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소와 청빈’ 담은 한국 구세군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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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소와 청빈’ 담은 한국 구세군의 상징
  • 손동준 기자
  • 승인 2018.10.02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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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90주년 맞은 구세군중앙회관

최초 목적은 구세군사관학교…영성훈련 추억 곳곳에
과거를 재해석해 새로운 미래상 그려…시민에 ‘활짝’

▲ 정동에 위치한 구세군중앙회관 전경. 좌우 대칭의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촉촉한 가을비가 내리던 날.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발맘발맘 걷다 보면 미 대사관이 나왔다. 그 길로 더 올라가다 보니 빨간 벽돌로 지어진 3층짜리 서양식 건축물을 마주하게 된다. 딱 봐도 지어진 지 오래 됐을법한 이 건물은 한국구세군의 상징과도 같은 ‘구세군중앙회관’이다. 

1928년 9월 27일 봉헌예배가 드려졌으니 올해로 지어진지 정확하게 90년이 됐다. 유난히 날씨가 좋은 요즘, 한국 기독교의 중심지였던 정동 일대와 구세군중앙회관을 방문해보면 어떨까.

구세군의 역사와 상징 보존
1908년 10월에 한국에 개전한 구세군은 사관(목사) 양성을 위한 학교를 본부와 함께 신문로에 설치했다. 그러나 남학생과 여학생, 그리고 부부를 함께 모집하기 위한 새로운 캠퍼스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구세군의 창립자 윌리암 부스 대장의 아들 브람웰 부스는 자신의 칠순을 기념해 한국에 새로운 학교 건물을 짓기로 하고 미국과 캐나다를 다니며 모금을 시작한다. 그렇게 모인 돈으로 현재의 부지를 불교재단으로부터 매입하고, 1년 만에 건축을 마친다. 건축비는 6만 원가량으로 알려져 있다.

▲ 구세군 중앙회관의 조감도. 알파벳 E 모양을 확인할 수 있다.

구세군중앙회관은 영국 런던에 위치한 ‘클랩튼 콩그레스홀’을 모델로 신고전주의 양식을 반영해 만들었다. 건물을 위에서 조감하면 영어 알파벳 ‘E’ 모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구세군이 복음주의를 표방하면서 벌이는 전도와 선교 그리고 구제사역을 모두 아우르고 있는 에반젤리즘(Evangelism)을 표현한 것이다. 

구세군사관대학원대 장영주 교수는 “구세군은 선교공동체로 출발했다. 그것도 가장 처참한 상황에 놓인 이들의 삶의 자리로 스스로 찾아가 구령의 열정으로 사역했다”며 “구세군 사역의 자리는 ‘최 암흑’이 머문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역을 위해 사관학교의 훈련 강도가 강할 수밖에 없었다. 구원을 향한 동일목적과 목표를 위해 한 공간에서 동고동락하면서 교육이 이뤄졌고, 그 추억을 건축공간에 고스란히 품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세군중앙회관은 구세군의 장식과 꾸밈을 배제한 검소, 그리고 자발적 청빈의 정신이 반영된 건축학적 산물이다. 장 교수는 “구세군중앙회관은 극도의 간결미가 단연 돋보인다”며 “간결하면서도 육중하다. 그러나 거만하지 않다”고 소개했다.

훈련과 전도·만남의 산실
이 건물은 건축 초기부터 구세군사관학교가 과천신교사로 이전하기까지 약 57년간 신학교로서 한국구세군 발전사에 큰 역할을 했다. 많을 때는 한번에 80명 가량의 사관생도들이 이 곳에서 함께 생활해야 했다. 

현재 행정부로 사용하는 공간은 1학년 강의실이었고, 기획국은 2학년 강의실이었다. 여성사역 총재실은 식당으로, 여성사역부와 자산부는 교관실로, 재무부와 정보통신부 사무실은 모두 일명 ‘토끼장’이라고 불리는 학생 숙소로 이용됐다.

