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과 탁월성을 위한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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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과 탁월성을 위한 교육
  • 유재봉 교수
  • 승인 2018.12.26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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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봉 교수/성균관대학교

한국을 비롯한 현대사회는 ‘피로사회’라 불릴 만큼, 누구 할 것 없이 지나친 노동과 일로 고통당하고 있으며, 나아가 인간됨을 상실하고 있다. 피로사회의 근본적인 원인은 신자유주의 경쟁을 통한 성과주의 때문이며, 그것이 학교에서는 탁월성을 위한 교육의 왜곡된 형태인 성적 지상주의로 나타난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나라 학생들은 입시경쟁 교육 때문에 하루 종일 학교공부에 매달리는 것도 모자라 사교육 기관을 전전함으로써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 더욱 불행한 것은 그렇게 잠을 설쳐가며 공부하지만 올바른 의미의 지적 탁월성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쉼과 탁월성을 동시에 추구할 수 없을까?  

현행 우리나라의 학교교육은 지적 탁월성을 추구하는 듯 보이나 이중적인 면에서 한계가 있다. 즉, 학교교육이 직관적 지성(intellectus)을 간과하고 추론적 지성(ratio)에만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고, 추론적 지성마저도 본질보다는 외양만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 한국의 학생들은 쉬지도 못하면서 엄밀한 의미에서 탁월성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양립 불가능한 듯 보이는 ‘쉼 혹은 여가를 위한 교육’과 ‘탁월성을 위한 교육’은 여가와 탁월성의 본래 의미를 회복함으로써 양립가능하며 또한 동시에 추구될 수 있다. 

‘쉼 혹은 여가를 위한 교육’을 회복한다고 할 때, ‘쉼 혹은 여가’는 단순히 육체적인 휴식이나 정신적인 게으름이라기보다는 희랍의 여가(schole)나 성경의 안식(sabbat)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것은 영혼의 상태이면서 마음의 태도이다. 여가는 관조, 즉 총체적 세계가 한눈에 훤히 드러나는 상태이다. 교육에서 추구하는 인간의 탁월성은 ‘지적 탁월성’(intellectual virtue)과 ‘도덕적 탁월성’(moral virtue)을 포함하며, 지적 탁월성에는 추론적 지성과 직관적 지성 두 가지 요소가 들어있다. 직관적 지성은 관조와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     

여가의 원형은 안식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안식의 기원은 하나님이 만물의 창조를 하고 안식을 취한데서 비롯된다. 안식은 창조의 완성으로서,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이 창조한 총체적 세계를 생각하며 즐기는 축제이다. 

그러므로 안식은 단순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는 것이라 기보다는 천지를 (재)창조한 하나님을 인식하면서 그가 (재)창조한 총체적 세계를 관조하고 향유함으로써 새로워지고 충만해지는 시간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현대인은 여가와 안식을 누리지 못하며, 크리스천 부모와 자녀도 여가를 누리지 못하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직장과 학교에서 바쁜 일상 가운데서도 모든 활동에는 안식이 들어있다는 것을 늘 인식하면서 이를 즐기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러한 자세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고 하면서 우리를 안식으로 요청하고 있다. 이러한 요청을 받고 안식을 누릴 때 하나님과 총체적 세계 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누구나 여가와 안식을 누리고 싶지만 실제로는 그러지 못한 상황에서, 여가와 안식을 누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면서 은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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