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에 생각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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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에 생각할 일
  • 승인 2004.04.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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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 있어 무엇보다 소중한 날은 예수님의 고난절일 것이다. 이 날이 없었더라면 기독교는 아무 의미도 없는 종교로 전락했을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죽으시기까지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예수님의 ‘상하신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마지막 만찬을 나누실 때의 예수님의 얼굴은 몹시 상하신 얼굴이었을 것이다. 그 자리에서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교훈을 주셨고 성찬을 나누신 후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다. 예수님은 그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만찬을 베풀고 성만찬을 가지며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고 말씀하신다. 나머지 제자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기에 서로 “내니이까” 하고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나는 아니지요” 라고 물었다. 그 모습을 보시는 예수님의 얼굴을 상상해 보라.

겟세마네 산에서의 얼굴은 더 상한 얼굴이었다. 너무 괴로워 제자들에게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나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부탁하셨다. 그리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기도하셨다. 그때 ‘땀이 땅에 떨어지는데 핏방울 같았다’고 했다. 이쯤되면 그 얼굴이 얼마나 상했는지 짐작이 간다.

빌라도 앞에 서 계신 얼굴도 상하신 얼굴이다.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인 인간 앞에 심판받기 위해서 서 있는 것이다. 모욕의 극치다. 사람들이 침을 뱉고 뺨을 때리고 죄수복을 입혔다. 그때 그 상하신 얼굴을 생각하라.

마침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올라가신다. 뒤를 따르며 눈물 흘리는 무리들에게 예수님은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와 너희 자녀들을 위해서 울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그 순간에도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것 보다 더 큰 고통이 우리에게 임하게 될 것을 예고하신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신다.

예수께서 활동하신 공생애 3년 간의 기간은 이 세상에 따뜻함을 선사한 삶이었다. 정감 넘치고 온유한 모습을 유감없이 발휘한 생애였다. 3년 동안 전국을 두루 다니며 무지한 백성들을 가르치셨고 각종 병자들과 약한 자들을 고치셨다. 또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예수님은 그 백성들이 지금 기진하고 지쳐있는 것을 보셨다.

사람은 세상을 혼자 살아가지 못한다. 서로 도우며 살아가야 한다. 이렇게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서 발휘되는 정신이 중보의 삶이다. 예수님은 3년의 공생애 기간 동안 매일같이 고치고 위로하시고 먹이시고 격려하는 삶을 사셨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가슴속에 이런 심장이 있어야 한다. 인류애와 동포애, 영혼을 사랑하는 뜨거운 가슴을 지녀야 한다. 그러면 사사로운 증오심이나 편견, 이해관계나 이웃과 불화하는 요소들, 탐욕, 이기심들이 모두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가 처한 형편이 그 당시와 비슷하다. 모두 허둥대고 있다. 방향감각을 잃고, 편견과 분열과 원망과 다툼만이 난무한다. 이웃과 이웃, 가족과 가족, 야당과 여당, 노와 사, 형제와 형제, 진보와 보수가 갈등하고 편을 가르는 때가 일찍이 없었다.

오늘은 참으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탄식하고 염려하고 중보의 기도를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 신앙인들은 예수의 그 뜨거운 동포애로 달궈진 심장으로 갈아끼워야 한다. 오늘 우리는 모두 예수의 그 상하신 얼굴을 생각하며 동포를 위해서 날마다 고민하며 고치고 싸매며 치료하고 가르치기에 분주하신 그 예수님의 중보의 삶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 예수님의 정신을 오늘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을 위해서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이 세상이 마침내 고쳐지고 화해되고 하나가 될 것이다.

이정익목사/신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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