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로운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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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로운 예배
  • 김영한 교수
  • 승인 2018.10.18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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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2장 1~2절 말씀에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나와 있다.

하나님이 받으시기 기뻐하시는 예배는 우리의 생명을 드리는 예배요, 의와 인자로 드리는 예배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예배가 삶으로 구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로마서 12장에서 사도 바울은 칭의를 얻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앞에 살아야할 삶으로서의 예배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칭의를 얻은 자,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에게 자신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권면하고 있다. 이것이 영적 예배라고 하였다.

“영과 진리로”(en pneuma kai aletheia, in Spirit and truth)드리는 예배란 성령과 진리의 말씀 안에서 드리는 예배를 말한다. 열광적 종교 예식이나 신비로운 은사만을 추구하는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으로 가르쳐주신 하나님의 방식(인자와 공의를 행하는 삶)으로 드리는 것을 말한다. 예배란 우리의 생명, 우리의 전 존재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몸을 거룩한 산 제물(희생)로 드리는 것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정의롭고 인자가 있는 제사를 원하신다. 바울은 의로운 예배의 3가지 조건을 말하고 있다.   

첫째, 세상을 본받지 말아야 한다. 삶의 예배란 세상의 각종 풍조와 행실을 좇아가는 혼합주의를 배격하는 것이다. 기업체의 경영세습이 한국 대형교회에서는 목회세습으로 자리 잡았다. 목회자 윤리가 세상 지도자들 윤리보다 높지 않고 저들에게 설교하고 저들의 자문가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둘째,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한다. 다윗처럼 우리의 죄과를 날마다 하나님 앞에 인정하고 고백해야 한다.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2절)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시 51:2-3)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날마다 새로움을 간구해야 한다. 

셋째,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란 항상 선하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다. 교회와 성도가 행해야 할 일은 사람의 뜻(포퓰리즘)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다. 사람의 뜻이란 자기와 자기 편 위주로 생각하는 뜻이다. 하나님의 뜻이란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바같이 나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것이다. 자기부정이다.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음이다.  

큰 교회를 이룬 것이 성공인가? 외형적인 성공 자체는 기복적 성공과 구별이 될 수 없다. 십자가의 비움과 희생을 추구하는 것인가? 자신의 종교적 야망을 추구하는 것인가? 세속적 성공과 번영을 추구하는 것인가? 후자는 다른 종교도 추구하는 것이다. 번영과 크기를 추구하는 기독교는 여러 종교 가운데 하나가 되고 기복종교로 전락하는 것이 된다. 인격적인 하나님은 기복적 제사를 즐겨하지 아니하신다.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시 51:16) 인자와 정의가 깃들지 아니한 제사는 기복종교가 드리는 기복제사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왜 사회로부터 비난을 받는가? 낮아짐과 자기 비움과 희생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자기가 가진 것을 놓지 않으려고 서로 싸운다. 우리의 선배들은 자기를 낮추고 비우고 희생함으로써 사회의 인정을 받았다. 오늘날 기독교가 우리 사회에 생명력 있는 종교로서 약 968만 명의 신자를 가진 제1종교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오늘날 후예들은 세상의 권력과 부와 각종 욕심에 눈이 멀어서 세상의 풍조에 물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회적 성결을 생각지 않는 자는 진정한 복음주의자라고 볼 수 없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외면적 개혁만이 아니라 내면적 변혁으로 나아가야 한다. 제도적 개혁과 더불어 목회자 개인의 삶이 변화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케노시스), 비우심과 섬김과 희생이 요청된다. 이것은 바로 복음으로 내면이 새롭게 변화함을 받은 성화의 계기다. 우리의 삶이 예배가 되고 자기 비움과 죽음과 헌신이 생활화됨으로써 그만큼 성도들이 목회자의 삶을 보고 은혜를 받고 교회와 기독교가 변혁되기를 소망한다.  

기독교학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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