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만나고 싶은데…” 두근거리며 국경을
상태바
“엄마를 만나고 싶은데…” 두근거리며 국경을
  • 박경희 작가
  • 승인 2018.01.31 15: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창간30주년 특집]박경희 작가의 창간 30주년 기념 동화 (상) / 도라지 꽃이 피면

예화는 늘 강가에 나가 놀았어요. 놀았다기 보다는 강 너머 나라를 바라보았어요. 엄마가 중국으로 돈 벌러 간지 오래되었거든요. 그건 옆집의 혁이도 마찬가지예요.

“예화야, 얼른 가자. 어두워 지기 전에!”

혁이의 말에 벌떡 일어나 걸었어요.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어느 덧, 노을이 붉게 물들었어요. 예화네 낡은 너와지붕 위에도 노을이 내려 와 앉아 있네요. 예화는 갑자기 마음이 불안해졌어요.

“절대 땅거미가 지도록 강에 나가 놀면 안 된다. 그렇잖아도 세상이 흉흉한데 험한 꼴이라도 당하면 안 되니끼니.”

할머니가 노상 예화에게 하던 말이 떠올랐던 거예요. 예화는 혁이의 손을 놓고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갔어요.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예화가 집 앞 골목으로 들어서는데, 검은 물체가 예화 앞에 딱 버티고 있는 것이었어요? 다리가 후들거렸어요. 예화는 용기를 내어 아저씨 얼굴을 쳐다보았어요. 완전 털북숭이였어요. 예화는 너무 놀라 전봇대 뒤로 슬슬 피했지요. 

“쉿, 너 예화 맞지? 난 중국에 있는 너희 엄마 부탁 받고 온 사람이란다. 조용히 아저씨랑 같이 가자.”

다행히 털보 아저씨의 눈은 아기 송아지처럼 순해 보였어요. 그래도 예화는 아저씨가 두려웠어요. 예화가 뒷걸음질로 도망치려는데 털보 아저씨가 손을 꽉 잡는 거예요. 

“아저씨 나쁜 사람 아냐. 어서 가자.”

털보 아저씨는 예화의 손을 잡고 민둥산을 향해 올랐어요. 산이라고 해야 뙈기밭 뿐이라 마땅히 숨을 곳도 없었어요. 그래도 아저씨는 계곡을 따라 들 고양이처럼 잘 오르더군요. 예화는 팔려가는 송아지처럼 아저씨의 뒤를 따랐어요.  
산 중턱 쯤 오르자 사방이 깜깜했어요. 예화네 집도 어둠에 잠겨 보이지 않네요. 예화는 고개를 자라처럼 내밀며 할머니 집이 보이나 살폈지요. 눈앞에 검은 바다가 펼쳐 진 것 같았어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는요?”

예화는 할아버지가 자신을 찾아다닐 생각을 하니 온몸이 떨렸어요.

“쉿, 지금은 아무 말도 하면 안 돼. 저 산만 넘으면 숨을 곳이 있으니 참자. 할머니, 할아버지한테는 아저씨가 잘 말했으니 걱정 말고.”

아저씨는 고양이 숨소리만큼 조용히 말했어요. 

“빨리 가야 해. 엄마가 국경선에서 기다리는데도 늑장 부릴 거니?” “진짜로 우리 엄마 만날 수 있어요? 근데 아저씨는 올 수 있는데 왜 우리 엄마는 날 데리러 못 오는 거죠?”

그렇잖아요. 딸을 데리러 엄마가 와야지 왜 남을 시키느냐고요? 예화는 털보 아저씨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어요. 따지듯 말예요.

“참, 고 녀석 맹랑하네. 너희 엄마는 다시 북한에 들어오다 국경 수비대에 걸리면 죽음인 거 몰라? 난 조선족이니까 봐 주는 거구. 실은 나도 탈북자 돕다 잡히면 끝장이란다. 목숨 걸고 도와주는 것이니 끼니 협조하라우. 꼬마 동무.”

