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길, 어머니의 길
상태바
아버지의 길, 어머니의 길
  • 노경실 작가
  • 승인 2018.10.30 14: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경실 작가의 영성 노트 “하나님, 오늘은 이겼습니다!”-65
▲ 로버트 쥔트, 엠마오로 가는 길, 1877년

열왕기상 22:52-53> 그가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의 아버지의 길과 그의 어머니의 길과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바알을 섬겨 그에게 예배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기를 그의 아버지의 온갖 행위 같이 하였더라

주일날, 아침. 교회로 가는 버스에 앉은 나는 여러 생각에 잠겨 무심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초가을을 넘어선 때라 창밖 풍경은 잠시 예배에 대한 생각을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지긋지긋하다가 느낄 정도로 지독한 무더위가 어느 새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거리의 나무들은 울긋불긋 옷을 갈아입었다. 벌써 몇 십년 째 가을의 모습을 보는데도 해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장면처럼 신비롭고 황홀하다. 굳이 단풍 구경하러 먼 길을 가지 않아도 동네 나무들로도 충분히 계절의 변화와 아름다움을 충만히 즐길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큰 복인가! 

그런데 버스가 어느 정도쯤 달리자 창밖 모습이 갑자기 확 바뀌었다. 일산에서 유명한 학원가 거리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5, 6, 7층 정도 되는 건물들의 벽마다 단 한 뼘의 빈틈도 없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학원 간판들. 거의 전부가 입시학원들이다.

그 학원 건물들 아래로 학생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주일이라서 그럴까? 예배드리러 가는 사람의 시선으로 봐서 그럴까? 학생들의 얼굴빛이나 어께와 등이 무척 힘들고 지쳐보였다. 아이들 입장에서 ‘일요일’마저 아침부터 큰 가방을 메고 학원으로 가야하니 몸도 마음도 축 쳐지는 게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버스가 두 정거장을 더 가니 이번에는 중형교회들이 정거장마다 차례로 나타난다. 그럼 재미있게도(?) 교회 앞에도 역시 학생들이 보인다. 하지만 학원으로 들어가는 아이들과는 사뭇 다른 표정이다. 친구들과 만나서 웃고 떠드는 모습, 교회 아는 어른들에게 인사하는 모습, 부모와 함께 교회로 걸어가는 뒷모습들이 가볍고 즐거워 보인다. 두 그림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일요일 아침에도 아이들을 깨워 밥을 먹이고 학원으로 보낸 부모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그 부모들은 지금, 아니 일요일 하루를 무얼하며 보낼까?  

평상시는 물론 시험기간에도 아이들에게 헌금을 주고 성경책을 챙겨주며 교회로 보내거나 함께 교회로 오는 부모들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어떤 삶을 살까? 

열왕기상 속의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 왕에 대한 글을 읽다보면 지금 우리들의 부모를 떠올리게 한다. 아하시야는 겨우 2년 동안 왕 노릇을 했다. 그러나 그 2년 동안 아하시야는 엄청난(?) 일을 했다. 가증스런 우상숭배를 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한 것이다. 그런데 그의 이런 어리석고 악한 행위의 배경은 그의 잘못만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그의 아버지의 길과 그의 어머니의 길과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라는 말씀처럼 어릴 적부터 아하시야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 3종류의 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로보암의 길은 세상의 다수가 옳다고 여기는 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길’이란 이미 누가 닦아놓은 것이다. 즉, 아하시야 스스로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세우기 이전에 이미 부모가 닦아놓은 길이 있기에 저절로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굳이 ‘아버지의 길’ 과 ‘어머니의 길’을 각각 따로 기록했다. 

이것은 부모가 얼마나 잘못된 길을 걸어갔는지 강조하려는 것이다. 또한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죄가 얼마나 크며, 집안 전체가 죄악 속에 있었음을 말해주기도 한다. 그래서 아하시야는 그 누구에게서도 말씀을 들을 기회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배울 자리를 얻지 못했고, 부모의 가치관에 푹 젖은 채 자라났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아하시야는 단 한 순간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경험없이 세상 가치관에 철저히 교육받으며 자라났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주일 아침에도 학원으로 가는 아이들. -물론 그 아이들이 앞으로 걸어가야 할 100년 정도의 시간 속에서 어떤 변화가 있을지 모르나- 지금의 모습만 본다면 부모들의 뒤를 따라 무작정 걸어가는 아이들의 미래가 가을 햇살 속에서 왜 그리도 서글퍼 보이는지… 지금 여러분의 아이들이 걸어가는 길은 위험하지 않은지요? 

 

함께 기도

세상은 점점 악해지고, 교묘해지며, 강력해져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치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람을 따라가듯 세상의 길에 발을 옮기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 부모들마다 내 길이 정말 주님의 길인지 다시 한 번 살펴보고 아이들을 잘 인도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