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하지 않는 나의 무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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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하지 않는 나의 무식함
  • 정석준 목사
  • 승인 2018.07.10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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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준의 시사영어 - 58

“풀을 잔뜩 먹여서 배가 불뚝 올라오면 그때 들어와라.” 남산 만한 소를 끌고 나가는 어린 아들이 우리 아버진 애처롭지도 않으셨나보다. 한참을 풀을 뜯겨도 불러지지 않는 소의 배를 한심한 듯 바라보다가 이내 나는 손바닥으로 지는 해를 재어본다. 설마 소의 배가 부르지 않더라도 저녁 먹으러 들어오는 아들을 어찌하랴 싶어서이다. 계양산 너머 꼭 손가락 한마디만큼 해가 걸려있을 때 우리 집은 저녁을 먹었기 때문이다.

‘해는 어디서 뜨고, 어디로 지는가?’ ‘시간은 누가 만들었나?’ ‘누가 지구는 둥글다고 했는가?’ 참 궁금한 것이 많았던 나이이지만 간혹 들려지는 답변들은 선뜻 이해할 수 없는 모호함뿐이었다. 그래서 공부를 하면서 하나씩 과학적 가설들이 이해가 가고 알아진다는 것이 무척 흥미로웠다. 그러나 끝내 모르거나 알 수 없는 것들은 “원래 다 그런 것이야”하고 억지로 넘어갔다.

12세기가 들어서면서 점점 확대되는 인간 지식의 발전정도를 비웃듯, 어떤 교리로도 설명할 수 없는 ‘신인합일’에 대한 무지의 현상에 대항하여, 스페인을 중심해서 ‘유대교신비주의(Jewish tradition)’가 일어났다. 사람들이 애를 써서 어떤 과학적 탐구를 하더라도, 하나님이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 한순간 한꺼번에, 지혜(호크마, Chokhmah, wisdom)와 명철(비나, Binah, understanding)을 부어주실 때에야 비로소 인간의 지식(다하트, da’ath, Knowledge)이 형성된다는 신비의 체계이다. 일명 “까발라, to receive, (Kabbalah Tradition)”라고 한다.

전통이나 예식의 신학적 비평에 앞서 사람의 지식이란 결국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지혜와 명철의 모아짐이라는 사실은 무척 감동적이다. 소위 ‘앎의 시대’에 접어들고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지면서 많은 지식의 탐구가 눈부신 과학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렇게 합시다, 이러면 됩니다”라는 무수한 지식의 말들이 아이러니하게 우리 사회를 이렇게 힘들게 한다. 장맛비처럼 쏟아지는 지식의 홍수 속에, 그러나 정작 우리가 얻어내는 것은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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