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침략의 거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던 안중근 의사의 묘지가 종전에 알려진 것과 달리 지역 내 기독교 묘지라는 당시 러시아 언론의 기사가 발굴됐다.
2010년 4월 21일자 ‘우수리스까야 아끄라이나’ 기사에 따르면, 안중근 의사는 사형이 집행된 후 작은 예배당으로 옮겨졌고, 그후 지역 기독교 묘지로 옮겨졌다고 기록돼 있다.
그동안 알려진 바로는 안중근 의사에 매장지는 교도소 내 묘지였다.
이 같은 내용은 국가기록원이 지난 28일 공개한 것으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하바로프스키 등의 지역신문이 보도한 안중근 의사 관련 기사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밝혀졌다. 이번에 공개된 24건의 기사에는 안중근 의사가 첫 심문부터 사형집행까지 당당하고 의연했던 모습을 여러 방식으로 묘사하고 있다.
‘쁘리 아무리예’는 의거 이틀 전인 1909년 10월 24일부터 거사를 위해 떠날 때까지를 르포 형식으로 게재했고, 아울러 일본 총영사관에서 진행됐던 첫 심문에서 안 의사 진술을 실었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 고문도 두렵지 않다. 나의 이성과 심장은 너희들에 의해 병들었다. 죽으면서 나는 기쁘다. 나는 조국 해방의 첫 번째 선구자가 될 것이다.”
이밖에도 ‘달리니 보스톡’, ‘보스토치나야 자랴’ 등에도 안 의사가 시종일관 의연한 모습을 보였던 장면들을 기사로 보도했다.
국가기록원 이소연 원장은 “안중근 의사와 하얼빈 의거에 대해 러시아 인식뿐 아니라 의거 준비, 체포와 일본 영사관 인계과정 등 사후 조치과정이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안다”며 “안중근 의사 의거 11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을 실천했던 안 의상의 의연하고 당당한 모습을 국민과 함께하고자 공개하게 됐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