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떠남, 그 뒤에 새로운 희망의 씨앗이 싹을 틔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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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떠남, 그 뒤에 새로운 희망의 씨앗이 싹을 틔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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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2.26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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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인물로 보는 2018년

누군가에게는 행복한 시간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행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사실 하나님의 예정에 있다면 그 또한 인내해야 하지 않을까? 올해 한국교회 주요 인물들은 수난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한국교회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며 한 시대 부흥을 이끈 빌리 그레이엄과 영성의 진수를 보여준 유진 피터슨은 하나님 곁으로 떠났다. 신앙과 목회의 롤모델을 찾기 어려운 때, 대형교회 목회자들은 뭇매를 맞았고 성도들은 지도자를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마지막 때를 알고 박수를 받으며 떠나는 이들도 있었다. 자신의 꿈을 향해, 타인의 꿈을 이루기 위해 믿음 안에서 결단하는 이들이 있어 올 한 해도 아름다웠다. <편집자 주>

 

숱한 ‘믿음의 유산’ 남긴 빌리 그레이엄

세계 최고 부흥사로 20세기 기독교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인물로 평가받는 복음주의전도자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지난 2월 9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그레이엄 목사는 1918년에 태어나 휘튼 대학을 졸업하고 1939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49년 L.A.전도대회 때 군중들에게 큰 호응을 받은 후 1950년에는 빌리 그레이엄 복음전도협회를 창설, 대형 전도 집회를 열기 시작했다. 이후 세계적인 부흥목사로 자리매김해 신문·방송 등 매스컴과 해외 집회 사역을 이끌어나갔다. 지난 60여 년간 그를 통해 복음을 접한 사람은 185개국에서 총 2억 10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레이엄 목사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12월 한국을 방문한 그는 미군을 위로하고 부산에서 집회를 가졌다. 1973년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빌리 그레이엄 전도대회’에는 무려 110만여 명이 모여들어 그의 사역에서 가장 많은 군중이 모인 집회로 기록된 바 있다. 그레이엄 목사가 남긴 ‘복음주의’의 유산은 오늘날 기독교가 사회로부터 지탄받는 시대, 한국 목회자들과 성도들에게도 귀중한 가르침을 준다. 무엇보다 가정적이고 오직 복음과 성경에 헌신하는 그의 모습은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어서 귀감이 된다.

‘목회자의 목회자’ 유진 피터슨

세계적인 영성 신학자 유진 피터슨 목사는 지난 10월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폐렴 증세로 병원에 입원한 지 1주일 만이다.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순간, 그의 임종을 지켜본 유가족은 “평생 교회를 신실하게 섬겨온 목사님이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 영원한 안식을 얻었다”며 “마지막 순간 ‘렛츠 고(Let’s go)’라고 말하던 그의 얼굴엔 기쁨이 넘쳤고 몇 차례 웃음을 보였으며 축복을 남겼다”고 전했다.
피터슨 목사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교계에 남긴 믿음의 유산은 많다. 우선 그는 ‘목회자의 목회자’라 불리며 존경 받았고 생전 30여 권의 책을 펴내며 활발한 저술활동을 펼쳤다. 특히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쓰인 성경을 현대 영어로 번역해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한 ‘메시지 성경’의 저자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지난해 7월 동성혼에 대한 우호적인 입장을 밝혔다가 곤혹을 치르기도 했지만, 여전히 한국에서는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일상, 부활을 살다’, ‘목회자의 영성’ 등 수많은 책이 번역돼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목회 과정에서 교회성장과 성공을 추구하는 것을 경계하고, 목회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지 이용하는 게 아니라고 강조한 피터슨 목사의 가르침은 우리나라 성도들에게도 길이 남았다. 

