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인문주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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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인문주의자들
  • 황의봉 목사
  • 승인 2018.02.14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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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르네상스와 인문주의(6)

영국의 인문주의 운동의 선구자는 존 콜렛(1466-1519)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유학하여 사보나롤라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런던의 성 바울 교회의 교회학교 설립자였고,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였습니다. 그는 바울서신 연구로 유명하며, 그의 바울 서신 강의는 대단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1512년 그는 “성직자들의 부도덕하고 타락한 생활은 그 시대의 가장 악한 이단”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화체설을 부인하고 교리적 변질을 지적하기도 했고, 스콜라철학에 대해서는 “더러운 철학으로 그리스도의 모든 가르침을 오염시켰다”고 비판했습니다. 또 스콜라철학은 “모든 문제를 다 정의하고, 해결해 보려는 오만”을 저질렀다고 공격했습니다. 그의 제자들로는 에라스무스, 월리엄 틴데일 등이 있습니다.

토마스 모어(1478-1535)는 영국의 대 학자였습니다. 1516년 출판된 ‘유토피아’의 저자로서 공상적 사회주의자라고 할 수 있으나, 헨리 8세의 메리와의 이혼을 이유로 반대한 이유로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그는 콜렛, 에라스무스와 더불어 옥스퍼드의 개혁파로 불립니다. 

그 외에도 문필가 제프리 초서(1340-1400)가 유명한 인물이었습니다. 초서는 영국 작가, 시인, 철학자, 외교관, 그리고 관료주의적인 사람입니다.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캔터베리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그를 가리켜 ‘영국문학의 아버지’라 부릅니다. 

제프리 초서는 정확하게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 모릅니다. 그의 이름은 당대의 문서들에서 수없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문서들을 통해 볼 때 그는 왕과 정부를 위해 종사했던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튼 번역하고 쓴 작품들로 인해 그는 영국의 최초의 저자로 불릴 만큼 영국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위대한 인물입니다. 

이상의 인문주의 운동의 특색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새로운 인간성, 곧 인간주의를 주창했고, 인간의 선함과 무한한 가능성을 신뢰하여 고전 연구와 교육을 통해 인간과 사회를 개선 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② 중세교회의 모순과 부도덕을 비판했습니다. 인문주의자들은 직접적으로 교회를 공격하기 보다는 풍자적으로 교회의 모순을 지적하였습니다.
③ 고전에 대한 연구와 문헌 비판을 시도하였습니다. 그 결과 성경 원전 연구를 자극하여 교회 개혁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대로 르네상스기의 인문주의자들은 비록 직접적으로 종교개혁을 의도하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교회의 구조와 현실을 비판하여 바른 교회관에 관심을 갖게 했고, 고전 연구를 강조하여 성경 언어 연구와 주경, 그리고 성경의 진정한 가르침을 해명하도록 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끼쳤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역사적 연구’ 곧 사물을 역사적으로 유추하고 역사적으로 이해하는 안목을 심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인문주의자들의 학문 방법을 ‘에드 폰테스’ 곧 ‘원천으로부터’라는 용어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즉 ‘근원으로 돌아가자’는 말입니다. 당시 교회와 사회 각 분야에서 ‘고전(古典, 혹은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뜻이었지만 이 말을 종교개혁자들이 사용하게 되면서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말로 바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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