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깟 드라마라고 하면서 실상은 사랑하는 사람들

노경실 작가l승인2019.01.07 23:27:11l14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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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3:1-2>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그 분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분명 화를 낼 것이다. 그리고 온갖 변명과 설명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이글은 그 분들만을 콕 집어서 쓰는 것은 아니다. 하필 그 분들을 만난 자리에서 벌어진 일이기에 쓰는 것뿐이다. 내가 통탄하는 상황 속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기에 나는 이 글을 쓸 수밖에 없다.

지난 주, 지인들의 점심식사 자리에 사모님 한 분, 여 목사님 한분도 동석하게 되었다. 나까지 여성들만 5명이 있는 자리였다. 대부분 처음 보는 자리여서 어색함이 있었는지 여 목사님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그런데 그 첫 대화의 시작이 드라마였다.

순간, 그 식사자리가 환해졌다! 난 정말 놀라고, 놀랐다. 내가 텔레비전을 없앤 사람이라서 그런 게 아니었다. 여 목사가 드라마를 말하는 순간, 사모도 다른 여성들도 마치 십년지기 친구들처럼 유창(?) 하고 화기애애하며, 심지어는 앞다투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에 화까지 났다. 그러나 첫 자리인데 어찌 화를 낼 수 있으랴. 나는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4명의 여성들은 사모나, 목사, 평신도라는 직위(?)에 관계없이 너무도 아름다운(?) 대화를 이어나갔다. 웃고, 박수를 치고, 고개를 흔들고, 무언가 확인하려는 듯 스마트폰을 열고, 다시 웃고, 새로운 정보를 찾은 양 말해주고….

이 모습은 마치 초등학교 앞의 커피집에서 학부모들이 모여 이야기를 하는 모습과 너무도 같았다. 그들은 테이블마다 앉아서 처음에는 교육 이야기를 하다 자연스레 드라마 이야기로 넘어간다. 그러면서 웃고, 손뼉을 치고, 심지어는 등장 인물들이 입고 나온 옷이나 신발, 가방, 시계 등의 이야기로 자녀들이 수업을 마치는 줄도 모를 정도이다. 예전에 ‘태양의 후예’라는 드라마가 열풍을 몰고 온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학부모 대상의 한 강연장에서 몇 가지 질문을 했다. 

-그 드라마의 주제가 무언가요?
-송중기요!
-그 드라마의 스토리를 말해주세요.
-송중기랑 송혜교랑 사랑하는 이야기요!
-그 드라마를 통해서 깨달은 건 무언가요?
-송중기요!

물론 어머니들의 장난 가득한 대답이지만, 마음이 착잡했었다.

그런데! 그래도! 한 사람은 사모이고, 한 사람은 여 목사가 있는 자리에서도 똑같은 그림이 펼쳐지다니. 목회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이 지경인데 평신도들은 오죽하랴, 라는 절망감이 들었다. 물론 요즈음은 평신도가 더 목숨 건 신앙생활을 한다는 뼈 있는 농담을 하기는 한다. 그래도 그 나라의 도덕 수준은 그 지도자의 도덕 수준이 말해주고, 그 나라의 신앙 척도는 지도자들의 영성 수준이라고 하지 않는가. 

나에게 이렇게 항의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깟 드라마 이야기하며 즐겁게 이야기하는 게 뭐 그렇게 죄가 됩니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스스로 자기의 말에 걸려 넘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깟 드라마’라고 했으니 말이다. 그렇다. 그깟 드라마에 생명같은 시간을 낭비하고, 그깟 드라마 때문에 말씀과 기도의 시간을 잡아먹히고, 그깟 드라마로 세상사람과 무엇 하나 다를 바 없는 일상을 이어나가지 않는가.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신다.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는데 그 첫 증거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 말하자면 수 만 가지 예를 들 수 있지만 그 중 하나가 드라마에 몰입하는 눈과 마음이다. 요즘의 드라마는 거의 모두가 현대인의 충족되지 못한 욕망을 대신 풀어주고, 채워주며, 심지어는 이루어줄 수 있다는 헛된 희망마저 품게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구질구질한 일상이나 웬수같은 상대방을 벗어날 수 없고, 죽어도 신분이 상승되거나 재벌이나 모델같은 배우자를 만날 수 없다는 것도 알기에 드라마를 통해 분풀이를 하며, 대리 만족을 하고, 이른바 영적 간음을 하는 것이다. 

더구나 말세에 이른 징조 중 하나가 ‘거룩하지 않음’이다. 드라마는 거룩의 자리에 가려는 두 다리를 꺾어 놓는다. 거룩해지려고 몸부림치듯 애쓰는 마음을 다 헤집어 놓는다. 

요즈음 드라마를 이야기하며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들이 너무도 많다. 마치 말씀이 드라마를 해석하는 자습서같게 만드는 죄인지도 모르는 것 같다. ‘그깟 드라마’라고 폄하하지만, 실상은 ‘오, 내 사랑하는 드라마’라고 이중생활을 하는 목회현장의 사람들에게 감히 전한다.  

노경실 작가  igoodnews@igood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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