법원이 벼랑 끝으로 내몬 오정현 목사 

2018년은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에겐 수난의 해나 다름 없었다. 짧게는 8개월, 길게는 4년째 교회를 둘러싼 온갖 소송에 시달리며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연초에는 고법에서 참나리길 도로점용이 불법이라는 판결이 났고, 연말인 지난 5일에는 대법 파기환송으로 새 국면을 맞은 오정현 목사의 위임목사 자격이 사실상 무효로 결정나면서 사랑의교회는 임시당회장 체제로 변화됐다. 재판부는 오정현 목사가 예장 합동 교단신학교인 총신대학교에서 적합한 편목과정을 마무리 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했다. 편목편입이 아닌 일반편입을 했기에 목사고시를 다시 봤어야 한다는 것이다. 법원은 위임목사 무효와 함께 당회장과 담임목사도 맡을 수 없다고 결정했으나 교회와 해당노회인 동서울노회는 판결에 반발하며 대법에 재상고했다. 
법원의 판결을 바라보는 한국교회의 시선도 곱지 않다. 목사 위임은 노회의 전권이고, 교회 공동체가 청빙하고 노회가 위임한 목사의 자격에 대해 법원이 판결하는 자체가 종교의 자율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오정현 목사는 “저도 약해질 때가 있었다. 그러나 추스리면서 더 주님을 사랑했고, 이 일이 주님이 주신 고난의 길이라면 감사로 순종하겠다”고 말했다. 

총신 15년, 불명예 퇴진한 김영우 총장

총신대학교 총장 김영우 목사가 올해 15년간 인연을 맺어온 학교에서 불명예스럽게 물러나고 말았다. 총신대는 상위기관이라 할 수 있는 예장 합동총회와 오랫동안 갈등을 겪어왔다. 최근 수 년 사이 학교 내홍으로까지 번졌고, 그 사태 한복판에 김영우 총장은 늘 자리하고 있었다. 
특히 올 상반기 총신대에 용역까지 등장해 학생들과 충돌하는 사태까지 빚어져 큰 논란이 일었다. 곧이어 교육부는 지난 3월 특별감사를 실시해 관련 혐의자에 대한 징계를 법인이사회에 요구했다. 하지만 법인이사회가 이를 거부하자 교육부는 임시이사를 파견했고 정기총회 직후 9월말 임시이사 체제로 전환된 가운데 김 총장은 결국 파면됐다. 
총신대 출신의 김영우 목사는 약 15년 전 법인이사로 들어와 총신대와 인연을 맺었으며, 법인이사장을 거쳐 지난 2015년 제6대 총장으로 취임해 최대 실권자로 역할을 했다. 교단 정치에서 한 축을 감당한 데 이어 학교 권력까지 거머쥐었지만, 끝내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 11월 말에는 총동창회마저 학교 명예실추를 이유로 김 목사를 제명했다.  
한편, 김영우 목사는 금품제공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으며, 현재는 항소해 고등법원에 계류 중이다.

정지-복귀, 천국과 지옥 오간 전명구 목사 

기독교대한감리회 전명구 감독회장은 올해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지난 4월 감독회장 직무가 정지되면서 벼랑 끝까지 몰렸다가 지난 10월 극적으로 복귀했기 때문. 직무 정지된 6개월 동안 감리교는 혼란의 연속이었다. 직무대행으로 선출된 이철 목사가 지나친 권한을 행사하면서 소송을 복잡하게 꼬아버렸으며, 이로 인해 재판부는 직무대행체제가 교단 내부 분쟁을 확대시켰다고 판단했다. 
전명구 감독회장은 “감리회의 문제가 세상 법정으로 나가 논란이 된 참담한 상황이 벌어진데 대해, 감리회를 책임지는 감독회장으로서 도의적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지만, 교단 내부의 송사는 끊이지 않고 있다. 
전명구 감독회장 직무정지는 감독회장 선거무효 소송 1심 판결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러나 소송 당사자인 성모 목사가 소를 취하하면서 상황이 전 목사의 복귀 가능성이 높아졌다. 전명구 감독회장은 성모 목사와 합의한 바에 따라 감리교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새로운 인물을 발굴하여 쇄신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전명구 감독회장을 둘러싼 형사고발과 감독회장 당선무효와 선거무효 소송이 살아 있어 내년에도 전명구 감독회장은 불안 속에서 보내게 될 전망이다. 

