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욕을 버리고 성령을 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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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욕을 버리고 성령을 입자
  • 승인 2004.03.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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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를 통해 “로마는 목욕문화 때문에 망했다”는 말을 터키의 에페소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은 폐허가 된 도시지만 과거 로마제국의 영광과 번영, 그리고 얼마나 많은 나라와 민족들이 로마의 권력에 영향을 받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쾌락의 문명은 인간 본성의 악함을 증명하고 있었고 인간을 파멸로 가게 하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일을 통하여 삶을 실현하려는 노력을 상실했다. 반면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쉬면서 인생의 행복을 경험할 수 있을까에 몰두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경제가 불황이라고 아우성을 치면서도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은 불황과 전혀 무관하다는 점이다. 우리는 참 이상한 현실을 경험하면서 살아간다. 현대화된 생활환경의 안락함을 맛본 사람들은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살아간다. 무엇인가 자꾸 육체적, 정신적, 심리적으로 어떤 자극을 원한다.

얼마 전 인터넷으로 본 뉴스 가운데 요즘 찜질방이 진화해서 엄청난 규모가 되고 있단다. 길음동 어디에는 7천5백 평에 5천 명을 수용하는 곳이 생겼는데 찜질방이 종합레저타운으로 변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주부들을 위한 연극과 가수들의 라이브 콘서트까지 벌어지는 등 고객 유치에 안간힘을 쏟는 모습이다. 각종 찜질방은 물론 각종 건강강좌에 부동산 재테크 강연까지 벌이고 있다.

인간은 제 힘으로 피할 수 없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우리 사회의 첫째 욕망은 육욕(肉慾)이다. 육욕은 의·식·주를 비롯한 성욕 등 육체를 만족과 쾌락적 욕구를 말한다. 육욕은 젊은이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다 있다. 그것을 필요 적절하게 조절하고 통제할 줄 알 때 인간의 존엄성이 나타난다. 반면 육욕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데 실패하면 누구나 예외없이 인생을 그르치게 되는 것을 본다. 따라서 육욕의 문제는 단순히 젊은 사람에게만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정욕의 특징은 성급함, 조급함, 불안정한 모습이라 했는데 이것이 내 인격이요, 생활이요, 신앙이라면 과연 주님께 “착하고 충성된 종아 잘하였도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큰 일도 맡기겠노라”라는 말씀을 들을 수 있을 것인가. 정욕적인 사람은 어떤 때는 열심인 것 같은데, 어떤 때는 심히 걱정스런 모습을 보기도 한다. 그러기에 언제든지 주님을 위해 내 정욕을 포기할 수 있는, 한 길을 걸어가는 우직한 신앙의 모습이 필요하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로 의와 믿음, 사랑과 화평의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혼자는 잘 안된다. 그래서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고 했다. 사람이 누구와 함께 하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곧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될 수 있다. ‘그 사람을 알려면 그 친구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그 주변 인물이 누구냐에 따라 그 사람의 수준과 가치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의 집단이기주의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그 유례를 찾기 어렵다.차이나타운이 꼭 이 땅에 형성되어야 바람직한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지적한다. 올바른 공동체와 그룹, 개인의 존재가 살아있는 집단은 무엇보다도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이 있는 관계가 있어야 한다.

사순절에 크리스천들은 신앙 인격을 훈련해서 그리스도를 닮기를 원한다. 자신의 말과 생각, 행동, 인간관계가 그리스도와 관련있고, 그리스도를 향하고, 그리스도의 목적에 합당하도록 훈련하여,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일을 담당하는 착하고 충성된 종의 삶이 되도록 훈련하는 사순절이 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유 영 설목사·문래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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