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흥 가득한 홍대에서 수상한 예배 드려볼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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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흥 가득한 홍대에서 수상한 예배 드려볼래요?"
  • 김수연 기자
  • 승인 2018.08.20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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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문화 꽃 피우는 '홍대 수상한 거리'

평일저녁·주말 할 것 없이 불타는 밤을 보내려는 사람들로 늘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 버스킹 공연으로 거리 곳곳에 세상 음악이 쩌렁 쩌렁 울려 퍼지고 현란한 네온사인 불빛을 장착한 클럽과 술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곳. 대개 젊은이들의 거리 '홍대입구' 하면 떠올리는 모습이다.

그런데 이렇듯 유흥 가득한 청춘들의 아지트에서 기독교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골목이 있다면 어떨까? 복음의 문이 활짝 열려있어 언제든 두드리기만 하면 찬양하고 예배드릴 수 있는 공간이 숨어있다면? 홍대에서 9년간 기독교 예배 문화 운동을 펼쳐온 '홍대 수상한 거리' 이야기다. 얼핏 들어선 잘 이해가 안 되는 '교회 아닌 교회'의 백종범 목사를 직접 찾아가봤다.

'카페·술집'에서 드리는 예배
홍대 인근 건물 지하 1층에 위치한 공연장 '스테이 라운지'에 들어서면 일반적으로 경건한 분위기의 예배당과는 달리 다소 파격적인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최대 150명이 앉고 250명이 설 수 있는 규모에 화려한 조명이 떨어지는 무대가 펼쳐지기 때문. 한쪽에 자리한 작은 바는 덤이다. 심지어 교회 혹은 성전임을 알리는 그 어떤 간판도 달려있지 않다. 그러나 이곳에선 매주 주일은 물론 화요모임이 있는 날마다 엄연히 예배가 드려진다. 보통 어느 교단, 어디 지역에 속했는지를 명시하는 정통 지역 교회의 개념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 덕분에 가나안 성도 및 다음세대 사역자들의 발길이 잦다고. 

"교회란 이름이 붙으면 당연히 사역의 속도도 오르겠지만 실험해보고 싶었어요. 교회의 개념을 좀 더 확장시켜 지극히 일상적인 장소에서 드리는 예배를 통해 '삶이 곧 예배'란 메시지를 전하고 교회 밖 사람들과 접점을 찾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이 '이런 곳에서도 이런 형태의 예배를 드리는구나'를 느껴 자연스레 마음의 빗장을 열고 교회로 오도록 문턱을 낮춰주는 것이죠. 아예 하나님을 모르는 논 크리스천부터 하나님을 알고도 잠시 떠나 있는 신자들까지 부담 없이 찾을 수 있게요." 백종범 목사가 밝힌 소신을 들으니 그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2010년경 청소년들과 예배드릴 공간을 찾다가 지인을 통해 스테이라운지를 소개 받아 인수, 운영까지 도맡게 된 백종범 목사는 이외에도 주변 식당과 술집, 카페들을 교회(?)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 일대, 정확히 말하면 홍대입구역에서 합정역 사이 홍익로 4길을 '수상한 거리'로 일컬었다. 유흥가와 기독문화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데서 따온 이름이었다. 조금은 낯설고 생소하지만 '교회의 거리화'가 움트고 있는 셈이다.

"예수님 믿으라고 외치는 노방전도, 물론 필요합니다. 그런데 자칫하면 크리스천들만의 외침으로 끝나버릴 수 있어요. 오늘날 교회의 과제는 이미 이 땅에 도래한 하나님 나라가 세상에서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청년들에게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때문에 교회는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탈피해 세상 밖으로 나와 새로운 길과 방향을 제시할 때입니다." 

▲ '홍대 수상한 거리' 백종범 목사가 말씀을 전하고 있다.

대중문화와 기독문화의 콜라보
수상한 거리가 '기독문화 플랫폼' 역할을 감당하며 다양한 문화선교를 진행 중인 이유도 이 같은 백종범 목사의 목회철학에서 비롯됐다. 수상한 거리가 추구하는 방향을 굳이 한 마디로 요약해 달라고 하자 "예배와 삶이 통합돼 기독교적 가치가 교회를 넘어 세상으로 흘러가게 만드는 것"이란 대답이 돌아온 것도 이해가 됐다.

이에 걸맞게 수상한 거리의 사역들 역시 하나같이 신선하고 창조적이다. 가령 스테이라운지의 경우 설교뿐 아니라 평일엔 찬양사역자 등 교계 문화 사역자를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합주 연습실이 되거나 기독교 관련 공연 및 강연이 개최되는 것. 마땅한 공연장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크리스천 아티스트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논 크리스천 관객들의 발걸음까지 유도한다.

