향기는 어디로 가버렸을까. 한 끼 식사를 위해 모여든 서울역 사람들이 뿜어내는 삶의 향기는 꽃내음 그것보다 훨씬 진했다.

오전 11시. 점심식사를 하기엔 조금은 이른 시간. 그러나 한 줄로 길게 늘어선 서울역 사람들은 하루의 첫 식사를 위해 나눔공동체를 찾았다. 익숙한 듯 수저와 식판을 찾아들고 차례로 식사를 받아든다. 오늘 메뉴는 중국식 해물탕과 미트볼, 게맛살 튀김과 시원한 무생채 김치다. 보기만 해도 군침넘어가는 이 식사는 나눔공동체 원장 김해연사모(사진 아래)의 마음이 담겨있는 음식들이다. 백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있다. 푸짐하던 반찬은 어느새 동이나고 김해연사모는 준비해둔 여분의 반찬을 꺼내어 놓는다.

서울역 사람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 앞을 못보는 이, 20년 넘게 거리를 전전한 노숙자, 무슨 사연이 있을까 궁금함을 더하는 젊은 여인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공존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간다. 검게 그을린 얼굴, 코끝을 자극하는 냄새, 그리고 지독한 가난과 사람들로부터의 멸시와 차별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하루 한 끼 식사를 위해 아침 일찍부터 공동체 계단 앞에 쭈구리고 앉아 기다리고 있는 이들은 온갖 정성을 담아 자신들에게 한 끼 식사를 제공하는 공동체가 고마울 뿐이다.

1시간 남짓 시간이 흐르자 시장통 같던 교회는 텅 비어버렸다. 식사를 하고 교회에 걸어놓은 헌 옷가지들을 챙긴 서울역 사람들은 썰물처럼 교회를 빠져나갔다. 김해연 사모는 일복을 타고 났는지 빠른 손놀림으로 이내 설거지까지 모두 해치웠다.

“맛있게 식사하는 사람들을 보면 절로 배가 불러요. 몸은 고되지만 보람으로 버티죠. 잘먹었다고 고맙다고 인사하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그로 인해 힘을 얻습니다.”

나눔공동체는 5년전 상도동에서 소년소녀가장을 돌보고 일대일 후원을 맺어주는 일로 시작됐다. 남편 박종환목사는 꽤 규모있는 교회 부목사 자리를 박차고 나와 어렵고 낮은 곳에 사는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서울역 한 켠에 교회를 차리고 사발면을 배식하며 거리로 나가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했다. 이 모든 일의 계기가 된 것은 아홉살짜리 한 소녀로부터 비롯됐다.

전문적인 봉사를 위해 자원봉사은행에서 교육을 받던 김해연사모는 산동네 쪽방에서 어렵게 살고 있던 선용이라는 소녀가 고아원에 가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그를 후원하기로 했던 것. 그 후 나눔공동체를 설립하고 아예 어려운 이웃을 직접 찾아 다니기 시작한 것이 벌써 5년이 지났다.

“처음에는 서울역에 교회를 두고 공동체는 상도동에 두면서 두가지 사역을 병행했어요. 사발면으로 시작했던 서울역 배식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밥으로 바뀌었지만 운영에 어려움이 계속됐죠. 결국 월세라도 줄이려고 서울역에 있는 교회로 합쳐서 운영하고 있지만 주님의 성전에서 식사를 만들고 나누고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려요.”

나눔공동체는 수요일엔 저녁식사를, 목요일엔 도너츠, 금요일에는 독거노인에게 반찬을 만들어 전달하고 토요일은 점심 배식, 그리고 주일예배 후에 점심 배식 등 일주일에 5일간 봉사하고 있다.

5년전 사발면을 들고 서울역 거리로 나섰을 때 굶는 사람이 없는 서울역을 꿈꿨다. 사발면을 배식하다가 모자라면 준비한 빵으로 대체했다. 음식이 모자라 굶는 사람이 없도록 하려는 배려였다. 그러던 어느날, 길게 늘어선 노숙자들에게 사발면 배식이 끝났다. 모자란 식사를 위해 빵을 나누어 줄 때 한 노숙자가 빵을 집어 던지며 라면을 달라고 했다.

“죄송합니다. 라면이 다 떨어졌어요. 다음에는 좀 더 넉넉히 준비하겠습니다. 이거라도 드세요.” 김해연사모는 다시 빵을 건넸고 노숙자는 또다시 소리를 지르며 빵을 집어 던졌다. 저 멀리 날아간 빵을 뛰어가 다시 주워온 김사모는 죄송하다며 머리를 조아리고 또 한번 빵을 건네 주었다. 그 모습을 보던 노숙자들 사이에 실랑이가 붙었다. 당신때문에 저사람들이 앞으로 배식을 안하면 어떻게 할거냐며 고성이 오갔다. 김해연사모는 싸우는 사람들을 말리며 이렇게 말했다.

