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일념으로 걸어온 44년 목회, 모든 것이 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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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일념으로 걸어온 44년 목회, 모든 것이 감사입니다”
  • 아산=이인창 기자
  • 승인 2019.04.17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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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에 순종하는 삶, 온양신광교회 이두영 목사
▲ 44년 동안 목양일념으로 목회해온 온양신광교회 이두영 목사는 내년 은퇴를 앞두고 있다. 이 목사는 매일 교회에서 기도하다 목양실에서 잠을 청한다.

기도응답으로 시작된 교회건축, 준비된 부흥
“하나님이 감동을 주시면 그것이 기회입니다”

17년 동안 교회에서 숙식하는 목회자가 있다. 기도하다가 한밤에 문단속을 하고 목양실 맨바닥에 이불을 펴고 잠든다. 집기 때문에 겨우 발을 뻗을 수 있는 공간이다. 새벽이면 누구보다 일찍 예배당 불을 켜고 성도들을 따뜻하게 맞을 준비를 한다. 몇 년 전 허리척추 수술을 한 그에게 이제 쪽잠은 그만 자라고 하지만 온양신광교회 이두영 목사는 “교회에서 먹고 자는 것이 참 편하다”는 말만 거듭했다. 

내년 은퇴를 앞두고 있는 이두영 목사를 지난 9일 만났다. 이두영 목사는 올해로 44년째 목회에 헌신하고 있다. 그는 연륜이 묻어나는 온화함과 여유로움으로 그간의 목회사역을 이야기로 풀어놓았다. 목양실에 걸려 있는 현판 ‘牧羊一念(목양일념)’에 자꾸 눈길이 갔다. 

고난 과정에서 예비시키는 하나님
이두영 목사는 “참 감사한 것이…”라는 표현을 자주 반복했다. 일평생 많은 고생을 했지만 은퇴를 앞두고 뒤를 돌아보니 은혜 아닌 것이 없다. 교인들 때문에 상처 받았지만 교인들 때문에 또 위로받고, 가난한 목회자의 가족으로 힘든 시간을 보낸 자녀들에게 미안하지만 이제는 세 아들 모두 목회자로 성장한 것이 감사하다. 

허름한 상가에서 개척목회를 하면서 좌절하기도 수십 번, 그러나 주님은 믿음으로 교회를 건축하게 하셔서 지금은 아산시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교회로 성장시키셨다. 그에게 감사는 결과가 아니라 고난의 과정에서 만난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다.

한 때 이 목사는 온양역 인근에서 개척 목회를 했다. 우연히 은퇴하는 다른 교단 목회자를 만나 후임으로 와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렇게 두 교회가 합쳐져 20여명이 출석하는 온양신광교회가 출발하게 됐다. 

이두영 목사는 누군가를 도와준 인연으로 땅 100평을 구매했다. 벌판과 같은 시골이었지만 허름한 건물에서 나와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는 믿음 때문에 6개월 작정기도 끝에 교인들에게 예배당 건축을 제안했다. 투기꾼 소리까지 하며 반대하는 교인도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이라는 기도의 확신이 있었다. 서산에서 시골목회를 하는 형님이 대출을 받아주어 겨우 3층 규모의 설계는 할 수 있었지만 건축비용은 암담했다. 

“건축허가를 받고 어느 날 교회 앞에서 측량하는 사람들이 오가는 겁니다. 뭐하느냐고 하니까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겁니다. 입주까지 2년이 걸린다는 말을 들으니까 완공을 위해 마음이 조급해져요. 그런데 다른 아파트 단지들까지 더 세워진 것입니다.”  

그렇게 2년 6개월이 걸려 예배당을 완공했다. 하나님은 이 때를 위해 이두영 목사를 준비시켰던 것이다. 눈물도 많이 흘리고 어려움도 있었다. 외환위기 여파로 한때는 매월 500만원의 적자가 생길 정도로 위기가 있었지만 교회는 부흥했고 7년 만에 헌당을 할 수 있었다. 

또 교회건축? 하나님 뜻이라면
이두영 목사는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어떤 마음을 주시면 내가 감당할 수 없게 마음이 조급해 진다”고 했다. 교회가 차츰 성장해가면서 금방 공간에 대한 수요가 생겼고 다시 기도하면서 건축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교회는 조금씩 주변 땅을 사면서 준비하고 있었지만 또다시 예배당을 신축한다는 것은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이두영 목사 역시 결단이 쉽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온화한 인품과 대조적으로 강력한 추진력이 느껴졌다. 

“교회 건축을 하자고 하니까 깜짝 놀란 장로님들이 식당으로 초대해 건축계획을 듣고 싶다고 해요. 몇 년 만 있다가 재정이 나아지면 하자는 겁니다. 끝까지 내가 총대를 메겠으니 지지해 달라고 설득했고 장로님들이 동의해 주었습니다.” 

적잖은 건축비가 소요됐다. 금융대출을 받느라 동분서주 할 때는 피가 마르는 듯했다. 49억 대출을 받아 건축을 시작해 우여곡절 끝에 2005년 완공, 입당예배를 드렸다. 

