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 큰 어머니, 소심한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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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큰 어머니, 소심한 아버지
  • 정석준 목사
  • 승인 2018.10.02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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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준의 시사영어 - 63

“아이고 참 잘도 먹네... 어서 더 먹어라.” 아버지보다도 더 몸집이 크시고 힘든 농사일을 혼자서 도맡아 하시는 우리 엄만 사실 늘 먹는 것이 부족했다. 당신 몫을 다 챙기셔도 모자랄 판에, 자식들 입에 들어가는 한 숟가락 밥으로 당신의 배부름을 삼았던 분이다. 쓰지 않고 모아야 집안을 끌어가실 수 있는 아버지와 남의 자식들에게 견주어 옷 하나라도 제대로 갖추어 입히시려는 어머니 사이엔 그래 종종 다툼이 있었다. 육십이 넘은 나이에도, 그래서 나는 새 물건의 포장을 선뜻 뜯어내지 못한다.

세상에는 사람들이 듣기 좋은 소리, 듣기 싫은 소리, 들어서 안 되는 소리가 있다. “풀숲에 숨어 우는 귀뚜라미소리, 터놓은 뚝 사이로 논에 물들어가는 소리, 들에 풀어놓은 소들의 풀 뜯는 소리 등은 그 중 듣기 좋은 소리들이다. 통 큰 어머니와 소심한 아버지 사이의 절묘한 조화로움 덕분에, 그래서 개인적으로 내 자식 밥 먹을 때 내는 숟가락 소리를 나는 제일 듣기 좋아한다. 세 살 박이 손녀가 주일마다 교회에 온다. 나보다 밥을 더 많이 먹는다. 한입씩 떠 넣고 맛있게 내는 소리는 그 아이가 내게 주는 지상 최고의 선물이다.

유엔신탁통치이사회 회의장에서 ‘유엔아동기금(United Nations Children’s Fund)’ 청년 아젠다 ‘Generation unlimited’ 행사가 열렸다. 여기에서 대한민국의 방탄소년단(BTS)이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서 연설을 했다.

“당신의 이야기를 하세요. 당신의 목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나는 당신의 신념을 듣고 싶습니다.(Tell me your story. I want to hear your voice. and I want to hear your conviction.) 나는 언제나 나입니다.(I am always who I am.)” 거침없는 그의 음성은 내 손녀의 밥 먹는 소리 같았다.

우리는 남의 눈치를 보느라고 정작 자기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세계적인 ‘아동의 빈곤과 굶주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평화를 바라는 남북왕래 속에, 배고픔에 시달리는 북한의 어린아이들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루세끼를 거르지 않고 밥을 떠서 오물오물 씹어 목에 넘기는 소리를 지금 제일 듣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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