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부터 5.16, 격동의 시기…그곳에 ‘새생활운동’이 있었다

지난 6일, 강변교회서 새생활운동 특별 좌담 한현구 기자l승인2019.03.07 12:01:41l수정2019.03.10 22:01l14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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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담배·커피·유흥 반대…도덕적 해이 분위기 속 윤리적 실천 강조

김명혁·김상복·손봉호·이형기 등 서울대 문리대 기독청년 중심

1960년대 6~8월 전국으로 확산…“지금도 한국교회가 목소리 내야”

▲ 1960년대 기독청년들의 주도로 진행됐던 새생활운동의 의미를 되짚는 좌담이 마련됐다. 왼쪽부터 손봉호 교수, 김명혁 목사, 김상복 목사, 이형기 교수.

여태껏 한국교회와 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기독 청년들의 윤리 실천 운동, ‘새생활운동’의 역사가 새롭게 조명됐다. 일상에서의 윤리적 삶을 외치며 맨몸으로 사회와 부딪혔던 새생활운동의 주인공들은 오늘날 한국교회도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치열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도전했다.

1960년 서울대 문리대에서 새생활운동을 일으켰던 주인공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원로) 김상복 목사(할렐루야교회 원로) 손봉호 교수(전 서울대) 이형기 교수(전 장신대)는 지난 6일 강변교회에서 좌담을 열고 새생활운동의 의미를 되짚는 시간을 가졌다.

새생활운동은 1960년 4.19혁명의 여파로 시작됐다. 당시 시민들의 4.19혁명으로 이승만 독재정권이 물러나면서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 같은 기대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정권을 잡은 정치인들이 바뀌었을 뿐 사회는 여전히 혼란했다. 정치인들의 도덕적 부패는 달라지지 않았고 시민들은 밀수한 양담배와 커피, 불륜과 유흥 등 도덕적 해이에 젖어 있었다.

문제의식을 느낀 것은 기독청년들이었다. 당시 서울대 문리대에 재학 중이던 김명혁, 김상복, 손봉호, 이형기 등 10여 명은 사상의 혁명도 중요하지만 생활의 혁명이 뒷받침 돼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즉각 행동에 나섰다.

손봉호 교수가 커피와 양담배의 연간 밀수액 규모가 대전시 인구의 1년치 식량값과 맞먹는다는 사실을 발표하자 의식 있는 학생들이 함께 분노해 일어났다. 학생들은 거리로, 다방으로, 요정으로 몰려다니며 양담배와 커피를 소비하지 말자고 외쳤다. 댄스홀로 들어가 댄스 반대 시위를 하고 관용차를 사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것에 항의했다.

김명혁 목사는 당시를 떠올리면서 “그때 우리는 플래카드 한 장 만들 돈도 없었다. 동대문 시장으로 나가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호소했더니 시민들이 돈을 보태주기도 하고 양담배와 커피를 꺼내는 등 지지를 보내줬다. 산더미처럼 모은 양담배를 어깨에 메고 광화문 길 한복판에 가서 애국가를 부른 뒤 모두 불태워버리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기독청년들의 의분에서 시작된 새생활운동은 6월부터 8월 초까지 약 세 달간 지속됐다. 3.1운동 당시 일제가 학교를 폐교하자 학생들이 독립선언서를 고향에 들고 가 전국에 확산시켰던 것처럼, 서울대에 다니던 지방 출신 학생들은 방학 기간 고향으로 돌아가 전국 각지에서 새생활운동을 펼쳤다. 전국 대학교뿐 아니라 고등학교, 중학교에서 까지 새생활운동이 벌어졌다.

김상복 목사는 “우리가 설문조사를 할 순 없는 노릇이니 직접 거리의 재떨이를 뒤져가며 조사했다. 조사 결과 새생활운동을 시작한 후 양담배가 크게 줄고 국산담배로 바뀐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국방부에서는 군용차량을 더 이상 민간용으로 사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고 새생활운동의 영향을 설명했다.

비록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순수하게 윤리의 회복을 부르짖었던 청년들의 호소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형기 교수는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학생운동들은 많이 있었다. 하지만 순수하게 일상의 개선을 절규하는 학생운동은 그 전까지 유래가 없었다”면서 “기독청년들로부터 시작됐지만 보편적 가치를 외쳤던 새생활운동은 수많은 비기독교인들의 양심을 건드렸고 함께 참여하게 했다”고 말했다.

기독교 윤리의 관점에서 새생활운동을 조명한 이 교수는 “기독교인의 윤리는 개인적 성화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신칭의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 땅에서 행동하며 하나님 나라를 꿈꿔야 한다”면서 “그런 면에서 새생활운동은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정의를 회복하기 위한 기독청년들의 몸부림이었다.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동시에 공적인 사회 정의와도 맞닿아 있었다”고 평가했다.

손봉호 교수는 새생활운동이 우리 사회의 성숙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시민사회의 역할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권력을 가진 정부나 기업을 감시하는 것, 둘째는 정부가 해야 할 공적인 일을 자발적으로 대행하는 것”이라며 “첫 번째 역할을 한 것이 4.19혁명이었다면 두 번째 역할을 한 것이 새생활운동이었다. 이 둘은 우리나라의 시민사회와 민주주의의 발전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고 전했다.

손 교수는 지금도 이 시대에 걸 맞는 새생활운동이 한국교회에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역사적으로 한국 기독교는 독립부터 민주화까지 한국 사회에 상당한 공헌을 했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교회는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사회의 문제는 점점 많아지는데 교회의 성장에만 몰두하고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성경보다 정치사상에 매몰돼 이데올로기가 우상이 돼 버렸다”고 비판했다.

이어 “새생활운동은 사회 변화를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운동을 일으켰던 우리 자신의 성장에 훨씬 큰 영향을 줬다”면서 “한국사회의 부정직, 생태환경과 사회정의 문제 등 한국교회가 목소리를 내야 할 분야가 지금도 산재해있다. 성경이 말하는 정의와 윤리의 회복을 위해 크리스천들이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현구 기자  hhg@igood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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