털보 아저씨는 일부러 장난스럽게 말했어요. 예화는 아저씨가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어요. 그렇다고 불안이 모두 사라진 건 아니에요. 무엇보다 할머니 생각을 하니 초조해졌어요. 빵빵해진 오줌통을 비워야 할 때처럼 말에요.

“그래도 할머니, 할아버지만 놔두고 나 혼자 갈 수 없단 말입니다.”

예화는 울음을 꾹 참으며 말했어요.

“엄마가 나중에 할머니, 할아버지도 모셔 간다고 했어. 걱정 말고 아저씨 뒤나 잘 쫓아오세요. 고집불통 아가씨.”

아저씨는 예화에게 꿀밤을 주는 시늉을 한 뒤 손을 잡았어요. 아저씨는 여전히 빠르게 산을 타네요. 평소에는 동산처럼 나지막한 산이 왜 이리 높은 걸까요. 헉 헉, 숨이 턱까지 찼어요. 
산 정상에 오르자 멀리 두만강이 보이는 거예요. 강 건너에서는 찬란한 불빛이 반짝였어요. 별천지가 바로 저거구나, 싶었어요. 한 번도 밤에는 강 건너를 본 적이 없어 더욱 신기했지요. 

▲ 박경희 작가의 작품 ‘난민소녀 리도희’ 中

‘엄마가 저기에 있단 말이지!’

예화는 입술을 꼭 다물며 생각했어요.  
앞에서 말없이 걷던 털보 아저씨가 갑자기 발을 멈췄어요. 그리곤 두리번거렸어요. 마치 맹수에게 쫓기는 사냥꾼 같았어요. 아저씨가 조심스럽게 돌문을 열고 들어가니 동굴이 나오는 거예요. 동굴 속에는 서 너 명의 사람들이 있는 게 아니겠어요? 얼마나 놀랐겠어요. 더욱 놀라운 것은 동굴 안에 있는 사람들 모습이었어요. 모두 눈을 감고 몸을 좌우로 흔들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중얼거리는 거예요.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았어요.

‘너무 배가 고파서 정신이 나갔나?’

예화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아저씨를 쳐다보았어요. 근데 이게 웬일이에요? 아저씨는 더욱 이상했어요.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은 채 다른 사람들보다 강하게 중얼대고 있는 거예요. 예화는 아무래도 도망을 쳐야 할 것만 같았어요. 돌문을 확 밀쳤지요.

“여기 있는 사람 모두 오늘 밤 두만강을 건널 거다.”

털보 아저씨가 화난 목소리로 말했어요. 예화는 도둑질하다 들킨 것처럼 놀라 우뚝 서고 말았지요. 

“저 강만 건너면 자유다. 그 길을 보이지 않는 손이 인도하실 거고. 조금만 기다려. 달이 지면 출발할 거니까…준비해.”

털보 아저씨가 예화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말했어요. 아빠처럼 다정하게 말에요. 예화는 할 수 없이 흙벽에 기대어 사람들을 살폈지요. 하얀 옷을 입은 아주머니는 가슴에 푸른 책을 안은 채 중얼거리고, 폐기종으로 돌아가신 아빠처럼 입술이 시커먼 아저씨는 검은 표지로 된 책을 들여다보며 뭔가를 암송하고 있네요. 예화는 ‘10대 인민강령’을 외우는 것인가 싶어 귀를 기울여 보았어요.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인민배우처럼 예쁜 언니는 연신 눈물을 닦으며 아버지를 찾고 있어요. 예화는 지금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이 도깨비장난인 것 같아 어리둥절할 뿐이었어요. 

‘그나저나 엄마는 정말 만날 수 있는 걸까?’

예화는 머리가 지끈거렸어요. 그 때였어요. 웅얼거리던 사람들이 조용해지더니 털보 아저씨가 일어나 작은 목소리로, 그러나 힘 있게 외쳤어요. 물론 다른 사람들은 무릎을 꿇고 눈을 감은 채 말이죠.