“아니요, 다음에 또 옵니다. 그 때는 못드시는 분이 없도록 좀 더 많은 양을 준비할께요.” 말은 그렇게 하고 돌아섰지만 리어커를 끌고 교회로 돌아오는 내내 뜨거운 눈물이 사모의 볼을 타고 내렸다.

“하나님 너무하세요. 이런 일을 시키시려면 조금 넉넉히 주시지 왜 사람들이 배를 곯게 하시나요. 돈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배고파서 먹을걸 달라는데 음식이 모자라 못주면 제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아시잖아요. 자식을 굶기는 어미의 심정을 하나님은 아시잖아요.”

이 일이 있은 후 김해연사모에겐 버릇이 하나 생겼다. 음식은 항상 넉넉히 준비하고 쌀도 두말이상 떨어지지 않게 준비해두는 것이다. 그리고 사발면 배식에서 벗어나 밥으로 식사를 제공하면서 부터는 반찬도 정성을 들여 맛있는 것으로 골라한다. 대통령 입이나 노숙자 입이나 맛잇는 것을 먹고 싶은 심정은 다 똑같다며 항상 최고의 음식을 고집한다.

이런 사모의 마음을 아는지 서울역 사람들은 나눔공동체의 식사를 제일 좋아한다. 방금 해낸 따뜻하고 고슬고슬한 밥과 사각사각한 김치도 그만이지만 더 먹으라며 퍼주고 눈을 맞추며 한 사람 한 사람 안부를 챙기는 그녀의 따뜻한 마음이 고마울 뿐이다.

“가난에 찌든 쪽방사람들이나 거리를 헤매는 노숙자들이 하루 아침에 달라질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 해에 한 두명씩 하나님을 알게 되고 삶의 희망을 다시 마음에 새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죠. 변화되는 단 한 사람, 그들을 위해 공동체는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종환목사는 노숙자들이 가정으로 돌아가거나 신앙생활을 하면서 삶의 의지를 다지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나눔선교교회의 50석 가량되는 자리는 주일이면 꽉찬다. 어떤 이는 아침 8시부터 교회 문 앞에서 예배 시간을 기다리고 또 교회가 하는 일에 감동받은 자원봉사자들은 먼 길을 마다않고 주일이면 예배에 참석한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는 일. 그리고 보리떡 두개와 물고기 다섯마리로 서울역 사람들을 먹이는 오병이어의 기적. 이 모든 일들이 나눔공동체가 이 땅에서 보여주는 사역이다.

“모두들 마음으로는 선을 행하고자 하지만 어디 몸이 따라줍니까. 그런데 이 공동체에는 몸소 실천하는 사랑이 있어요. 그래서 좋습니다.”

자원봉사에 나선 엄기홍 성도(사진 우측 상단)는 도울 곳이 있어 행복하다며 환히 웃는다.

나눔공동체에도 꿈은 있다. 노숙자들의 재활을 돕는 종합센터를 운영하는 것이다. 1층은 급식소로 2층은 예배당으로 3층은 프로그램실, 4층은 장애인을 위한 물리치료실을 두는 것이다. 김해연 사모는 이보다 조금은 소박한 꿈을 갖는다.

“그저 교회와 공동체가 분리만 되도 좋겠어요. 그리고 노숙자들이 옷을 빨 수 있는 세탁기 하나, 기증받은 헌 옷을 걸어 놓을 넉넉한 나눔터면 충분해요.”

나눔공동체에 기부되는 후원금은 월 1백만원 남짓. 한달에 배식과 독거노인 반찬배달 등에 들어가는 돈이 3백만원이 훨씬 넘으니 공동체 살림살이는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래도 하나님이 맡기신 사역에 쉼이란 없는 법. 어려워도 꿋꿋이 지탱해 나가는 것이 나누는 사람들의 힘이다.

제일 늦게까지 식사를 하고 있던 한 노숙자가 묻는다. “목사님, 요즘 그 아저씨 왜 안와요? 안 온지 두어달도 더됐지? 여기선 안보이면 딱 두가지야. 죽었거나 아님 교도소에 갔거나….”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거리의 사람들. 사람이 그립고 사랑이 그리운 서울역 사람들은 오늘도 거리로 직접 나와 손을 잡으며 말을 건네는 보잘 것 없는 공동체의 작은 목사와 사모로 인해 살아갈 힘을 얻는다.

이현주기자(lhj@uc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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