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 대법원 판례 향방은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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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거부’ 대법원 판례 향방은 어디로?
  • 이인창 기자
  • 승인 2018.09.04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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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공개변론, “유죄 VS 무죄” 공방
▲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공개변론이 지난달 30일 진행됐다. 헌재가 대체복무제를 마련하라고 내린 판단이 대법원 판결에 영향일 미칠 지가 관심이다.

지난달 30일 대법원에서는 세간의 이목을 끄는 재판이 진행됐다. 대법원은 김명수 대법원장이 이끄는 가운데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쟁점에 관한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을 진행했다. 공개변론이 진행된 서초동 대법원에는 100여 명이 몰려 방청권을 받기 위해 줄을 섰다. 이날 변론은 4시간 가까이 진행될 정도로 첨예했고, 이 모습은 인터넷과 SNS로 실시간 중계됐다. 

재판에 더욱 관심이 집중된 이유는 지난 6월 28일 헌법재판소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처벌은 합헌이라고 판결했지만, 대체복무제도 도입을 위해 2019년까지 개선입법을 하도록 결정한 데 있었다. 대법원이 헌법재판소 판결 이후 어떠한 재판을 진행할지 관심이 컸기 때문이다. 

헌재 판결, 대법원에 영향 미칠까
헌법재판소는 종교적 신념이나 양심을 이유로 입영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처벌하도록 한 병역법 88조 1항의 위헌 여부에 대한 판단에서 헌법재판관 중 합헌 4, 위헌4, 각하 1명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2004년 8월과 10월, 2011년 8월에 이어 모두 네 차례 해당 병역법 조항이 정당하다고 판결한 것이다. 

하지만 현재 병역법에 규정된 병역의 종류에 ‘현역’, ‘예비역’, ‘보충역’, ‘병역준비역’, ‘전시근로역’ 등만 규정된 것은 개인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판단해 2019년 12월 31일까지 병역법을 개정해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도록 한 것이다. 헌법재판관 6명은 헌법불합치, 3명은 각하 의견을 냈다. 

대법원은 공개변론을 거쳐 법리적 해석을 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이번 헌재 판결이 어떤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일이다. 대법원이 공개변론을 결정한 것도 상고심 관련 사건이 올 6월 29일 기준 205건이 넘고, 하급심 재판부마다 유무죄가 갈릴 정도로 혼란스러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공개변론을 앞두고 세 차례나 보도자료를 배포할 정도로 이번 사건에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대법원은 폭넓은 의견수렴을 위해 국방부, 병무청, 한국헌법학회,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국가인권위원회 등 무려 12개 단체의 의견서를 요청했다. 

대법원이 고심하는 쟁점사항 세 가지
대법원은 공개변론을 앞두고 검사와 변호인에게 3가지 쟁점사항에 관련해 변론준비 명령을 발령했다. 첫째는 병역법 제88조 제1항, 예비군법 제15조 제9항의 ‘정당한 사유’가 양심이나 종교에 따른 병역거부를 포함하는 지에 대한 부분이다. 

대법원은 2004년 사건에서 전원합의체 판결로 이미 “병영거부자의 양심 실현의 자유가 국방의 의무보다 우월하지 않아 정당한 사유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바 있고, 2007년 판결에서도 “국제규약 규정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해석상 도출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바 있다. 

대법원이 준비명령을 내린 또 하나 쟁점사항은 국제법적·비교법적 측면에 대한 부분이다. 대법원 자료에 따르면, 국제연합 자유권규약위원회는 2006년 이후 병역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우리 사안에 대해 자유권조약 제18조를 위반했다는 견해를 공표했다. 유럽인권재판소는 2011년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아르메니아 정부가 인권규약을 위반했다는 판결을 내리며 기존 선례를 변경했다. 

대법원은 “2004년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국내외 환경 변화를 반영해야 한다”는 견해와 “대체복무제가 도입되지 않은 상태에서 병역 거부자를 처벌하지 않을 경우 혼란을 초래한다”는 견해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마지막 쟁점사항은 ‘병역의무의 형평성 문제’, ‘대체복무제 도입 논의 현황’ 등에 관한 것. 여기에서 병역 의무와 양심·종교의 자유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대체복무제 도입 논의 현황 등이 고려될 것으로 전망된다. 

“양심적 병역거부? 종교적 병역거부”
대체복부제가 도입된 이후 판단이 달라질 가능성이 높지만 아직 제도가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대법원 공개변론은 치열했다. 검찰측은 “정당한 사유는 천재지변과 같이 객관적 사유에 한정해야 하며, 현역 복무자와 형평성 문제, 엄중한 안보상황 등을 고려할 때 유죄로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대체복무가 이행될 환경이 만들어져 형평성 문제와 공익적 요소가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이 국제적 환경변화를 고민하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우리나라의 경우 소위 병역거부자들을 양심적 이유에서 판단할 수만은 없다. 신념에 대한 객관적 판단이 가능한지 여부도 관건이다.  

바른군인권연구소 김영길 대표는 “우리나라 병역거부 사유의 99% 이상이 종교적 이유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며 “대체복무제를 악용하는 사례를 차단해야 하며, 종교기관이 포교를 목적으로 허위증명서를 발급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실제 2004~2013년 병무청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병역 거부자 6164명 중 6118명이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다. 무려 99.2%에 해당했다. 유럽 등 해외에서 개인의 양심에 따라 입영이나 집총을 거부하는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엄밀히 말하면 양심적 병역거부라기보다 종교적 거부라는 표현이 더 적당하다. 

법원과 국가기관이 특정 종교의 신념을 보호하기 위해 대다수 일반 국민들의 정서와 형평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을 대법원은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양심적 병역 거부로 형사처벌을 받은 숫자도 2012년 9건에서 2017년 60여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반면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공동대표 박종운 변호사는 “대체복무제도가 특정 종교만을 위한 것이라고만 볼 수 없으며, 영국과 미국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 대다수는 평화주의를 선택한 기독교 분파의 신자들이 많다”면서 “집총을 거부하고 있는 젊은이들을 전과자로 양산하기보다 다른 방식으로 국가와 사회에 의무를 다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편, 이번 대법원 공개변론에서 변호인측 주장을 날카롭게 파고든 이기택 대법관의 질문이 SNS에서 크게 회자됐다.

이 대법관은 “어느 종교나 선교, 포교 활동을 통해 신자 수를 늘린다고 하는 것은 종교활동 중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종교의 활동목표로 알고 있고 피고인이 신봉하는 종교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이 종교적 목표가 실현이 돼서 그 숫자가 대폭 늘어나게 된다면 결국 군에 가는 국민은 사실상 없어지고 군대도 없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법관은 “그렇게 되면 외적의 침략을 받게 될 것은 분명하고 외적에 의해서 종전과 같은 정도의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리라고 기대는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일 것”이라며 “결국 피고인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고자 하는 종교와 신앙을 잃게 될 위험에 처해질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는 것이 아주 현실적인 추론”이라는 논지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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