“아버지. 오늘밤 저희가 무사히 저 강을 건널 수 있게 도와주세요. 우리의 생사를 아버지 손에 맡기겠나이다.”

예화는 털보 아저씨가 말하는 아버지가 수령님이라고만 생각했어요. ‘어버이 수령님’을 그냥 아버지라고 부르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왜 연신 ‘아버지’를 부르며 눈물을 흘리는 걸까요? 도대체 알 수가 없네요. 그 뿐인가요. 털보 아저씨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고양이 가래 끓는 소리로 ‘아멘’ 하는 소리는 또 뭘까요? 예화는 흙바닥이 축축해서 미칠 것 같았어요. 아저씨에게 도움을 청하려 쳐다보았어요. 털보 아저씨는 좀 전보다 더 세게 웅얼거리는 거예요. 아무래도 큰 병이 생긴 것 같았어요. 예화가 할 수 없이 우두커니 서 있는데 갑자기 털보아저씨가 눈을 뜨는 거예요.

“지금부터 출발합니다. 제가 미리 초소 지키는 국경 수비대에게 손을 써 놓았으니 무조건 저만 따르면 됩니다. 돈을 먹었으니 심하게 단속은 않을 겁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진짜 떠나는 것 같아요. 사람들은 서로 끌어안거나 손을 잡아주며 ‘주님의 손이 인도하실 겁니다’ 를 연신 외치네요. 예화는 무서워 아저씨 곁으로 바싹 붙었어요. 예화는 갑자기 오줌이 마려웠지만 꾹, 참았어요.
앞이 캄캄했어요. 혁이가 하얀 도화지에 검은색을 마구 칠해놓은 것처럼요. 대장인 털보 아저씨의 발걸음은 제트기처럼 빨랐어요. 죽기 살기로 털보 아저씨를 따랐지요. 한참을 걷다보니 샤악, 샤악, 강물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예화는 물소리를 듣자 혁이 생각이 났어요.

‘미안해. 혁아. 나 혼자 도망가서. 엄마한테 너도 꼭 데려 오라고 말할 게. 기다려야 해.’

지금쯤 잠들었을 혁이를 생각하며 예화는 울먹였어요. 

“한 사람씩 물살을 잡으며 무조건 앞으로 나가세요. 내가 맨 마지막에 떠날 검다. 예화는 아저씨 옆에 바싹 붙고.”

털보 아저씨는 명령하듯 말했어요. 그래도 기분 나쁘지 않았어요. 어른들은 마치 흙길을 걷듯 물살을 저으며 나아가네요. 예화는 무릎 위까지 차오른 물이 너무 벅찼어요. 금방이라도 물살에 휩쓸려 내려 갈 것만 같아 불안했지요. 

“예화야, 아저씨, 손 놓치면 안 된다. 절대로!”

예화는 그 순간만큼은 털보 아저씨가 엄마나 아빠보다 더 크게 느껴졌어요. 아저씨 손에 예화의 목숨이 달려 있으니까요. 
발이 닿지 않아 수영하듯 물 위에 떠서 아저씨를 쫓았어요. 온몸에 힘이 쫙 빠지고 숨이 막혔어요. 아저씨의 가슴까지 물이 차는 곳도 있었어요. 앞에 가는 사람들도 나, 죽어 신음 소리를 낼 정도로 깊었지요. 예화가 너무 힘들어하자 털보 아저씨는 예화를 어깨에 얹고 물 위를 걸었어요. 예화는 털보 아저씨가 황소처럼 힘이 세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그런데 말이에요. 깊은 물은 지났다 싶었는데 갑자기 하늘이 환해지는 거예요. 밤하늘이 대낮같이 밝았어요. 검은 하늘에 번쩍거리는 불빛이 연신 비추는 거예요.

“멈춰라. 그렇지 않으면 쏜다!” 

윙윙, 대는 마이크 소리는 왜 그리 크게 들리는지요? 금방이라도 잡힐 것만 같았어요. 강을 건너다 수비대에 걸리면 감옥에 가야 한다는 것쯤 예화도 알고 있거든요. 엄마 얼굴도 못 보고 죽나보다 싶었어요. 너무 무서우니까 눈물도 안 나왔어요. 
 