“나를 철저히 버려달라” 외친 이재철 목사

100주년기념교회 이재철 목사는 지난 11월 18일 주일 설교를 마지막으로 교회를 떠나 경상남도 거창으로 낙향했다. 이 목사는 “저의 떠남은 여러분이 저를 버림으로써 완결된다”며 “이재철을 철저하게 버리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근로기준법에 의해 정해진 퇴직금 외에 별도의 전별금도 없었다. 교회는 이 목사가 명예롭게 퇴진할 수 있도록 ‘소박한 거처’ 마련과 ‘최소한의 생활비’ 제공하기로 했지만 이재철 목사는 이마저 정중하게 거절했다.
이 목사는 목회 시작부터 은퇴할 때까지 무주택과 본인 명의의 무예금 통장을 실천해 왔다. 그는 “돈을 모으지 않은 부부의 형편을 고려해 전국의 평당 10만원의 땅을 찾다가 거창군의 한 마을에 정착하기로 했다”며, “그 마을에 사는 여든 명의 주민들과 빚을 갚는 마음으로 살겠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전했다. 이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교계를 비롯한 일반 언론에서는 이 목사의 은퇴를 ‘아름다운 퇴장’으로 칭하며 미담 기사를 쏟아냈다. 관점에 따라서는 지극히 ‘정상적’일 수 있는 한 목회자의 은퇴였지만 그간 한국의 대형교회 목회자 가운데 이정도의 ‘내려놓음’의 사례조차 찾기 어려웠다는 점을 감안하면 감히 칭찬 받아 마땅하다고 할 만하다. 이 목사를 시작으로 많은 목회자들이 아름다운 퇴장을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케냐 선교의 꿈 향해 떠나는 진재혁 목사

지난 9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형교회 중 한 곳인 지구촌교회에서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 2011년부터 이동원 목사의 뒤를 이어 2대 담임으로 목회했던 진재혁 목사가 담임목사직을 내려놓고 케냐 선교사로 떠난다는 소식이었다. 진 목사는 지난 9월 16일 주일예배 설교와 정기 제직회를 통해 담임목사 사임 의사를 밝혔다. 그는 “지난 8년 동안 너무 행복하고 감사한 축복의 시간들을 가졌다”면서 “이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 아프리카 케냐의 어두운 영혼을 향해 믿음의 길을 떠나려 한다”고 말했다. 
대형교회 담임목사들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요즘 진재혁 목사의 독특한 행보는 교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 역시 진 목사의 쉽지 않은 결정에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한편으론 전임 이동원 원로목사의 무게가 진 목사의 사임에 결정적이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교회를 개척한 이동원 목사가 일선에서 물러난 후에도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해 진 목사가 뜻대로 목회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란 분석이다. 오지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대형교회 담임목사직을 내려놓는 아름다운 사례임은 분명하지만 한국교회 내에서 전임 목회자의 입김이 지나치게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한 대목이다. 

베트남 영웅 ‘믿음의 사람’ 박항서 감독

지난해 10월부터 베트남 축구대표팀을 이끈 박항서 감독은 올해 1월 AFC U-23 대회에서 베트남 축구 역사상 준우승을 차지한데 이어 아시안게임 4강의 성과로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이후 동남아시아 축구대회인 스즈키컵에서 베트남 축구 역사상 두 번째로 우승을 차지하면서 베트남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베트남 국민들은 선수들을 격려하며 부드럽게 지도하는 박 감독의 ‘파파 리더십’에 열광하고 있다. 게다가 스즈키컵 우승 축하금을 ‘베트남 축구 발전과 빈곤층을 위해 써달라’며 기부하는 등 미담 또한 끊이지 않고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박항서 감독은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알려졌다. 스즈키컵 우승 후 벤치에서 고개를 숙이고 감사기도를 드리는 박 감독의 모습은 공산국가인 베트남 TV에도 그대로 전송됐다. 
박항서 감독은 기도의 사람이다. 경남FC 감독 시절 홈 경기가 있을 땐 교회에서 통성으로 기도한 뒤 경기에 임했고 원정경기 땐 교인들에게 문자를 돌려 기도를 요청했다. 베트남 행을 결정한 것 역시 부부가 함께 기도한 결과라고 밝히기도 했다. 늘 겸손한 자세로 “초심을 잃지 말게 해달라고 기도한다”는 그의 2019년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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