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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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아내
  • 황의봉 목사
  • 승인 2018.07.03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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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봉 목사의 교회사 산책-루터와 독일의 종교개혁(9)

16세기 종교개혁에 있어서 가장 많이 세상에 알려진 여인은 루터의 아내 카타리나 폰 보라(1499-1552)일 것입니다. 그녀는 10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의 재혼과 함께 독일 님브센에 위치한 수녀원에 들어갔고, 16살이 되었을 때 공식적인 수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많은 사람들이 교회개혁의 새로운 사상에 접하게 되고 그녀 역시 루터의 저술을 수녀원에서 읽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과연 진정한 신앙생활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9명의 님브센 수녀들이 함께 자신들의 가는 길에 의혹을 가지고 루터의 상담을 받게 되었습니다. 루터는 말할 것도 없이 수녀원을 벗어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조언하면서, 루터 역시 나름대로 도울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루터가 있는 독일의 작센 지역은 신앙적으로 둘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공작 게오르그가 통치하는 지역은 여전히 가톨릭을 지지하며, 다른 한쪽은 루터의 친구이면서 또한 생명의 은인으로 역사 가운데 소문이 나있는 현공 프리드리히 선제후가 통치하는 개신교 지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카타리나 폰 보라가 소속되어있는 님브센 수녀원은 다름 아닌 게오르그가 다스리는 가톨릭 영토 안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게오르그는 매우 강경하여 수녀원에서 탈출하는 수녀를 도왔다는 이유로 한 남자를 사형에 처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살벌한 분위기 가운데서도 루터는 매우 신뢰할 수 있는 한 상인과 함께 구운 청어를 담은 비린내 나는 큰 통에 수녀들을 넣어 탈출시키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중 카타리나는 여러 가지 면에서 볼 때 그 중 제일 매력적인 여인이었습니다. 1525년 6월 13일 네 명의 증인 앞에서 루터는 16살이나 어린 카타리나와 소박하게 그러나 역사적인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루터의 생명의 은인이자 동시에 루터의 추종자 프리드리히 현공은 후한 생활비와 함께 어거스틴 수도원으로 쓰던 40개의 방이 있는 큰 건물을 루터의 가정을 위해 내놓았습니다. 그럼에도 수많은 식솔들 때문에 그렇게 생활은 풍족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무튼 카타리나 부인은 이 큰 규모의 살림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루터의 결혼은 분명히 성공적이었다 하겠습니다.

루터는 가정의 평화를 참으로 귀하게 여겼습니다. 종교개혁자 루터에게 있어서 이처럼 귀하게 느껴지는 평화는 가톨릭교회를 위시하여 대외적으로 닥쳐오는 시련과 어려움으로 여지없이 깨어지곤 하였고, 우리의 상상력을 뛰어넘어 그에게 많은 어려움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종교개혁자의 힘든 생애에 있어서 포근한 가정이 가져다주는 사랑과 평화는 너무도 큰 위로와 힘이 되었던 것입니다.

카타리나는 정숙한 목사의 사모, 신앙의 아내, 종교개혁자 루터의 지혜로운 조언자였으며, 다섯 자녀들의 성실한 어머니로서 위기의 시대에 자신에게 주어진 무겁고 힘겨운 역할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아내로서 그녀는 인격과 용기, 예민성과 강직함, 강한 의지와 큰 사랑을 소유하였습니다. 카타리나를 통해서 제시되는 개신교 첫 번째 사모의 모습은 오는 시대 개신교 목사 부인들의 모습을 그리는 데 어렵지 않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평안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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