“예화야, 힘들어도 물 속에 들어가서 고개 내밀지 마라. 아저씨만 따라 헤엄을 쳐야 해. 저 불빛은 국경수비대가 비치는 서치라이트야. 걸리면 총살이다. 명심해!”

아저씨는 이 말과 동시에 예화의 고개를 물 속으로 쏘옥, 집어넣었어요. 예화는 백 미터 달리기 할 때보다 더 힘차게 헤엄을 쳤어요. 매일 혁이와 강에 가 개헤엄을 치며 논 게 다행이다 싶었어요.   

“탕, 탕!”

거짓말처럼 총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불빛도 번쩍거리구요. 
마이크에서 뭔가 윙 윙 거리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어요. 예화는 숨이 차 죽을 것 같지만 한 가지만 생각했어요. 국경선에서 기다리는 엄마 생각 말에요.
꽤 시간이 지나도록 물 속에서 고개를 내밀지 못했어요. 거의 죽음 직전이었지요. 엄마 생각을 해도 힘든 건 어쩔 수 없었어요. 

“퓨우, 켁”

예화는 허우적거리며 고개를 내밀었어요. 다행히 사방이 조용했어요. 그러다보니 어느 덧 꽤 많이 건너 온 것 같았어요. 물살에 휩쓸려 내려 왔나봐요. 사람들도 일제히 고개를 내밀고 안도의 숨을 내 쉬었어요. 

“휴, 다행히 공포탄이었나 보군요. 질기게 쫓아오지 않은 걸 보면... 이제 조금만 더 가면 국경선이니끼니…힘내라요.”

털보 아저씨가 힘주어 말했어요. 예화는 다리에 힘이 빠져 한 발자국도 더는 못 갈 것 같았어요. 배도 고프고요. 뱃가죽이 등에 착, 달라붙은 것 같았어요. 뱅글뱅글. 어지러웠어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면 돼.”

털보 아저씨는 애원하듯 예화에게 외쳤어요. 아저씨의 목소리가 너무 진지해서 예화는 주저앉을 수가 없었어요.

“알았어요. 아저씨. 근데 정말 우리 엄마 만날 수 있어요?”

예화는 엄마만 만날 수 있다면, 무조건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젖 먹던 힘까지 다해 헤엄을 쳤어요.

“저어~기. 국경선이 보인다!”

검은 책을 들고 있던 남자가 소리 쳤어요. 그 소리에 모두 남자가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았어요. 희뿌연 운무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둔덕이었어요. 작은 나무 그늘 밑에서 사람의 형체가 어른거리는 것 같기도 했고요. 

‘엄마인가?’

예화는 1등을 했을 때처럼 가슴이 뛰었어요. 좀 전까지 한 발자국도 떼놓을 수 없을 것처럼 진이 빠진 다리에 힘이 솟았어요. <다음호에 계속>

박경희 작가는

▲ 박경희 작가

1960년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났다. 자연에서 뛰어놀던 힘으로 글을 쓰고 있다. 20여 년간 라디오 방송에서 구성작가 일을 했다. 2006년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의‘한국방송라디오 부문 작가상’을 수상했다.
방송작가 생활을 하면서도 창작에 뜻을 두어 2002년도에 동서커피문학상 소설부문에 당선되었고 2004년도에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사루비아’로 등단했다.
현재, 탈북대안학교인 ‘하늘꿈학교’에서 ‘책으로 만나는 인문학’수업을 하고, 남산도서관 ‘청소년 문학교실’ 글쓰기 지도를 하고 있다. 전국 중고등학교에 저자 강연을 통해 독자와의 소통을 이뤄 나가고 있는 중이다.
탈북 청소년 소설집 <류명성통일빵집>, 감성에세이 <여자나이 오십, 봄은 끝나지 않았다> 등 다수의 책을 발간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