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가르치는 신학은 ‘생명을 살리는 신학’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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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가르치는 신학은 ‘생명을 살리는 신학’이어야 한다
  • 장종현 목사
  • 승인 2019.04.16 15: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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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현 목사의 개혁주의생명신학 7대 실천운동2) 신학회복운동⑤

니고데모는 유대인들의 랍비였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신학교 교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율법에 대해서 잘 알았습니다. 성경도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경을 육적으로만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영적으로 하시는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겐 육적인 눈, 육적인 생각, 육적인 마음만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신학 교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신학 교수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그의 믿음을 통해서 성령의 역사를 경험해야만 강의실에서 이런 영적인 것을 전할 수 있습니다. 신학 교수의 심령이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로 깨어지고 부서져야만, 예수님의 생명이 그에게서 흘러 넘쳐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성령의 담금질에 깨어지고 부서지는 경험이 날마다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육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심령 안에 있는 성령 하나님의 영적인 생명력이 흘러 나갑니다. 교수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은 신학생들의 머리로 들어갑니다.

교수의 인간적인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은 학생들의 인간적인 마음 속으로 들어갑니다. 오로지 교수의 영적인 심령에서 나가는 것들만이 학생들의 영적인 심령으로 들어가 생명의 양식이 됩니다.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교수들이 먼저 영적 생명력을 지닌 영적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신학은 ‘생명을 살리는 신학’이어야 합니다. 신학생들도 신학을 배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 때 성령의 역사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합니다. 신학생들은 성령의 역사를 깊이 의지하면서 신학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통해서 더 풍성한 생명을 얻어야 합니다. 

개혁주의생명신학은 예수님의 생명을 더 풍성히 받아서 그 생명을 죽어가는 세상에 주는 신학입니다. 진리는 살아 있습니다. 진리는 죽은 생명을 살리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영적인 양식을 먹이고, 세상에 예수님의 생명을 전해야 하는 목회자의 사명은 이 세상의 그 어느 일보다 귀하고 영광스럽습니다.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 실천 사례
1) 말씀과 기도에 우선을 두는 신학 수업

신학생들은 신학교 시절을 통해 그 신앙이 자라나야 합니다. 신학을 학문으로만 공부하여 머리만 커져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신학생 시절에 공부를 핑계 삼아 경건생활을 게을리 하면 나중에 전임 목회자가 되어서도 경건생활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게 됩니다. 신학생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은 자신의 본분에 충실한 것입니다. 마땅히 열심히 공부해야 하지만 주객이 전도되어 영적인 삶에 대한 열정은 없이 학문으로 신학공부에 임하게 되면 그 심령의 황폐화를 피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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