더욱이 이 과정에서 백종범 목사는 논 크리스천들과의 협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또 다른 예배당으로 활용되고 있는 카페 피카소의 경우 공간 사용을 허락해준 사장은 하나님을 전혀 믿지 않는 이였다고. 원래 술집이던 곳이 최근 카페로 변경되는 놀라운 변화가 생기긴 했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을 믿게 됐다는 드라마틱한 간증도 아직은 없다.

그럼에도 백종범 목사는 이렇게 고백한다. "그들도 우리의 동역자입니다. 세상과 기독교가 연합해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것이죠. 크리스천이라고 다 정직한 게 아니듯, 비신자라고 기독교 문화를 무조건 싫어하는 것도 아니거든요. 다만 그들도 언젠가는 결국 하나님께 돌아올 것이란 믿음을 갖고 임하는 거죠."

여기서 멈추지 않고 수상한 거리는 기독교와 대중문화를 접목시킨 '홍대 수상한 거리 페스티벌'을 1년에 두 번씩 개최하고 있다. 지난 5월에도 '하나님 나라를 세상에 꽃 피우자'를 주제로 제4회 페스티벌을 진행해 청년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헤리티지·조셉붓소·주리·함부영 등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자리해 세상 문화와 견줘도 손색없는 세련된 공연을 선보였다. 때로는 사회 각 계층에서 다양한 직업을 통해 소명을 실천하고 있는 이들이 나서 고민 많은 청년들에게 진지한 조언을 건네기도. 그렇게 페스티벌은 어엿한 지역·교회의 축제로 커가고 있다.

그런가 하면 다양한 기독문화를 즐길 수 있는 투어 프로그램, 일명 '홍대투어'도 인기다. 교회 안 기독교 문화는 풍성한데 정작 교회 밖 기독교 문화는 없다는 데서 착안한 홍대투어는 외국인 선교사들의 삶과 신앙을 돌아볼 수 있는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방문 및 맛집 탐방, 기독 뮤지션들의 토크 콘서트와 연극 관람 등으로 이뤄져 있다. 약 5년간 이어진 홍대투어는 별도의 홍보 없이도 어느새 100회를 훌쩍 넘겼다. 타 교회 청소년들은 물론 청년부 사역자 등 지금까지 참여한 인원만도 무려 4천여 명에 이른다.

백종범 목사는 "홍대 안에는 기독교 공연보다 훨씬 더 재밌는 일반 문화들이 많아요. 이런 상황에서 '청년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란 질문을 던져주는 게 투어의 목적"이라면서 "사역의 형태는 말씀·찬양에서 나아가 무궁무진하거든요. 다음세대 누군가가 이 일들을 이어나가줬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과거 선교사들도 교육·의료 등 문화선교를 펼쳤고 그게 곧 복음이었죠. 문화사역은 결국 예배의 완성입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하나님 마음이 있는 곳, 홍대
다음세대를 위해 모험에 도전하는 수상한 거리. 그러나 백종범 목사도 처음부터 고안해낸 묘안은 아니었다. 4대째 목회자인 그는 어려서부터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출석하며 신앙을 키웠다. 호서대 신학과와 한세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뒤 2006년부터 2010년까지는 서울 순복음경동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일하기도 했다. 하지만 4년 동안 청년부를 담당하면서 그는 세상과 교회의 문화적 괴리를 뼈저리게 절감했다. 더 이상 교인들이 교회 안에만 머물러선 안 되겠다고 생각한 그는 안정적인 사역의 울타리를 벗어나 홍대로 왔다. 

"사람들은 홍대라 하면 원나잇·클럽 등 죄를 먼저 연상하지만, 그 가운데 아파하는 하나님의 마음이 같이 있어요. 특히 이곳은 젊은 친구들이 보고 듣고 깨닫는 모든 문화가 창조되는 곳이에요. 그런 만큼 지금 시대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에 대한 해답이 담겼고 이런 저런 실험도 해볼 수 있죠. 한마디로 홍대에 있으면 이 땅의 필요,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동시에 알 수 있습니다."

열혈 신도보다 지나가듯 쉬어가는 가나안 성도 혹은 논 크리스천들이 많기에 소속 성도수도 명확하지 않을뿐더러 10여 명의 동역자들과 빠듯한 재정을 꾸려가는 것도 쉽지 않을 터. 그러나 그는 미련 없이 '미셔너리 처치'가 되길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수상한 거리는 있다가도 없어질 수 있는, 결코 정답이 아니에요. 다만 이 시대 더 많은 교회들이 세상의 필요를 채워주는 선교적 교회가 돼야하는 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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