‘토끼장’이라는 별칭은 그만큼 장소가 좁고 협소했다는 이야기다. 방에는 연탄화덕을 레일로 밀어 넣어 난방을 했는데 연탄화덕이 넘어지면 당황하기도 하고 부부가 서로 배를 잡고 깔깔 웃곤 했다고 한다. 

▲ 구세군역사박물관장 황선엽 사관은 아내와 함께 영성 훈련을 받던 30여년 전을 회상하며 추억을 간직한 건물에 감사를 전했다.

1982년 구세군사관학교에 입학한 구세군박물관장 황선엽 사관(부정령)은 아내와 함께 생활했던 당시를 회상하면서 “신학만 배우는 곳이 아니라 공동체 영성생활을 하던 곳이다. 좁고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부부가 함께 낮아짐과 섬김을 배웠던 추억의 장소”라고 소개했다.

부부가 누우면 책상 외에는 공간이 없을 정도로 협소하고 방음도 되지 않았지만 이곳에서 많은 구세군 신학생들이 과제를 수행하고, 훈련에 지친 몸을 쉬면서 충전을 했다. 이 곳을 거쳐 간 모든 사관들이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쳐서 오늘의 구세군을 지탱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 구세군중앙회관은 서울 시내 한복판이라는 훌륭한 접근성 탓에 서울 지역 구세군 신도들의 만남의 장으로서도 활용됐다. 황 사관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오는 목요연합성결예배 장소로 활용됐던 건물의 용도를 소개했다. 그는 구세군 브라스밴드가 중앙회관에서 출발해 덕수궁돌담길 앞을 돌아서 대한문 앞에 도달해 노방전도를 하던 모습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남자는 브라스를, 여자는 탬버린을 연주하면서 사람들을 초청하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교회를 찾아왔다.

구세군중앙회관의 현재와 미래
서울시는 지난 2002년 3월 “구세군 역사의 보존가치가 있고 근대 건축물로서 건축물 자체의 보존이 필요하다”며 이 건물을 시도기념물로 지정했다. 실제 이 건물은 건축학적으로 가치가 높다. 특히 좌우 대칭 균형 감각이 뛰어나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 대강당을 보면 지붕을 받치는 목조 트러스 구조로 영국의 전통 양식을 계승하고 있어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윤심덕과 홍난파, 김영환 등 당대의 예술가들이 구세군과 자선음악회를 하면서 거쳐 간 곳이어서 더욱 의미가 깊다. 

▲ 건물 내부로 들어가 보면 독특한 구조의 대강당이 이색적으로 다가온다.

벽과 지붕으로 이뤄진 대강당엔 보와 기둥이 없는 박공지붕이 특징이며 정면에 박공벽이 있다. 박공형식 구조는 강당 내부에 기둥이 없기 때문에 공간적 활용도가 높고 합리적이고 실용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 이 건물은 구세군역사박물관과 본영의 일부 행정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2003년 조성된 박물관에는 구세군의 각종 상징물과 100년 넘은 성경, 허가두 선교사가 쓰던 성경, 3.1운동 당시 사용된 태극기 등 여러 사료가 보존돼 있다. 현재는 구세군대한본영의 정책상 다소 축소되긴 했지만 향후 역사와 문화, 예술 공간으로서 구세군뿐 아니라 일반 시민에게도 활짝 열릴 예정이다. 

건물이 위치한 정동은 덕수궁과 각국 대사관,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이화학당과 배재학당 등 구한말과 근대화의 가치 있는 유적지들이 밀집해 있다. 

황선엽 사관은 “정동 일대가 과거 역사에 대한 보존뿐 아니라 재해석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나가고 있다”며 “최근 들어 과거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방문하고 있다. 내년 초 쯤이면 전문경영업체와 힘을 합쳐 시민의 공간으로 선보이게 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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