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부르크 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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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부르크 회의
  • 황의봉 목사
  • 승인 2018.08.21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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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봉 목사의 교회사 산책 츠빙글리와 스위스의 종교개혁(4)

취리히의 개혁운동이 공개 토론으로 성공하자, 스위스의 여러 도시들에서도 같은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1526년에는 루터의 대적 요한 에크와 츠빙글리가 로마 가톨릭 영지인 바덴에서 4주간 동안 논쟁을 벌였습니다. 이 논쟁에 츠빙글리의 후계자인 바젤의 종교개혁자 오콜람파디우스가 참석하여 로마 가톨릭교회를 곤경에 몰아넣었습니다.

바덴 회의 이후 루터와 츠빙글리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공격에 대비하여 서로 만남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츠빙글리의 제안으로 1529년 독일의 마르부르크에서 두 사람이 만나 회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츠빙글리와 루터는 3일간의 논의를 거쳐 그리스도의 중보사역, 믿음에 의한 칭의, 세례에 관한 문제 등 14개 조항에 대하여 의견일치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성찬에 대하여는 심각한 설전을 벌였습니다. 츠빙글리는 빵과 포도주가 오직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그리스도께서 성찬식을 거행할 때마다 질적으로, 양적으로, 혹은 공간적으로 임하지는 않지만, 본질적이고 실체적으로 임재한다고 ‘공재설’을 주장하였습니다. 서로의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자 루터는 츠빙글리와 화해하는 것을 거절하였고, 츠빙글리를 ‘적그리스도의 영’이라고 정죄하였습니다. 결국 교회의 연합이 무산되었습니다. 루터와 츠빙글리의 차이는 무엇인가? 성찬의 문제였습니다.

① 로마 가톨릭교회의 화체설(化體說) / 로마 가톨릭교회는 성만찬을 거행할 때에 떡과 포도즙의 속성은 변화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지만 그 본질은 예수님의 살과 피로 바뀌어 주님이 실재(實在)한다고 주장했습니다. 

② 루터의 공재설(共在設) / 루터는 성만찬에서 떡과 잔의 본질이 살과 피로 변하는 것에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이것은 내 몸이다 내 피다”한 것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여 주님의 부활하신 몸은 우리에게 주어진 떡과 즙 ‘안에’ ‘함께’ ‘밑에’ ‘실재’한다고 보았습니다. 

③ 츠빙글리의 기념설(記念說) / 츠빙글리는 루터와는 달리 “이것이 내 몸이다”라는 말은 “이것이 내 몸을 의미한다”로 이해를 했습니다. 그는 성만찬을 집례 할 때, 최초 주님의 만찬을 회상하면서 그것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회상설(回想設)이라고 합니다. 

④ 칼뱅의 영적임재설(靈的臨再說) / 칼뱅은 루터처럼 성만찬에 예수님이 실재로 임재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츠빙글리처럼 하나님 우편에 계신 주님의 몸이 직접 오실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 대신 주님은 성령으로 성만찬에 오셔서 우리를 주님과 연결시켜 준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칼뱅은 기독론적으로는 츠빙글리와 일치했고, 실재 임재라는 면에서는 루터와 일치했습니다. 오늘날 장로교회의 성만찬론은 츠빙글리와 칼뱅의 사상을 따르고 있습니다. 성경은 루터, 츠빙글리, 칼뱅의 성만찬론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또한 현대에도 성만찬론은 개신교인들 사이에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지 않습니다. 성만찬의 신비는 이성과 지성으로 논쟁으로 이해되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받아들일 때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됩니다.

평안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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