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울추와 같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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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울추와 같은 사람들
  • 승인 2004.04.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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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님들의 관심도 아이들과 함께 세월 따라 바뀌어가는 것 같습니다. 지난해 가을 제가 사는 곳의 초등학교 아이들의 관심은 팽이치기와 디지몬 카드 놀이였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아이들은 그날 하루 동안 친구들 앞에서 팽이를 어떻게 멋지게 돌렸는지, 또 친구들의 카드를 어떻게 더 많이 가져올 수 있었는지 전장보고를 하는 병사처럼 하루의 화려한 일과를 설명하기에 바빠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과 산책을 하러 가던 중 외투가 필요해서 큰아이에게 집에 가서 외투를 가져오라고 했었습니다. 그때 큰아이는 애지중지 아끼는 카드를 건네주면서 잘 보관하고 있으라고 당부하며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나는 문방구 앞 평상에 걸터앉아 카드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기에 카드를 한 장씩 넘기며 큰아이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방구 앞에서 학원버스를 기다리던 아이들과 방과 후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옹기종기 모여 놀고 있던 아이들이 한 명 두 명 몰려들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이십여 명이 모였습니다. 어떤 아이가 제 손에 든 카드를 가리키며 그 카드는 누구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얼떨결에 다른 아이들에게 따서 얻어낸 것이라고 웃으며 말해버렸습니다.

대머리 아저씨가 자신들이 관심 갖고 있는 카드를 집어들고 열심히 접었다 폈다 하며 카드가 내것이라고 하자 아이들은 이상야릇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홍미롭게 저를 주시하였습니다. 그 말 때문에 아이들과 나는 나이와 세대를 초월하여 짧은 순간 하나가 되었고 카드 게임을 저와 하고 싶다는 아이도 있었고 또 다른 아이는 엉뚱하게도 어느 학교 다니냐고 묻기도 하였습니다. 실수로 말한 것 때문에 분위기가 고조되어 동네 아이들과 카드게임을 어쩔 수 없이 시작할 무렵 다행스럽게 큰아이가 내려와서 일련의 사태를 잘 마무리해 주었습니다. 아들이 왜 아버지를 저렇게 좋아하느냐고 물었을 때에 저는 카드 때문이라고 했습니다.아이들은 관계보다는 카드놀이에 우리를 초청하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4월엔 장애인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장애인의 날이 있는 달입니다. 장애를 입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심거리는 결혼,직장,관계,삶 이런 것들입니다. 그러나 장애를 입고 살아가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갈수록 그들에게 필요하고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라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곁에 섬기라고 보내준 모든 사람들은 우리들을 하나님의 온전한 사람으로 빚어가는 도구들이며 신앙의 균형을 잡도록 돕는 선물인 것입니다.

매주 수요일엔 정신지체 시설에서 아이들과 함께 삼일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양말도 신지 않고 간편한 운동복 차림으로, 어떤 아이들은 심지어 내의를 입고 나와서 형식과 제한 없이 손뼉을 치며 춤을 추고 즐거워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친구들입니다.

저는 예배전에 가서 그들의 존재 자체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전하고 싶어 악수도 하고 머리도 만져주며 예배인도를 합니다. 그런데 예배가 끝나고 돌아가면서 스물네 살된 준호는 저에게 “언제 왔어?”라고 인사를 합니다. 준호가 들어오기 전부터 제가 이미 그곳에 있었고 준호와 함께 찬양하며 말씀을 전하는 시간이 준호 앞에 있었음에도 준호는 내가 악수를 청하며 말을 건네주고 준호의 눈동자 속으로 들어갈 때에야 비로소 내 존재를 그 마음 안에서 확인해 주는 사람입니다. 저는 그렇게 인사하는 준호의 인사법이 맘에 들지 않아 인사하는 법을 교정해 주었지만 한 주가 지나면 준호의 인사는 다시금 “언제 왔어?”입니다.

준호의 “언제 왔어?”라는 인사는 함께 찬양하며 예배드린 것만으로 하나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사람들에게 무관심해지고 싶어 하는 굳어진 내 안에서 관계를 돌아보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또한 준호는 예배를 인도한 것으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내게 예배는 사람들의 존재 속으로 들어가야 함을 일깨워주기 위해서 하나님이 내게 보내준 사람이었습니다.

밀알이 섬기고 있는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는 역설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보다는 하나님께 있는 것(축복, 평안, 물질)에 관심을 기울이고 장래에 예수님과 같이 가난하게 살겠다고 하면서도 오늘 하루를 풍요함 속에서 살고 싶어하며 한 사람보다는 다수를 사랑하고 싶어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민호와 준호는 예수님 제자로써의 삶을어떻게 살 것인가 균형을 잡고 살도록 돕는, 하나님이 쓰시는 유용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준호나 민호와 같이 장애를 입은 이 땅에 모든 사람들은 이땅에 사는 날 동안 중심을 잡도록 해주는 저울 추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차영동목사/한국밀알선교회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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