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위클리프와 롤라드 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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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위클리프와 롤라드 파(1)
  • 황의봉 목사
  • 승인 2018.04.05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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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봉 목사의 교회사 산책 - 종교개혁의 선구자들(2)

존 위클리프(1320∼1384년)는 흔히 ‘종교개혁의 새벽별’로 불리고 있는데 16세기 개혁운동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루터가 태어나기 1세기 전에 이미 종교개혁의 기본 사상을 가르쳤습니다. 영국의 북부지방 요크셔에서 출생한 존 위클리프는 철학이나 교회의 가르침에서 얻지 못했던 구원의 계획을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깨닫고 그리스도만이 인류의 유일한 중보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성장기에 어거스틴과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았고, 1366년 영국 왕실(에드워드 3세)의 전속신부가 되었는데 이것이 교황제도의 실정을 직접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당시 교황들은 교회의 순결성과 천부적인 역할 감당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자신들의 세속적인 소욕이나 야심이 중대 관심사였습니다. 그들의 훌륭한 저택과 사치스러운 식탁은 백성들의 빈곤을 더욱 극심하게 했습니다. 로마교회는 온갖 폭정을 일삼으며 그리스도의 겸손과 가난을 버리고 잔인하고 가증한 생활을 추구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리스도의 구속을 받아 자유함을 얻은 사람들의 양심이 위협과 유혹을 받았습니다. 

이런 상황에 위클리프는 로마교회의 권력남용을 공격하고 교황의 권위를 제한하려 했습니다. 1378년에 그는 부도덕한 성직자들을 몰아내고 교회의 재산을 박탈함으로써 로마교회를 개혁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교회의 재산 소유가 부패의 근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세속 지배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책에서 교회 지도자들의 도덕적 기초를 강조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신탁물로서 재산을 ‘소유하는 권한’을 주신 것이 아니라 그것을 ‘활용하는 권한’을 주셨다. 교회의 지도자가 맡은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경우, 세속 당국자가 그들에게서 재산을 빼앗아 하나님께 올바르게 봉사할 수 있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 타당하다.” 이러한 견해는 귀족들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들은 로마교회의 재산을 장악하게 된 것을 기뻐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로마교회가 위클리프를 해치지 못하도록 위클리프를 옹호했습니다. 

그의 저서 ‘시민 통치에 대해’에서 “교회의 유일한 머리는 그리스도이며 사랑의 정신으로 다스리도록 예정된 사람이 아니라면 교황은 적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선언하여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제시하며 교황의 폐지를 부르짖었습니다. 그것은 중세 로마교회에 대한 치명적인 도전이었지요. 사실 그는 고의적으로 로마교회에 반대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진리에 투신하게 되자 필연적으로 거짓과 싸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로마 교황권의 오류가 분명해질수록 더욱 열렬하게 성경의 교훈을 설명하였습니다. 

그는 로마교회가 사람의 유전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는 것을 보고 성경을 저버린 신부들을 담대하게 질책하고 성경을 백성들에게 돌려줄 것과 성경의 권위를 교회 안에서 다시 한 번 확립시킬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는 일반 백성들의 무지와 영적인 맹목성을 불쌍히 여겨 ‘롤라드’라는 가난한 사제 전도단을 조직하여 각처로 파송하여 일반 백성들에게 자신의 가르침을 전하게 했습니다. 그들은 국내 뿐 아니라 외국에까지도 가서 그의 가르침을 전파했습니다. 그들 사역의 결과로 많은 사람들이 신자가 되었습니다. 

평안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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