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번의 기도, 삼천 번의 욕심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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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번의 기도, 삼천 번의 욕심주문
  • 노경실 작가
  • 승인 2018.12.26 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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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실 작가의 영성 노트 “하나님, 오늘은 이겼습니다!”
▲ The Man of Sorrows, 윌리엄 다이스(William Dyce), 1860년.

마태복음 7:20-21>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몇 년 전 부터인지 모르겠는데 해마다 여름과 겨울이 되면 앓는 병(?)이 생겼다. 여름에는 더위를 먹어서 고생, 겨울이면 온 몸에 ‘한기’가 들어서 고생. 그런데 더위 먹을 땐 얼른 병원에 가거나 약을 사 먹으면 2~3일 만에 회복이 된다. 하지만 몸에 한기가 드는 것은 무슨 방법을 써도 해결이 안 된다. 마치 겨울왕국의 한 장면처럼 심장까지 얼어붙는 듯한 한기를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나의 고통을 모를 것이다. 올 겨울에도 나는 이 지독한 ‘겨울병’을 겪느라 일을 제대로 못할 지경이다. 그저 덜덜 떨리고, 심장이 얼어붙는 것 마냥 추워지니 말이다. 

이러다보니 정말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일도 생긴다. 지난 주 목요일이었다. 내 생일 겸 지인들과 간단한 저녁식사자리가 합정동에서 있었다. 그날은 한 낮 기온이 10도였지만 나는 식당에서조차 추위에 덜덜 떨다, 병든 닭처럼 졸다가 하다가 결국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일산행 버스를 탔다. 빈자리가 몇 개 보였는데 마침 좌석 아래에서 히터가 나오는 앞에서 3번째 통로 자리가 비어 있는 게 아닌가?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속으로 탄성을 지르며 앉았다. 앉자마자 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뜨거운 기운에 좀 살 것 같았다. 완전히 병든 닭, 그 자태로 앉아 눈을 감았다. 어느새 버스는 만원이 되었다. 신나게 자유로를 달린 버스가 행주산성 입구 정류장으로 들어서면서부터 사람들이 하나 둘 내리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하나님! 제 옆자리 여자도 얼른 내려서 제가 좀더 뜨거운 히터 앞에 앉게 해주세요! 너무 추워요... 하나님!’ 남들이 보면 정신이 이상하다할 정도로 작은 문제도 기도하는 습관이 생긴 나로서는 당연한 기도를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갑자기 온 몸을 웅크리고 있는 내 마음이 심하게 흔들리는 듯 했다. ‘왜 내가 그 기도를 들어줘야 하지? 넌 지금 그 앉아 있는 자리에 대해 왜 진정으로 감사를 못 하는 거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전혀 욕심없어 보이는 기도같았는데, 그저 내가 몸이 안 좋아서 드린 기도인데... 하나님은 내 중심을 사정없이 드러내 보이셨다. 그렇다. 복잡한 저녁 버스에서 하필 히터가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셨는데 왜 나는 진정으로 감사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내 옆자리 여성의 영혼에 대해 단 일초도 기도하지 않은 내가 그 여자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빨리 내려서 내가 그 자리에 앉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정말 기도일까? 나는 즉시 회개했다. 나의 이기심, 유치함, 졸렬함.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여성은 내가 백석동에서 내릴 때까지 마음 푹 놓고 쿨쿨 자고 있었다. 아마 거의 종점까지 가는 듯 보였다. 마치 한 편의 개그같았다. 나는 놀부, 욕심내다가 망신만 당한...

우리는 자신 스스로에게 속는 줄도 모르고 이런 식의기도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니, 어쩌면 평생 이렇게 기도하면서도 자신이 기도의 사람이요, 하나님과 소통하며, 늘 기도 제단에 눈물 뿌리는 자라고 여기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면 예수님은 이런 자들에게 ‘열매없는 자라며’ ‘난 도무지 너를 모른다!’고 온 몸이 떨릴 정도로 냉정하게 호통치신다. 그 기도가 버스 자리 하나를 차지하고픈 소박하기 그지없는 것부터 세계평화를 위한 것까지, 내용물의 ‘크고 작음’은 아무 상관없다. 기도하는 그 동기의 ‘바르고 그르고’의 문제이다.

-내 아이 OO대학 떨어지면 저는 죽습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완전히 죽는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죽어라, 그리고 네 안에서 내가 좀 살자, 하실 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꼭 승진시켜주십시오. 그래야 믿는 자로서 본이 됩니다. (예수님은 일단 당신이 그 자리에서 본이 되기를 강력하게 원하신다.) 

-저 인간 때문에 죽겠어요. 저를 자꾸 나쁜 사람으로 만듭니다.(하나님은 당신이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그 인간을 통해 철저하게 드러내실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일천번제를 드리며 그 안에 삼천 번, 아니 삼백만 번의 자기 욕망을 그득 담는다. 마치 식당에서 자기의 필요에 따라 수시로 벨을 누르며 주문을 하는 모습이다. 새해부터는 하나님께서 천사들과 이야기하다가도 “어? 쟤가 기도하네!” 라며 모든 것 제쳐두고 고개를 돌리시는 그런 기도의 일상에 도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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