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들과 함께라면 고통도 두렵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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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과 함께라면 고통도 두렵지 않아요”
  • 승인 2001.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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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경기도 고양시 산자락에 자리잡은 ‘천사의 집’. 고아, 정신지체인, 치매노인 등 세상의 무관심 속에 버려져 갈 곳 없는 천사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작은 천국.
이곳에는 척추장애로 세상에 태어나 키 120㎝, 몸무게 28㎏의 연약한 몸을 지닌 장순옥원장과 항상 곁에서 묵묵히 원장을 돕는 남편 홍승만강도사가 눈물겨운 헌신으로 이 천사들을 돌보고 있다.

장애아란 이유로 부모에게 버림받은 장원장은 17세 때 보육원에서 가출해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용산의 한 양복점 미싱사로 들어간 뒤 자신이 세상에서 혼자라는 생각 때문에 일에만 몰두했다. 옛날 생각을 하며 틈틈히 고아원 같은 곳에 봉사하러 다니긴 했지만 장원장의 주된 관심은 돈을 모으는데 있었다.

“의지할 곳 없고, 친척 한 명 없는 처지에 돈이 있어야 살 수 있다는 심정 뿐 이었어요.”

하지만 그녀의 강팍한 마음에도 예수님은 찾아오셨다. 서울의 한 기독병원에서 봉사하면서 만난 목사님을 통해 자신을 세상에 보내셨고 오래 전부터 자신을 사랑하고 계신 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다. 그 후로부터 장원장은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되었고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위해 남은 삶을 드리겠다고 고백했다.

한편 청소년시절부터 보육원운영을 꿈꾸던 남편 홍강도사는 일찍이 부모님을 잃고 어려운 생활을 해온 외로운 사람이었다. 이런 아픔 속에 살던 그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된 것은 24살 때. 어느날 갑자기 다리가 아프고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한 홍강도사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쓰러지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보니 그가 있는 곳은 병원이었다.

목 주위에서 구슬크기 만한 고름덩어리가 여러 개 나왔고 바깥에서 성대가 보일 정도로 피부가 상해 있었다. 그가 고통 속에서 찾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뿐이었다. 하나님은 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그에게 평안을 허락하셨다. 결국 치료비가 없어 병원에서 쫓겨난 홍강도사는 여러 교회의 도움을 받으며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고 다시 한번 자신과 같이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며 살겠노라고 하나님 앞에서 다짐하게 되었다.

“저에게 아끼지 않고 베풀어주시는 교회 성도들의 나눔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확실히 알게 됐습니다.”

두 사람은 사회복지시설에서 봉사하며 만났다. 홍강도사는 노인들의 대소변을 손수 받아내고 아침저녁으로 밥상을 나르는 장원장의 모습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결혼하고 나서도 서로 마음속에 간직해온 보육원 운영의 꿈을 말하지 않았다. 매일 기도제목을 나누고 서로 기도해 주면서도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실 때까지 내색하지 않고 지냈다.

그러던 중 하나님의 응답을 받게 되었다. 하나님은 두 사람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 철저하게 헌신하기를 원하셨던 것 같다. 뇌성마비 딸을 갖게 되면서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처음엔 어린 딸을 안고 수없이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을 원망하였지만 기도하는 가운데 소외되고 아파하고 있는 사람들을 자신의 딸처럼 보살피고 사랑하라는 소명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지난 93년 결혼 6년만에 아래 동네 화정에 방 2칸을 얻어 ‘천사의 집’ 간판을 내걸었다. 몇 개월 지나자 두 부부가 돌봐야 할 ‘천사’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어두운 새벽 문 앞에서 누군가 몰래 놓고 간 아기가 울고 뼈만 앙상한 노인이 기어 들어오기도 했다. 이렇게 하나씩 모이다보니 의식주가 어려워졌다. 교회 봉사로 받는 사례금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홍강도사는 부족한 재정을 채우기 위해 콩나물 장사, 우유배달 등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주변 공장에서 일하다 화공약품을 잘못 만져 화상을 입기도 했지만 ‘천사’들을 돌보는 일을 멈출 수 없었다. 오히려 그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감사와 기쁨이 넘쳐 있었다.

그 후 50명 가까운 불쌍한 사람들이 천사의 집을 찾아 한 식구가 되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 하나님은 때를 따라 은혜를 베푸셔서 그때그때 필요한 것들을 부족함 없이 채워주셨다. 1년만에 마당이 있는 지금의 집을 주셨고 후원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을 보내주셨다. 주말에 소풍을 갔으면 하는 바램으로 기도하면 어떻게 알았는지 소풍차량과 도시락을 지원하겠다는 전화가 걸려오는 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은혜를 체험했다.

또한 하나님은 작년과 올해 이 두 사람을 ‘자랑스런 한국인상’과‘장한 남편상’으로 위로하셨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데 너무 과분한 대접을 받은 것 같다고 부끄러워한다. 홍강도사는 “정상인도 하기 힘든 일을 감당하고 있는 아내를 좀 도와주고 따라 한 것 뿐인데….” 라며 말끝을 흐렸다.

여러 번 방송을 타면서 천사의 집이 많이 알려지자 두 사람에게는 또 다른 소망이 생겼다. 천사의 집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 자원봉사하러 오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천사의 집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다.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고 몸도 성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는 저희 같은 약한 사람들을 통해서 당신의 사랑을 세상에 전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습니다.”

천사의 집에는 늘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아이들은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그네를 타고 벤치에서는 정겨운 대화가 펼쳐진다. 욕심도 없고, 경쟁도 없고, 미워하는 사람도 없이 세상이 알 수 없는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자신에게 고통이 있는 것을 오히려 감사하고 있는 이곳이 이름 그대로 ‘천사의 집’임을 느낄 수 있었다.

구자천기자(jckoo@uc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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