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를열며-사랑의 힘을 캐어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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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를열며-사랑의 힘을 캐어내야
  • 승인 2004.03.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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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곤충학자가 들판에서 개미를 관찰하다가 조그마한 개미 한 마리가 죽은 메뚜기를 끌고 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니, 어떻게 자기보다 큰 것을 끌고 갈 수 있을까?” 그 개미는 자기 몸무게의 60배가 되는 것을 끌고 가고 있었다. 이것은 마치 70키로 되는 사람이 4천2백키로의 짐을 끌고 간다는 얘기이다. 어떻게 보통사람이 먹이를 실은 4톤 트럭을 끌고 갈 수 있을까?

고등학생이 방학이 되어 고향 발안에 내려갔다. 아버지 일손을 도우려고 경운기에 퇴비를 가득히 싣고 밭으로 가는 길이었다. 아들은 좁은 밭 뚝길을 가다가 그만 잘못하여 경운기가 뚝 밑으로 뒤집혔다. 아들은 퇴비를 뒤집어쓰고 경운기 안에 깔려 있었다. 이것을 목격한 아버지, 168센치의 키와 74키로의 몸무게를 가진 42세 된 조그마한 아버지가 “쿵”하는 소리에 이 사고현장을 목격하고 급히 뛰어갔다. 그는 순간적으로 괴성 같은 목소리로 “경철아!”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무서운 힘으로 경운기의 안쪽을 들어올렸다.

얼마 후에 구급차가 달려와 인공호흡을 시키면서 의사는 말했다. “아버지는 초인간적인 힘을 발휘했습니다. 아들을 살리겠다는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의 힘이 무거운 경운기를 들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성서에서 “사랑은 제일이다”(고전 12:31, 13:13)라고 말씀한 사랑의 ‘메가톤’의 위력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평상시에 사랑의 힘을 느낄 수 없다. 왜 일까?

우리에게 그 사랑의 힘이 없어서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 힘을 캐어내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에게 저장되어 있는 무한한 사랑의 힘을 어떤 동기로 해서 끄집어내느냐? 그 힘을 발동시키느냐? 그리고 그 힘을 끄집어내어서 어떻게 밝은 인생을 만들어 가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가 머리가 나빠서 공부 못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다만 공부할 수 있는 힘을 발동시키지 못한 것뿐이다. 공부에 관심을 갖고 목표를 정하고 애착을 가져본다면 그의 관심과 목표와 애착이 지력을 발동하여 수재를 만들 수 있으리라.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성공할 수 있는 힘-에너지를 주셨다. 문제는 사업, 직장, 사회생활, 가정생활 등 자기 일에 관심을 갖고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정열을 쏟고 땀을 투자한다면 그 일에 대한 집요한 관심, 그 목적에 대한 정열, 피땀 흘리는 투자가 바로 강한 사랑의 힘이 아니겠는가? 그 힘이 성공의 기회를 만들어 갈 수 있으리라.

때론 우리가 평안을 위하여 안일무사주의에 빠져 자기의 재능을 묻어버린다면 그것은 자신의 인생을 좀먹는 비극을 초래 할 것이다. 그는 결국 방황하는 인생이 되고 말 것이다.(마 25:28-30)

어느 날 한 분을 만났더니 땅이 꺼지자 한숨만 짓고 있었다. “일을 시작해야죠. 그렇게 하늘만 쳐다보면서 한숨만 짓고 있으면 어떠합니까?” 그는 말했다. “50여 평생 공직에서 살아오면서 쫓겨나 앉은 몸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사회적 불안심리가 그의 생각과 의지를 묻어버리게 했다. 그는 천부적 재능을 캐어내지 않고 자신 속에서 스스로 무기력한 인간으로 단정해 버렸다. 이것이 절망 심리가 아니겠는가?

정태기교수는 “치유 상담학”을 말하면서 인간의 기본 ‘에너지’를 200으로 기준할 때 우리의 에너지가 빠져 나가게 되는 경우를, 지대한 수치심을 느낄 때 180, 죄책감을 느낄 때 170, 무기력 할 때 150, 슬퍼할 때 125, 사랑할 때 300, 기쁨과 감사가 있을 때 340, 성령 받고 거듭날 때 500-800의 에너지가 들어온다고 하면서 결론하기를 자발적으로 봉사하고 선한 행실을 가질 때 영이 살고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했다. 사랑의 힘을 캐어내어 활용하는 자만이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김준철사관-구세군사관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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