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부르는 환상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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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부르는 환상의 노래
  • 정석준 목사
  • 승인 2019.04.23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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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준의 시사영어 - 76

“네 형은 속이 편한 놈이야.” 농사일이 한창 바쁜 때, 형은 사랑방 문턱에 걸터앉아 ‘기타’를 치고 있었다. 못마땅해 하시는 아버지 보다 내가 더 화가 났다. 그러나 무조건 장자를 감싸고도시는 어머니 때문에 우린 아무런 말도 못하고 다만 속을 끓이는 것으로 대신했다. 어떻게 하든 부모님의 짐을 덜어드리려는 속마음에 이미 나는 몰래 방과 후 신문을 돌리고 있었다. 그렇게라도 하는 것이 내겐 최선의 효도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동네 어른들한테 들키고 집안 망신 시켰다고 엄마에게 혼이 날 때까지 그랬다.

제법 부자소리를 들었어도, 친구들이 버스를 타고 등교할 때, 우리 형제들은 걸어서 다녔다. 나는 쪼들리는 생활이 비겁했고, 구차하게 부모님께 손을 벌리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신문을 돌려 용돈을 벌었다. 그것은 사실(Facts)이다. 그러나 “정씨는 어린 아들을 신문팔이 시키고 있네” 하면서 흉을 냈던 동네 어른들의 말은 ‘진실(Truth)’하지 않았다. 그리고 혼이 날것을 두려워해 여러 말로 둘러대던 내말은 거짓(false)이었다. 

“시공을 초월하여 누구도 인정할 수 있는 보편적, 불변적인 사실, 이치, 법칙을 ‘진리’라고 한다.(Truth is most often used to mean being in accord with fact or reality.)” 그러나 “내가 진리이다.(I am the truth.)” 하셨어도, 예수를 ‘진리’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원론의 ‘바벨론 문화’를 세상은 이미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또 다른 ‘사실’ 추구에 몰두함이 진행되고 있다. 결국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아니고는(without believe in God) ‘세상에 진리, 사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현실’을 만나게 된다.

단순한 듯싶었던 형은 오히려 지금도 편안하게 잘 산다. 들여다보면 딱히 거짓으로 보탤 필요 없는 현재의 삶을 사실 그대로 받아 그 속에서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있다. 그러나 있는 척, 강한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해야 했던 나는 그렇지 못했다. 평생을 목회해왔어도 여전히 자신을 포장해서 ‘능력 있는 사람’으로 내보이고 싶은 욕망의 꿈틀거림이 내 속에 있다. 이는 더 이상 위조할 수 없는 내 삶의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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