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예수님은 의자를 엎으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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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예수님은 의자를 엎으셨을까?
  • 노경실 작가
  • 승인 2019.02.20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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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실 작가의 영성 노트 “하나님, 오늘은 이겼습니다!”-76
▲ 야코포 바사노의 , 1585년, 마드리드 프라도 국립미술관 소장.

마가복음 11;15>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며

지하철에는 여전히 구걸하는 사람들과 물건 파는 사람들(사람들은 이들을 잡상인이라고 부른다)이 바쁘게 움직인다. 잡상인이나 구걸하는 사람들이나 거의 남자다. 여자는 내 평생 단 두 번 본 적이 있을 뿐이다. 그동안 나는 지하철 안에서 물건을 산 적은 없지만 껌을 팔거나 구슬프게 신세한탄을 하며 호소하는 사람들에게는 나름대로 꾸준히(?) 천원짜리를 주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이런 말들이 돌았다. ‘적선하면 안 된다. 그 돈을 가져가는 나쁜 인간들이 있다. 또, 자꾸 돈을 주면 더 게을러지고, 더 의존한다. 그 사람들을 진정 돕는 길은 물건을 사주지도 않고, 적선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말을 듣거나 이렇게 생각해 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 역시 불타는 정의감(?)에 그들을 못 본 척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1월 말 쯤이었다. 조용한 지하철 안에 거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허, 허리 쌕이 이, 있습니다….” 허름한 중년 남자는 태어날 때부터인지, 아니면 후천적으로 생긴 증상인지 심하게 말을 더듬었다. 게다가 그가 파는 허리에 매는 작은 가방은 너무 볼품없었다.

나는 지하철 안을 살폈다. 대략 40여 명 정도 되는 전동차 한 칸. 사람들은 정말 모두들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무도 남자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몇 사람이 그 남자와 허리 가방을 봤지만 심하게 더듬거리는 말소리에 물건에 대한 신뢰도는 물론 그 남자에 대한 자비의 마음마저 사라졌는지 고개를 돌렸다.  

점점 내 마음이 괴로워졌다. ‘가난한 저 남자가 말까지 더듬거리니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멸시와 조롱을 당하고 살까? 그래도 살아보려고 물건 행상을 나왔는데, 지하철 곳곳에는 물건을 팔아주지 않아야 잡상인들도 사라진다는 전단지가 붙어 있고, 지하철 수비대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수시로 내쫓는다. 게다가 요즘 사람들은 스마트폰에 거의 미쳐있기에 남의 말, 그것도 힘든 사람들의 말에는 일부러라도 둔감해지는 세상이다. 이뿐인가. 신용카드나 체크카드 시대라 현금을 지니고 다니는 사람도 드물다. 그렇다면 저 남자는 어떻게 이 고난을 통과할까?’

결국 나는 고민만 한 채 그 남자를 바라보기만 했고, 그는 하나도 팔지 못한 채 다음 칸으로 갔다. 

그 날 저녁, 나는 말씀을 읽다가 그동안 너무도 평범하게 읽었던 한 구절에 마음이 사로잡혔다. 예수님께서 강도의 소굴로 변한 성전을 그야말로 대청소를 하신 장면이다. 내 마음이 요동을 친 것은 이 부분이었다.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며’

-매매하는 자들을 성전 밖으로 내쫓으셨다

-돈 바꾸는 자들의 탁자를 둘러 엎으셨다.

그리고 

-비둘기를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셨다.

“와!”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돈이 수북히 쌓여 있는 탁자를 엎으셔서 성전 바닥 여기저기에 동전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쫘악 훑어졌을 것이다. 쫓겨나는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며 넘어지고, 서로 부딪히며 성전 밖으로 내달렸을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당연히 비둘기들이 들어있는 새장들을 엎으셔서 비둘기가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대혼란이 일어나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엎으신 것이다. 덕분에 다친 비둘기는 한 마리도 없고, 성전 안은 비둘기들의 깃털이나 똥으로 더럽혀지지 않았다. 나는 특히 비둘기들을 다치지 않게 그 와중에도 신경쓰신 예수님의 자상하심과 사랑에 놀랐다.

그런데 이 순간에 갑자기 지하철에서 본 ‘말더듬는 잡상인, 남자’가 생각났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습관을 당장 만들었다. 꺼내기 쉬운 주머니에 천원자리 몇 장은 꼭 넣고 외출하기! 그래서 구걸을 하는 사람이든, 물건을 파는 사람이든 아무 것도 생각지 않고 내 마음을 지폐에 담아 전할 것! 예수님께서 비둘기 우리가 아닌 사람의 의자를 엎으신 그 마음처럼! 잡상인들의 물건을 사지 않으면 잡상인들이 사라진다고? 그럼 구걸하는 자들을 완전히 외면하면 이 나라에 걸인들이 다 사라진다는 것인가? 논리가 아닌 예수님의 마음으로 집을 나서고 싶다. 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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