“처음 우리가 건축할 때 철근이 1톤당 31만원이었어요. 완공이 다 되어가니까 톤당 110만원, 거의 모든 자재가 폭등했습니다. 아마 몇 년을 기다렸다면 10억원 이상 더 들었을 거예요. 그때부터 장로님들은 담임목사의 결정에 기꺼이 동의하고 지원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성장하는 교회에서도 피해가지 못하는 것이 교회 분쟁일까. 큰 예배당을 짓고 거의 교인 절반이 떠날 정도로 파장이 컸다. 이두영 목사는 “너무나 힘들어서 정말 목회를 그만두려고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3개월도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소문이 났다. 그러나 온양신광교회는 어려움을 이겨냈고 결국 평안해졌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감동을 주시고 그것이 기회입니다. 그 기회를 놓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으면 하나님이 해결하시기 때문에 목회자는 계산하지 말고 염려하지 말고 일을 저질러야 합니다. 저는 누구에게나 가진 것 없어도 믿음으로 도전해보라고 이야기 합니다.”
 

▲ 이두영 목사의 세 아들은 백석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같은 날 목사안수를 받았다.

한날한시 목사안수 받은 세 아들
1974년 군포에서 처음 목회를 시작해 44년이 지나 은퇴를 앞둔 모든 시간이 은혜이다. 은혜 속에서도 부모는 자식에게 늘 미안할 따름이다. 병원에 가져오는 음료수가 먹고 싶어 슈퍼마켓 사장이 되겠다고 소원했던 막내아들이 지금은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다. 

전도사로 사역할 때 허름한 사택에서 연탄가스를 마셔 죽을 뻔했던 돌도 안 된 큰 아들도 목회의 길을 걷고 있다. 특히 큰 아들은 교회 건축을 하면서 동생들 뒷바라지 하겠다며 대학을 포기하고 군대에 먼저 입대하기도 했다. 그런 아들이 내년이면 온양신광교회 후임목사로 청빙돼 목회사역을 승계하게 된다. 

지난해 9월 교회에서는 청빙위원회를 구성했다. 원활한 목회이양을 위해 미리 준비하기로 했고, 서울에서 4년째 부교역자로 시무하던 이요한 목사를 청빙하기로 결의했다. 공동의회를 통과하기까지 이두영 목사가 관여한 사항은 없었다. 목회자 자녀로 성장해온 과정을 지켜봐온 교인들의 선택이었다. 

세 아들이 목회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이두영 목사 부부에게는 큰 자랑 거리다. 어느 날 세 아들이 3개월 동안 교회에서 작정기도를 하더니 아버지가 가신 길을 걷겠다고 했다. 그 다짐 끝에 지난 2014년 세 아들은 백석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한날한시에 같은 교단(예장 백석대신)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지금 둘째 아들은 오산에서 사역하고 있다.

아들들이 백석대 신대원에서 공부한 것은 2009년 이두영 목사가 교단을 당시 구 대신에서 백석으로 옮긴 계기였다. 어렵게 구한 백석대 출신의 부교역자들이 늘 강도사고시만 보면 떠나는 것을 가슴 아파하다 내린 결정이었다. 

“교단을 옮기고 나서 참 편하게 목회를 했습니다. 신학적 노선도 같고 이미 같은 지역에서 자주 교류했던 분들도 많아 적응도 쉬웠습니다. 지금은 교단도 통합해 예전에 함께한 목사님들까지 한가족이 되어서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은퇴 후에는 임대아파트 입주합니다”
이제 은퇴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이두영 목사는 지난 세월을 회상하게 된다. 한마디로 요약해 달라고 했을 때 역시 답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였다. 

서산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14살 나이에 무작정 뱃삯 1,300원을 모아 인천행 배를 탔다. 공장을 전전하며 일해야 했고 밤마다 고향 생각에 베갯잇을 적시면서도 버텨냈다. 인천에서 고등공민학교를 다닐 때 세균감염으로 다리가 절단될 위기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교회 신발장 앞에서 쭈그리고 있다가 주일 새벽 안수기도를 받고 기적처럼 완치됐다. 

공장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공부하고 밤늦게 교회에서 울면서 기도하다 통금을 피해 철길을 따라 집에 갔다. 밥은 거의 굶어가며 신학을 공부했다. 가락국수 한그릇으로 끼니를 떼우면 감사한 날이었다. 결혼을 하고 산부인과에 갈 수 없어 조산소에서 큰 아이를 낳았다. 아이에게 줄 것이 없어 꽁보리밥에 비름나물을 뜯어다 먹였더니 황달이 왔다. 

일흔의 목회자는 지난 삶의 기억들이 영화처럼 스쳐간다. 말하면서도 금세 눈가가 젖어들었다. 그래도 모든 것이 은혜라고 한다. 하지만 목양ㅌ실 잠자리는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며 웃음으로 눈물을 겨우 가린다. 

“서서히 은퇴를 준비하면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설교를 한번 마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교인들이 멀리 가지 말라고 하는데 한 달에 한번 온양신광교회 주일예배에 출석하고 나머지 주일은 작은 아들이 시무하는 교회에서 나가 자리라도 채워줄 생각입니다.” 

이두영 목사는 퇴임 후에는 교인이 추천해 준 임대아파트에 들어갈 계획이다. 임대보증금은 퇴직금으로 채우면 그만이라고 했다. 넉넉하고 소탈한 웃음에서 역경의 세월을 들여다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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